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니.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사는 거지.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니.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사는 거지.
나는 아무도 나에게 말하지 않은 사회의 진리를 믿었다. 그래서 건축설계일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알면서 건축회사에 재취업을 했다(참고로 나는 건축을 절대 하지 않겠다며 퇴사하고 <퇴사 사유서>라는 퇴사 고민을 담은 책도 썼다). 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다시 건축을 했을까? 단순하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었다.
2년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나름대로 하기 싫은 일을 곧잘 해냈다. 성격이 성격인지라 일 못하는 애 소리는 듣기 싫어서 하기 싫은 일이어도 1인 분은 꼭 해냈다. 가끔은 주말 출근도 하고 야근도 했지만 참을만했다. 나름 회사가 나에게 300만 원 남짓의 돈을 쥐어 줬으니 나도 하기 싫은 일을 9-6로 해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기 싫은 일을 하니 생활이 안정되었고 친구도 만나고, 가족들에게 선물도 하고, 애인과 호화롭게 데이트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글쓰기는 일요일 하루로 밀려났다. 퇴사하기 전에는 매일 독립출판사 일을 하거나 글을 썼는데 회사에 재취업을 한 뒤에는 그게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니까. 나의 두 번째 에세이 책인 <사랑한다 요리할 수 있어>는 결국 집필을 완료하고 1년 뒤에나 나올 수 있었다. 마음 한편에는 글을 적극적으로 쓰지 못하고 뒷전이 된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있었지만 나의 안정된 삶을 위해 이 밸런스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튜브 이연 채널에서 들었는데,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걸 ‘맛없는 샌드위치 먹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모두 각자의 맛없는 샌드위치 먹기를 하고, 우리 할머니 말씀처럼 빨리 먹어 해치워 버리면 그다음은 달콤한 디저트가 기다리고 있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나는 맛없는 샌드위치를 너무 오랫동안 많이 먹었나 보다. 결국 탈이 났다.
2년을 다닌 건축 설계 회사는 사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5년 차 밖에 되지 않았지만 유학과 석사를 했다는 이유로 과장으로 진급해 버렸고 곧장 새해부터 PM을 맡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이제 내가 주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알아서 진행하길 바랐고 나는 늘어나는 책임감과 프로젝트에 대한 부담감으로 한 층 더 맛없어진 샌드위치를 먹어야 했다. 엎친데 겹친 데로 4월 한 달은 다른 회사와 경쟁을 해야 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가는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글쓰기는 일주일에 하루는커녕 한 달 동안 할 수 없었다. 경쟁 프로젝트를 끝내고 다시 내가 PM을 맡을 프로젝트로 돌아왔을 땐 어마어마하게 많은 일이 밀려있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맛없는 샌드위치를 먹어 치워야 알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아득했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에 나에게 공황발작이 찾아왔다.
딱 일주일이 지나 공황발작이 또 이유 없이 찾아왔다. 나는 그 와중에도 PM 맡은 프로젝트의 회의를 반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한 뒤 바로 정신과로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각종 테스트를 했다. 그 결과 나는 우울감이 심하고 자율신경계가 고장 났고 몸이 매우 긴장한 상태이며 아주 불안정한 심리와 뇌기능의 불균형을 보이고 있었다.
맛없는 샌드위치를 먹다가 탈이 나버린 것이었다.
선생님과 나누었던 이야기 중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다.
“일을 많이 하고 공부를 많이 한다고 우울증에 걸리지 않아요. 이렇게 우울감이 높은 건 에너지를 소비만 해서 이제 고갈돼서 그런 거예요. 일을 하면서 성취감이나 보람, 뿌듯함 같은 에너지를 받아야 하는데 본인은 그런 것 같아요?”
“아뇨. 저는 단순히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어요. 월급이 있어야 살 수 있으니까 하고 있어요. 일은 전혀 즐겁거나 뜻이 있어서 하고 있지 않아요. 오히려 일 할 때는 감정이 안 들어가요.”
“그렇다면 글쓰기는요? 글쓰기를 할 때는 그런 감정이 느껴져요?”
“네 그런 것 같아요. 글을 쓸 때는 재미도 있고 사람들이 읽고 좋아요나 댓글을 남기면 기분이 좋아요.”
“그럼 글 쓰는 주말을 바라보면서 평일을 버틸 수 없을까요?”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날 망가뜨릴정도의 일을 주말만을 위해서 5일을 버티면서 살라는 게 너무 까마득해 무서웠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진 않아요. 좋아하는 일도 일이 되면 즐길 수 없게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걸로 얻는 월급, 월급으로 유지하는 가족의 행복, 자신의 안전, 취미생활들로 버티기도 해요. 그러실 순 없으시겠어요?”
나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다. 정신과 몸이 아프면서까지 하기 싫은 일을 지속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 이제 선택할 때가 온 거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버티는 게 아니면 퇴사하는 것도 고려하셔야 합니다.”
나는 고민하고 있다. 분명 내 경제적 안정과 안전을 위해서는 건축 설계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아 살아야 하는데 내 몸은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이 없다니. 이 답 없는 고민 앞에서 나는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고 짜증이 솟구치며 기분은 끝없이 가라앉았다.
누구나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없는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고 특출 난 게 없는 사람인데. 배운 게 건축밖에 없어서 다른 어떤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인생은, 신은, 세상은 나보고 어쩌라는 걸까.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니.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사는 거지.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모두가 그렇다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어떤 맛없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댓글로 경험이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