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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다시 셀프로

내 꿈이 셀프인테리어는 아니었는데

by 새벽세시공작소

내 꿈은 오래된 집을 사서 집을 예쁘게 고쳐서 들어가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자는 성공했다. 하지만 후자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계약을 결정하고 나서, 부푼 꿈을 안고 틈틈이 인테리어 업체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에서 일하다 갑작스럽게 삼촌의 전화를 받았다.

'공사는 언제부터 하면 되니?'


아직 계약서 도장도 안 찍은 상태였지만, 아버지는 딸이 드디어 생애 첫 집을 장만한다니 우 기분이 좋으셨나 보다.

그즈음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제가 없는지 확인 전화를 하셨고, 자연스럽게 관련 업계에 종사하시는 당신의 동생에게(사실 삼촌은 가정집 전공이 아니고 주로 시설이나 사무실 공사를 하신다) 내 딸의 집 공사를 '명'하셨다. 신기하게도 삼촌은 일정이 빡빡하다고 툴툴거리시면서도 형이 시키는 건 다 한다.

하지만 비용이 더 들더라도 요구사항에 대한 견적을 꼼꼼히 내고 3D 모델링을 해가며 상담을 하는 데는 이유 있다. 단순히 신뢰의 문제보다는, 내가 모든 것을 쫓아다니면서 직접 시공하지 않는 이상은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공하시는 분들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모르고, 나도 전문 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원하는 바를 언제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모른다. 열심히 캐드도 그려보고 실측도 하고 제품 모델명과 레퍼런스 사진도 준비했지만 많은 부분이 당일에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나랑 시간 맞추기 제일 쉬운 사람

기본적인 도배나 철거 등은 잘해주셨지만, 사실 공사 당일에 어떤 분야의 기술자님이 오시는지 나도 제대로 못 챙긴 상태로 진행했기 때문에 바꾸고 싶었는데 못 바꾼 것도 있고, 바꿀 생각이 없었는데 바뀐 것도 있다. 그래서 살면서 스스로 조금씩 손을 댔다.


수전

우선 부식되고 낡은 수전을 교체했다.

욕실은 공사할 때도 크게 손을 대지 않고 조명과 환풍기 정도만 교체했었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나사가 풀리지 않아서 기사님을 불렀었지만, 이번엔 비교적 수월하게 교체했다. 처음에는 물을 잠그는 곳을 못 찾아서 헤매고 있었는데, 이 부분은 아파트 경비 아저씨께서 도와주셨다. 지금은 사용한 지 1년이 넘었는데, 다행히도 특별히 새거나 문제 되는 부분 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해바라기 수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샤워기형으로 교체하였다.


세면대는 벽 쪽에 연결된 배수관이 자꾸 빠져버려서 폽업과 함께 망치트랩으로 교체했다.

사실 더 힘들었던 건 청소였다.

이사 전에 업체를 통해 입주청소는 했지만, 욕실 곳곳의 스티커와 철거 후의 찌든 때를 제거하고 못자국을 메우는 일은 몹시도 까다로웠다. 한 번에 다 하지 못하고 쉬는 날마다 틈틈이 시간 날 때 하다 보니 진도가 더뎠다. 래도 다행히 타일 상태가 좋아서 청소만 잘해도 깨끗한 티가 많이 났다.

부족했던 수납공간까지 설치해주고 나니 깔끔한 욕실이 되었다.


필름

거실 곳곳의 낡은 몰딩은 원래 이사 전에 업자분께 맡기려 했지만 못 한 거였다. 많이 낡은 곳은 떼어내고 실리콘을 서 새것으로 교체해 주었고, 천장처럼 상태가 깨끗한 곳은 필름만 붙여주었다.

습기 때문에 특히 베란다쪽 몰딩들이 많이 상해있었다.

원래 전체적인 몰딩 색은 나무 색인데, 전에 살았던 분들이 흰색 시트지를 부분 부분 붙여두셨던 것 같다. 깨끗한 부분은 그대로 두고 색이 맞는 시트지를 사서 가장자리나 마감이 잘 안 된 곳만 정리했다.

나무색 몰딩 위에 애매하게 붙어있던 시트지도 깔끔하게 새로 붙였다.
아트월엔 그냥 남은 벽지 붙였다.

현관도 비슷하게 필름으로 리폼을 했다. 이쪽은 붙어있던 필름이 상해있어서 제거 후 다시 붙였다.

붙이는건 할 만 하다. 그런데 여기서도 힘든 건 제거다.

사실 현관도 구조 변경을 고민하던 곳 중 하나였다. 필름을 붙이고 나니 깔끔해지기는 했는데, 안 그래도 좁은데 열쇠 하나 올려 둘 곳도 없이 서랍이라도 열려면 커다란 신발장 문짝을 여닫아야 하는 것이 불편했다. 따로 선반을 놓기에도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문짝만 따로 주문해서 선반으로 리폼했다. 요즘엔 경첩 구멍까지 맞추어서 재단이 가능하여 매우 편리했다. 재단할 크기만 잘 측정하고 조립만 잘하면 된다.

선반높이는 ㄱ자 피스로 조절했다. 조명은 충전식으로 자석에 붙는 제품인데, 쇠붙이 재질의 싱크대 도어 걸이를 살짝 구부려서 달았다.

페인트

페인트칠은 보양하고 말리고 덧칠하고 치우고 하는 것이 일이 많아서 가급적 안 하고 싶었는데, 베란다 문에는 유리가 너무 많고 무늬도 있어서 필름보단 페인트가 깔끔할 것 같았다. 페인트를 사놓고도 근 1년을 미루다가 간신히 끝냈다.

군데군데 필름이 벗겨져 있어 젯소와 페인트로 칠해주었다.

보양 테이프는 붙이고 나서 페인트 칠이 끝나면 바로바로 떼어주었어야 하는데, 퇴근하고 하루에 유리 한 칸씩 붙이면서 하려니 양 쪽 테이프 붙이는 데만 몇 달은 걸린 것 같다. 다 끝내고 나서 떼어내니 테이프가 죄다 들러붙고 스티커 자국이 남아서 청소하는 데 애먹었다.

청소는 아직 진행중이다.


했어야 하는데!

셀프로 집수리를 하다 보면 부질없단 걸 알면서도 이런 생각이 가장 많이 든다.

'이걸 먼저 했어야 하는데, 저걸 사 왔어야 하는데, 공사할 때 같이 했어야 하는데...'

짜증이 한도 끝도 없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사실 이런 공사(?)를 한참 진행하는 동안엔 그리 뿌듯하지도 않았고, 틈이 글을 쓰고 싶은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어지러운 집안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아, 정말 이게 최선일까? 나는 왜 돈들이고도 마음대로 못하지?'

그래도 끝내고 나면 내가 사는 공간이 좀 더 나아진다. 마음에 안 들면 내가 바꾸면 된다. 디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다행이다. 공간이 조금씩 정리되니 어지러운 마음도 조금은 정리가 되었다. 그래도 만약 다시 이사를 하게 된다면 그땐 정말 은밀히(?) 진행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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