전자상거래 소매업

명칭처럼 오래됐지만 어렵고 진지한 업종

by easygoing

이, 클리퍼 오가닉 레몬 진저 차가 구입한 지 보름 만에 드디어 도착했다(배송기간 평균 3일이라고 쓰여있었다). 내 통관 번호가 빠져있었다고 한다(도착한 게 용하네).

주문한 물건이 예상한 대로 도착하는 아주 당연한 프로세스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품 상세페이지 시작 부분에 이 내용을 끝까지 잘 읽고 구매해라, 써놓은 내용을 제대로 안 읽은 사람은 불이익당해도 책임지지 않는다. 강조하고, 마지막 부분에는 이것은 불량 아니고 저것도 불량 아니고 이런 경우 교환 환불 안 되고 왕복 배송비를 지불해야 한다. 아주 무섭게 써놓은 곳들이 있다.

이런 내용이 있는 상품들은 보통 단가가 1만 원 미만이고 계산해 봤을 때 판매자 마진이 500원 미만인 경우가 많았다. 어떤 경험이 쌓여 이렇게 된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전에 뜨개 유튜버가 모헤어 실을 샀는데 헤어가 너무 없어서 고민하다가 전화를 했더니 아무런 질문도 확인도 없이 곧바로 환불해 준다고 했다면서 '알면서 판 거다, 어떻게 이런 상품을 판매하냐 나름 큰 쇼핑몰인데 정말 실망이다.' 그런 얘기를 했었다. 그때는 '쇼핑몰 양아치네' 생각했는데 지금은(그 상품도 엄청 저렴한 거였다) 전화받은 사람이 이해된다. 신사임당이라는 이쪽 업계에서 유명한 그루(?)는 1~2만 원의 돈 때문에 하루를 망치지 말라며 깔끔하게 환불해 주라고 조언한다.



다시 택배 이야기로 돌아와서-

박스 속에 같이 동봉되어 있던 지퍼백에는 사탕과 젤리 껌 그리고, 주문해 줘서 감사하고 별 다섯 개와 리뷰 부탁하며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는 내용이 폰트 6으로 깨알같이 적혀있는 종이쪽지가 들어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남들 하는 대로 하면 절반은 가겠지.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해봐야지. 자본금도 안 들고 집에서 노트북으로 이리저리 클릭만 해서 막 몇 백씩 번다는 데, 나는 살살~ 한 몇십만 벌지 뭐. 유튜브에 다 나오네 그냥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구먼. 나 또한 그런 생각으로 전자상거래 소매업을 시작했다


광고와 브랜딩에 관여했던 허름한 옛 커리어 때문에 이 일을 진행하는 게 더 힘들게 느껴진다. 정해진 FM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인드도 발목을 잡는다. 느려서 그래. 내 속도를 받아들여야 돼. 멈추지만 않으면 돼. 정신이 들 때마다 주문을 걸고 있다.

아직 선명하게 파악된 게 아무것도 없고 불안감에 잠이 안 오지만 오늘 보니 사진이 조금 늘었다(구도라는 게 생겼다!!). 포토샵도 1주일 전보다는 확실히 늘었다. 처음에는 오른손가락으로 마우스를 꽉 잡고 왼손가락으로는 책상 모서리를 꽉 잡는 그로테스크한 자세로 작업했는데, 이제는 왼손을 아주 자연스럽게(하지만 편하지는 않게) 키보드 근처에 놓아둔다.


아니 나는 20년 전에 혼자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사진과 포토샵과 글쓰기를 한 번에... 하아..


아빠는 청년 시절의 내게 "남의 주머니에서 돈 빼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아니?"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렇게 모든 걸 네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는 건 진짜 어리고 무책임한 거야!"라고 늘 말씀하셨다. 요즘 들어 자꾸 생각난다. 우리 아빠는 유통/서비스 업에 50년 넘게 종사하셨다.


우리 아빠 진짜 위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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