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의 서막
1인가구는 음식물 쓰레기가 참 애매하게 생긴다.
아예 많이 나올 때는 작정하고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에 가져다 버리면 되는데, 요리할 때 조금씩 생기는 찌꺼기나 냉장고 한편에서 말라비틀어져버린 한 줌의 과일 같은 것은 그때그때 가져다 버리기가 참 귀찮다. 냉동실에 얼려보기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따로 써보기도 했지만 그리 위생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다 미생물 음식물 처리기를 쓰고 있는 친구의 강력 추천으로 친환경 음식물 처리기를 만들어보게 되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빈 통에 흙을 충분히 담고 음식물 쓰레기를 묻어둔 뒤 물을 부어 발효시킨다. 한마디로 퇴비를 만드는 것인데, 놀랍게도 별 냄새도 없이 며칠 뒤 음식물이 분해되어 사라져 있었다. 단, 통풍 없이 방치하거나 너무 많은 양을 넣으면 벌레가 생길 수도 있으니 주의.
사실 친구가 추천한 건 기계였지만, 꽤나 거금을 들여야 하기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가 그리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니라 전에 분갈이하고 남은 흙으로 그냥 시도해 본 것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며칠 전 하얗게 곰팡이가 피어버린 토마토를 흙에 던져두었던 것이 생각났다.
방울토마토인지 왕토마토 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싱싱한 것만 솎아 화분에 옮겨 심어주었다.
처음에 키우던 것들은 너무 작은 화분에 키워서인지 키만 크고 줄기는 연약한 채로 웃자라기만 했다. 좀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고 해도 더 잘 드는 곳에 두었더니 며칠 만에 줄기가 두꺼워지고 잎도 넓어졌다. 빨래 건조대에 줄기를 노끈으로 묶어서 지지해 주었다.
처음 화분에 옮겨 심어준 건 늦여름이었는데,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니 선물이 찾아왔다.
요즘 날이 추워서 열매가 달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새해를 맞이하자마자 열매가 달려 있었다. 씨앗부터 열매를 맺는 데 성공하다니 몹시 신기하다. 어릴 때 학교에서 심은 화분은 많이 죽였었는데. 너무 많은 관심을 주면 안 되나 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대충 던져놓고 키워야 잘 크는 걸까?
신기해서 주변에 토마토 사진도 보여주고 싹도 나눠주었더니 이것저것 키워보라며 격려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일 선물로 버섯 재배 키트도 받았다. 버섯은 성장 속도가 엄청났다. 아침에 물을 뿌려 놓고 출근했다가 퇴근해서 상태를 보면 그 새 자라 있었다. 5일 만에 키워서 고기 구울 때 같이 먹었다. 향도 진하고 맛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두렵다. 감당이 되지 않는다.
새싹 나눔도 했는데 새순이 계속 나와서 화분이 부족할 지경이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다 옮겨 심어서 토마토 자급자족을 실천하고 싶다. 베란다를 온통 토마토 정원으로 물들이고 싶다. 좀 더 잘 키울만한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