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벽
영어를 거의 못하는 수준인 친구가 캐나다에 2년 살기 중이다 연락이 와서 '안 힘들어?' 물었더니 "내 친구 파파고가 있잖아!"라고 대답했다.
처음 그 서비스가 나왔을 때 팀 사람들이랑 비속어와 사투리 테스트를 해 봤던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라서 어, 그거 잘 되고 있구나~ 그랬는데 지금은 나도 친구가 되었다. 일본도 겨우 다녀올 정도로 한자 울렁증이 심한 내가 파파고 덕분에 무시무시한 중국 사이트를 요리조리 돌아다닌다.
1688에서 구매대행으로 물건을 샀다.
익숙한 상품들이 난생처음 보는 가격을 달고 있고, 중국 내 배송비가 거의 0에 수렴한다. 비현실적이다.
이거 막 100개 사서 팔면 이익이 얼마야!! 살짝 흥분된 상태로 물건들이 하나 둘, 입고되고 있다는 기특한 메시지를 들여다봤다. 이래서 made in china는 피할 수 없는 건가 보다. 감탄했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뒤져보니 도매 사이트에서 물건을 사다가 파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여 도매사이트에 사업자로 가입을 하고 물건들을 구경했다. 중국 사이트에서 이미 단위가 다른 가격을 본 후라 큰 감흥은 없었지만 그래도 배송을 그쪽에서 해준다는 점은 참 좋았다. 아주 귀여운 슬리퍼를 발견했는데 같은 물건을 훨씬 싸게 파는 곳을 발견했다(라기보다는 가격순을 클릭했다). 네이버 검색으로 최저가를 검색했더니 아니 도매가의 2배!! 그럼 나는 여기서 500원 더 싸게 팔고 다다익선 패키지로 승부를 하면... 계산기를 두드리자 흥이 솟았다.
상세페이지 사용해도 된다는 답변을 듣고 혹시나 해서 뒤져보니 중국 사이트에 훨씬 더 고퀄리티의 원본 데이터들이 즐비했다. 데이터 품질이 좋으니 포토샵 작업도 엄청난 속도로 진행됐다.
'이렇게 예쁜 제품이 이 가격이라니. 근데 이거 내가 중국에서 바로 사면 가격이 도매가의 1/3도 안되는데 한 2~3주 기다려서 내가 직접 사?'
'아, 이렇게 쉬울 수가~!!'
상품 등록을 하려는데, 어? 이거 뭐야? 그림이 다르다? 판매자가 올려놓은 상세페이지 속 제품이 맨 마지막 것만 달랐다.
뭐지? 왜 이 곰돌이는 윙크를 하고 있지? 이럴 수가, 같은 슬리퍼가 아니잖아!
질문을 올리자 우리는 공장에서 주는 대로 전달하는 거라 어떤 건 윙크고 어떤 건 아니라고 반품이나 교환 사유가 안된다는 답변을 했다. 내가 파는 물건이 이걸 수도 있고 저걸 수도 있는데 그건 네 책임이란 말을 어떻게 하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실제 제품을 사서 내가 상세페이지를 다시 만들지 뭐- 이러면서 주문을 했다.
당일 출고라고 명시되어 있었지만 주문하고 2박 3일 만에 도착했다. 택배 파업이잖아. 내가 오후 늦게 주문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물건을 뜯었더니.
뚱-
컬러만 다르게 샀는데 재질이 달랐다. 하나는 딱딱한 PVC 하나는 말랑한 PVC. 신발 형태도 달랐고, 붙어있는 곰돌이 색깔도 달랐고, 밑창도 달랐고, 사이즈 표시 형태는 물론 사이즈 자체도 달랐다. 같은 점은 단 하나, 냄새가 지독하다는 것. 집었다가 놓은 손가락에 냄새가 배었는데 비누로 씻어도 안 빠진다. 프탈레이트 가소제 용량은 안 봐도 기준치를 어마어마하게 초과할 것이고...
딸내미한테 슬리퍼 착샷 찍어주면 5천 원 주마- 했는데 저거 애가 맨손으로 만지면 안 될 것 같다. 똑같은 상세 페이지를 사용하고 있는 중국 사이트 제품은 EVA라고 쓰여있었고, 값이 더 비쌌던 국내 도매사이트 벤더의 제품도 EVA. 어제 신나서 미리 만들어놓은 상세페이지에 EVA라고 가볍고 푹신하고 어쩌고 써놨는데... 심지어 마감도 엉망진창이었다. 뜯기고~ 눌리고~ 변형되고~ 얼룩지고~ㅋㅋㅋ
'아니 집에서 상세 페이지 편집하고 링크만 바꿔서 진짜 돈 10원도 안 들이고 했다며! ... 할 수 있기는 있지만서도!!.. 아니 그래도...'
조용히 일어나 시장에 다녀왔다.
5시쯤 갔더니 도너츠 가게에는 꽈배기만 조금 남아있고, 떡집에는 가래떡이랑 꿀떡만 남아있고, 반찬가게에는 깻잎 부침개 딱 3장 남아있었다.
'아, 이것이 바로 뒷북이구나. 밤낮없이 책상에 앉아 미친 듯이 들이팠던 게 다 삽질이었구나.' 허탈했다.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싼 맛에 샀는데 이 정도는 늘 있는 일~이라고 리뷰해놓은 사람이 있었다(카테고리가 같은 저가 상품). 알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처음부터 다시,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겠다.
중국에서 올 물건들이 엄청 기대(!) 된다.
누군가 '우리의 경쟁상대는 다이소다'라고 했었는데 진심, 다이소는 좋은 물건을 싸게 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