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Jun 24. 2024

우울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부럽다는데, 전 제가 한심할 때가 많습니다.

집을 좋아합니다. 정확히는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 시간을 진공의 시간이라 부르곤 합니다.

햇살이 발끝을 간질이다, 얼굴에 닿아 이윽고 눈 시리게 사라지는 움직임을 느끼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인생 최고의 호화로움이지요. 시간이란 너무나 중요한 것인데 그런 것을 그냥 흘려보내니까요.


그런 시간을 일본에 와서도 많이 가졌습니다. 최고의 호사를 누렸습니다.

코로나는 특히 그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공식적인 핑계가 되었습니다. 행복했지만 슬펐습니다.


코로나로 온 세상에 멈춰 있을 때, 외국인은 더욱 멈춰 있었습니다.

일본을 통째로 빌렸다며 으스대기도 했지만, '내가 아프면 어쩌지? 부모님이 아프면 어쩌지? 그럼 한국에 돌아가야 할까? 비자가 없어지겠네. 내 경력은? 일본에 있는 내 집과 짐은 어떻게 정리하지?'라는 걱정이 계속되었습니다.


일본에 와서 일 년 반이 되어 익숙해지려고 몸부림치던 저는, 세상이 멈춘 후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걸 무시하려고 미친 듯이 일을 하다, 어떤 계기로 머릿속의 무언가가 뚝 끊기는 기분이 들었고, 이 주 동안 쉬었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니 제가 열심히 하던 일은 전부 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 주 동안의 휴식이 절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어 버렸어요.


외국에 나와서, 그렇게 가고 싶다고 생각하던 회사에 입사를 했는데 결국 전 저 자신과 싸워 이기지도 못하고, 패배자의 길만 걷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주어진 일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의욕을 끌어와서 하려던 일은 무언가가 맞지 않았는지 계속 어그러졌어요. 점점 자신이 한심해졌습니다.


열심히 몸을 갈아서 일하던 때는 상사가 절 보지 않았고, 지쳐 쓰러진 순간 바뀐 조직과 상사는 저의 의욕 넘치던 모습은 알 수 없었겠지요. 조직 속에서는 쓰러진 제가 저 자신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도 결국 자기 연민에서 우러나온 핑계입니다)


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회란 그런 것이지요.

더욱 의욕이 사그라들 법 한데 뭐랄까. 오기가 생겼습니다. 남이 어떻게 보든 그걸 신경 쓰는 건 그만 두자고요. 내가 잘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요. 내가 일을 좀 못한다고 누가 죽지는 않잖아요? 회사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요.

사실, 속상합니다. 저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채 나이만 들고 있는 것 같거든요. 지인 중 몇몇은 제가 부럽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커리어를 쌓는 모습이 멋지다고요.

전 반대예요.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다들 멋지게 성장하고 있는데 저 자신은 성장을 하지 않은 것 같단 생각이 계속 들곤 합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일할 수 있을까? 란 불안감도 있어요. 일본에서 이직을 하는 건... 지금 제게 있는 에너지로는 참 힘든 일이기도 하네요.


제가 다니는 회사는 리모트워크가 굉장히 자유로운 회사라, 어떨 때는 두세 달 동안 회사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아도 문제가 없어서 주 1회만 출근을 했었습니다.

몇 달 전,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고 나서, (실제로 운동을 자주 가지는 않지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게 되었고, 운동 가기 애매한 시간에는 방 청소를 하고, 밥을 차려먹고 무작정 회사로 나오고 있습니다.


회사에 나와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친한 동료들은 대부분 퇴사를 했고, 주변인처럼 구석 자리에서 모니터를 보며 일하고 있어요. (그 와중에도 인사를 나누는 동료들에게 감사합니다.) 그게 일본 회사긴 합니다. 밥을 혼자 먹는 게 너무나 당연한 곳이라 미팅 외에는 누군가와 이야기 나눌 일이 없다면 없거든요.


앞으로 제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습니다. 계획을 해야 할까요? 계획을 하면 물론 좋겠지만,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인생도 아니고, 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운동을 하자는 계획도 잘 지키지 못하는걸요.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지만, 나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주변의 훌륭한 분들을 보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지금까지 뭐 했나, 자책이 들곤 합니다.


이런 이중적인 마음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다가 도닥거려 보다 하고 있습니다.

방에서 나오면 눕지는 않게 되니까, 회사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느끼는 외로움보다 방에서 느끼는 외로움의 농도가 더 짙으니까요.


여하튼 다들 힘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더워 죽을 것 같은 여름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나가서 걸어봐요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