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라는 말은 이상하다. 새로 시작하는 해라는 뜻은 알겠지만, 일상에 바뀐 것이 없는데 새로운 해라니. 새롭지 못하다. 우리 집에 엄마를 맡고 있는 미미 씨는 특별한 일 없이 1월 1일을 보냈다고 했다. 그런 미미 씨가 새해 첫 월요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수영장 가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띠리리릭. 현관문이 닫히고 도어락이 잠긴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가 돼서야 침대 밖으로 나왔다.
작년과 다를 것 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마실까 하다, 새로운 해가 밝았으니 건강하게 살아보리. 카페인을 줄여보리.라는 마음으로 녹차를 마셨다. 녹차는 건조한 겨울에 목을 더 건조하게 한다고 했는데, 막상 따듯하게 우려마시니 몸이 촉촉하게 녹는다. 30분 정도를 뮤지션들이 나오는 영상을 봤다. 비몽사몽 한 내 상태처럼 두서없는 내용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지루해질 즈음 창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포근한 햇살이 집 안에 들어와 있었다. 천천히 창가로 걸어가 눈을 감고 햇빛을 맞이했다. 선천적으로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나는 햇빛을 오래 즐기지는 못했다. 예전에 본 저스틴 민의 인터뷰에서 그는 아침에 밖으로 나가 햇빛을 쬔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유명해지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공복에 유산소도 하고 말이야. 생각은 흘러 추운 겨울 아침부터 수영장에 간 미미 씨에게로 향했다. 미미 씨는 오늘 접영 연습을 했으려나.
정오가 넘어 미미 씨가 돌아올 때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침 햇살을 쬐고 방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일하려 했는데. 띠리릭. 현관문이 열리고 미미 씨가 돌아왔다. 오자마자 나에게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단단한 목소리의 그녀는 새해가 되어도 꾸준히 수영을 나간다. 새해여서 나가는 게 아니라, 새해에도 나가는 것이다. 어찌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것일까. 평소 사주를 보면 오행이 다 있어 혼자 살아도 잘 살 거라는 사주풀이에 질투하던 미미 씨의 남편, 철철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수영장에서 돌아온 미미 씨는 철철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았다. 나는 미미 씨를 따라 식탁에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듣고 있으니 나도 한 마디씩 덧붙이고. 그러다 대화가 오고 갔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미미 씨와 떠들었다.
다시 책상에 앉았다. 이제는 진짜 시작해야 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연말, 1월 1일, 첫 주말까지 몽땅 휴식을 취했던 나를 원망했다. 일상에는 모멘텀이 존재해 그 동력이 사라지면 다시 시작할 때 큰 힘이 든다. 시작할 때는 두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역시나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산책이다. 한 겨울에 밖이라는 곳은 귀가 떨어질 정도로 춥고 바람이 매섭게 부는 그런 곳이었다. 따듯하게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강한 바람에 찬 공기가 내의까지 번져 들어왔다. 그럼에도 나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걸어보자며 집 앞 대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결국 오래 돌아다니지 못하고 집으로 와버렸다.
그때야 비로소 책상 앞에 앉는 게 편해졌다. 이번에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시작했다. 작년부터 쓰던 글의 초안을 작성하고, 썼던 글을 퇴고했다. 집중하는 순간에도 여러 가지 잡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가령 ‘이렇게 글을 열심히 써도 읽어줄 사람이 몇이겠냐.’ 라거나 ‘XX 플랫폼은 글 쓰는 사람만 있고 읽는 사람이 없는 게 흠이네.’ 같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두려움이 근원인 생각들이었다. 모멘텀을 잃어버렸을 때 이런 두려움 때문에 힘이 든다는 것을 상기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냥 하는 거야. 일을 벌여놓으면 미래의 재민이가 해결해 준대. 덕분에 결국 해야 할 일을 해냈다.
새해에 바뀐 것은 없었다. 사회적, 경제적, 재정적, 정치적적, 애정적 상태는 작년 12월 31일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사람이 바뀌어 있었다. 연말연시를 즐기며 일상의 모멘텀을 잃고 살이 찐 내가 있었다. 새해에 새로워진 것이 나의 나태함과 뱃살이라니. 새해에는 새롭지 않은 나로 돌아가야겠다. 작년처럼 꿋꿋하게 글을 쓰고 퇴고해 올리는 (그러면서 좋아요 숫자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으로 돌아가야겠다. 책상 앞에 앉아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올해는 작년부터 해오던 것을 이어가는 한 해가 되길 빌었다. 소원까지 빌고 나니 올해의 시무식을 치른 느낌이었다. 나만의 시무식. 작년에는 회사 출근 시간 10분 전에 시작하는 강제적 시무식에 참여해야 했는데, 올해는 스스로 했네. 그 사실자체만으로도 뿌듯했다.
윙윙윙.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체중감량을 위해 헬스장에 가라는 소리였다. 나는 일주일 동안 쉬었던 운동의 시작을 미룰까 고민했다. 그때 고개를 내려 내 뱃살을 봤고, 곧장 거실에 있는 미미 씨에게 운동하러 간다며 소리치고 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