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비를 줄여보자
코로나 시기에는 주변에 확진자라도 나오면 갑작스레 집에 감금(?)되는 일이 잦았고, 먹을 게 다 떨어졌을 땐 배달이 아니면 말 그대로 굶어야 했다. 도시 한가운데서 집 안에 고립되어 있는 동안 집에서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에서는 화성에 혼자 고립된 주인공이 냉장고에 있던 감자를 심어서 자급자족하는 내용이 나온다.
우연히 토마토를 키우며 느꼈다. 다른 쓰레기는 집에서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는 어느 정도 순환의 흐름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직접 키워서 먹을 순 없겠지만, 너무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는 선에서 식비를 줄여볼 수 있지 않을까?
토마토 사진을 보고 주변에서 특히 딸기 한번 키워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IoT를 활용하거나 집에서 쉽게 식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하는 제품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만 봐도, 직접 뭔가를 키워먹고자 하는 호기심은 꽤나 보편적인 욕구인 듯하다. 마트에 그리 싸지 않은 가격표를 달고 고이 모셔져 있는 딸기를 볼 때마다 도전정신 반 호기심 반으로 '한번 심어볼까?' 하는 생각, 나도 해본 적 있다.
처음에 뭔가를 심는 것은 쉽다. 문제는 유지다.
대체로 정신없는 일상 속에 화분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아 맞다 물 좀 줘야지" 하고 보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경우가 많다. 이런 걸 보면 식물을 직접 재배해서 먹을 수 있는 디바이스가 식기세척기나 음식물처리기처럼 보편화되면 좋을 것 같은데, 아직은 생각보다 아쉬운 점이 많다.
상용화된 제품들이 지원하는 식물은 주로 쌈채소나 허브 종류가 많다. 아마도 병충해에 강하고 기르기도 쉬우면서 키도 많이 크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상추를 하루에 얼마나 먹을까? 직접 키워보면 뿌듯함이야 있겠지만 맨날 먹을 생각을 하면 사실 애매하다. 또 배지와 키트, 그리고 식물 영양제를 주기적으로 추가구매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 석학들이 그렇게 만든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상용화되는 제품은 가능한 모든 요소를 제어해야 한다. 대강 이 정도를 고려하는 것 같다.
온습도
채광
환기
물 주기
토양의 PH
병충해
갑자기 대기업 석학들이 이해된다. 하지만 식비는 줄었는데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오면 곤란하다. 라즈베리 파이나 아두이노 같은 미니 PC를 이용한 예제도 많은데, 사실 이런 센서들은 대부분 교육용인지라 그다지 품질이 높지 않다. 프로토타입으로 만들 정도는 되지만, 측정 가능한 값의 범위도 적고 고장도 잦다. 소프트웨어는 어떻게든 커스터마이징이 된다. 하지만 하드웨어의 한계는 명확하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보자. 최대한 기존의 플랫폼을 활용해 보고 나머지는 몸으로 때우면서(?) 개선할 것이다.
실내환경에서는 1년 내내 온습도가 자연스럽게 비슷하게 유지된다. 베란다에서는 그 폭이 조금 더 크겠지만 그래도 바깥보다는 좀 덜 혹독하다. 그래도 냉/난방비를 추가로 들이지 않고 온습도 차이에 따른 노력을 줄이려면 계절에 맞는 제철 채소를 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당분간은 너무 춥거나 더우면 실내에 들여놓는 정도로만 해보자.
온습도를 봐 가면서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고 창문만 잘 열어주면 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베란다에 드는 햇볕이 약했다. 블라인드를 계속 활짝 열어 두기에도 사생활 문제가 있고,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실외 온도가 너무 추우면 창문을 계속 열어두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베란다에 전기를 꽂을 수 있는 곳이 없어서 1만 원 정도 하는 태양광 충전기를 식물등에 연결해 주었다. 창문을 계속 열어주거나 블라인드를 모두 열어두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낮에는 불이 들어오고, 저녁에는 꺼진다.
베란다에는 수전이 있으니 수도를 연결하는 방법은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우선은 저면관수 화분을 사용했다. 모든 화분을 저면관수 화분으로 바꿀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을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PH는 연속적인 모니터링은 쉽지 않다. 하지만 혈당처럼 하루동안에도 크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아니라 연속적인 측정이 필요하지는 않다. 1만 원 이하로 토양의 온습도와 토양의 PH까지 측정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 아주 정확하게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대략적인 추이를 알 수 있으면 된다. 농사를 짓다 보면 작물이 영양분을 흡수하며 흙 속의 염기를 빼앗아 토양이 산성화 된다고 하던데, 신기하게도 실제 토마토가 열린 화분은 PH 6.5 정도로 일반 흙보다 조금 낮았고, 퇴비를 만드는 음식물 쓰레기통은 PH가 7.0 ~ 7.3으로 약간 높았다. 나중에 분갈이할 때 적절히 섞어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대파의 적정 생육온도는 10~25℃. 현재 베란다의 온도와 딱 맞는다.
뿌리 부분을 남기고 하얀 대를 잘라 심어주었더니 조금씩 자라다가 거의 원래 대파 길이만큼 자랐다. 잘 자라길래 나머지 대파도 먹을 때마다 계속 심어주고 있다.
'마션'의 주인공 감자도 심었다.
과연 수확에 성공할 것인가. 식비 절감에 기여하는 그날을 기약하며 계속 키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