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이 싫어서

시누이의 입장

by easygoing

너네는 추석날 몇 시에 도착해?

남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바로 전화가 왔다.


못 간다니까. 전혀 기분이 풀리지 않았어. 지금 처가 가려고 짐 나르는 중이야. 몰래 전화했어.

누나, 집사람 화 풀리려면 몇 년 걸릴 것 같아.

엄마는 올케랑 카톡으로 화해했다던데?

그게 문제야, 엄마는 그런 메시지 하나로 혼자 쉽게 풀렸다고 생각한다니까. 이쪽은 전혀 아니라고. 다시는 안 보겠단 생각이 확고해.

아니 잠깐 앉아있다가 가면 안돼? 엄마 며칠 전부터 너네 준다고 음식하고 신나서 이것저것 엄청 준비하시는데.

그런 게 문제야 엄마는, 남들 눈 의식해서 그러는 거지. 진심도 아니면서

야!!!!


남동생 군대 다녀온 후로는 한 번도 없었던 논쟁이 시작되었다.

남동생이 엄마가 잘못한 일들을 조목조목 늘어놓으며 자기 처 입장에서는 화가 나는 게 당연하지 않냐며 '솔직히 우리 집 비정상이잖아?'라고 했을 때 벌컥 화가 났다.

작년에 올케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형님, 우리 큰집 가서 제사 지내는 거 사람들한테 얘기하면 안 믿어요 그런 집이 어디 있냐고.' 했을 때 '맞아, 누나 사람들이 다 놀래.' 거드는 남동생을 보며 '이 새끼 뭐지?' 했던 순간과 곧바로 연결되면서 내 동생에게 정말 잘해주는 올케를 은인이라며 감사해했던 지금까지의 시간 전체가 엎어진 쓰레기통처럼 지저분해져 버렸다.


그러다 갑자기. 이성이 돌아왔다.

야, 너도 답답해서 전화한 건데 나까지 몰아붙여서 미안하다. 너도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을 텐데.

... 누나 어쩌지? 나만 갈까?

오지 마, 올 때 보다 더 기분 상해서 돌아가게 될 거야. 에구, 진짜 너 앞으로 어쩌냐. 힘들겠다. 엄마한테는 뭐 대충 핑계 대고 못 간다 연락드려 최대한 빨리.



추석에 올케가 오지 않았다.

부엌에서 점심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뒤에 와서 몰래 분통을 터뜨렸다.


야, 명절에 차려놓은 밥 먹으러 오는 게 힘든 일이냐?

엄마, 나도 여기 있잖아요. 나도 시댁 안 가잖아요.

야! 너는 그런 게 아니잖아. 넌 다르지!

우리는 앞뒤 사정 다 알고 있는 가족이니까 그렇죠, 올케는 남이잖아요. 남이 보면 나나 올케나 다 똑같아요.

그런 게 어딨냐!


나는 4년 전인가?부터 시부모님과 왕래를 끊었다. 서로 불편해서.
애들을 보내 봤는데 결국 아들만 보길 원하셔서 시댁에는 남편만 간다.
시부모님의 일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부모님이라 생각하며 성심성의껏 돕고 있다. 남편에게 목록을 건네받아 인터넷으로 장을 봐서 보내고, TV나 핸드폰도 바꿔드린다. 옷도 주문하시는데 백화점에 가서 좋은 걸로 사다 드린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바로 돌려보내시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이 없다. 단지 직접 접촉하지 않을 뿐이다.


시누이의 입장에서

아들놈이 중간에서 중재를 잘해야지! 마누라한테 휘둘리는 저 미련한 놈! 욕하는 시어머니의 마음과

가장이면 자기 가족이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켜야지! 화내는 며느리의 마음이

다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잘하는데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계속 속을 끓이고 화내는 두 고부지간은 이해가 안 된다. 좀 거리를 두고 서로 예의 지키면서 그렇게 지내면 안 될까요? 사랑은 빼고. 솔직히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중요한 존재입니까?




추석 전날 사촌형제 모임이 있었다. 남편이 다녀와서 일러바친 바에 따르면, 남동생이 이러저러해서 힘들다- 얘기 꺼내자마자, 모두가 입을 모아


"아무것도 하지 마! 절대로 뭘 하려고 하지 마!"


합창으로 제압해서 긴 하소연 따위 없었다고 한다. (참고로 내 남동생은 결혼 8년 차 아빠 1년 차. 유부 생활 영유아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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