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들렌의 효능

by 재민

변함없이 아침에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누군가는 이 시간에 암막 커튼을 치고 잠자리에 들겠지.생각했다. 누군가는 내가 자는 동안 추운 새벽을 보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나의 평범한 일상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변함없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침대 밖을 나왔다.


커피를 마실까, 차를 마실까 고민했다. 오늘은 커피를 택했다. 케틀에 물을 받아 끓였다. 머그잔에 커피 가루를 조금 넣고 끓는 물을 부었다. 머그잔이 금세 따듯해졌다. 컵을 들고 주방에서 보이는 거실 창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렇게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지만, 누군가는 해 질 녘부터 해가 뜨기 직전까지 쉬지 않고 일했겠구나. 나는 왜 이런 삶을 살고, 어떤 이는 왜 그런 삶을 사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답 없는 문제 앞에 결론을 내지 못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글을 쓰는 일. 책을 만드는 일. 그리고 생각과 문장을 나누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어떻게 이런 것들이 다른 삶에 도움이 되는지 궁금했다. 내가 쓸모 있는 사회구성원이 되어야 세상을 살아갈 텐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 어떻게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지 찾아가 보고 싶었다. 오늘도 그 문제의 답을 알지 못한 채 일상을 이어나간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언제 나타날지 모를 나의 쓸모를 기다리며 글을 고치고 편집하며 책을 만들었다. 사람이 몰입하게 되면 두어 시간은 훌쩍 흐르는 것처럼 어느덧 해가 뉘엿거렸다.



미미 씨와 버스에 나란히 앉아 눈부신 노을을 애써피하며 나의 누이인 선선의 집으로 향했다. 선선의 단출한 가족은 몇 년 전에 미미 씨가 사는 도시로 이사를 왔다. 미미 씨는 선선의 집이 가까워 일주일에도 두세 번은 꼭 놀러 가곤 한다. 선선은 특별하지 않은 듯 저녁이나 같이 먹자며 나까지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선선의 집으로 가는 버스에는 아직 퇴근 시간이 되지 않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런 일상을 살아가는 나는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다시 쓸모에 대해 생각했다.


선선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어린이집에 있는 채채를 픽업했다. 채채는 선선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다. 그녀는 미미 씨를 보자 한참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벌써 왔냐며 한숨을 쉬었다. 올해 다섯 살이 되는 채채에게 친구들과 노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그 또래 친구들에겐 그것이 그들의 쓸모이다. 어여쁘게 놀고 웃는 것. 그것만으로 존재의 이유는 충분할 나이다. 미미 씨와 채채는 손을 잡고 미용실을 향해 걸었다. 채채는 미미 씨에게 우리 엄마보다 이쁘게 머리 자르고 오자.라고 신이 나 말했다. 나는 혼자 선선의 집으로 향했다.


선선은 나를 보자마자 퇴근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제 너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오늘은 빨리 퇴근하고 싶다고. 선선은 재택근무를 한다. 선선은 재택근무 경험이 없는 나에게 집에서 일하면 여유로울 거라는 환상을 깨준 사람이다. 그 사정을 뻔히 알아도 설거지 좀 하고 살라며 잔소리를 해주었다. 선선은 내 입을 막으며 채채가 오면 저녁 전에 간식으로 먹을 마들렌을 굽자고 했다.


저울에 보울을 올려놓고 선선이 읊어주는 대로 계량을 했다. 계란 1개. 설탕 40그람. 박력분 50그람. 버터 50그람. 베이킹파우더 2그람. 오늘 처음 마들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이런 지식은 직접 만들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경험의 산물이다. 나는 보울에 담긴 모든 재료를 위스크로 섞었다. 아주 걸쭉한 반죽이 될 때까지 저었다. 보울을 바닥을 탁탁 내리치며 거품을 빼고 반죽을 틀에 옮겨 담았다. 선선은 초코칩을 꺼내 반죽 위에 흩어뿌렸다. 완성된 반죽을 오븐에 넣어 구웠다.


마들렌이 한참 구워질 때, 미미 씨와 채채가 들어왔다. 채채는 집을 가득 채운 마들렌 냄새를 맡곤 바로 오븐 앞으로 뛰어갔다. 미미 씨도 집 안에 맛있는 향이 난다고 했다. 선선은 코트를 벗는 미미 씨에게 마들렌의 효능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동산에서 집 구경 온다고 하면 꼭 마들렌을 구워야 한대. 그럼 이 냄새를 맡고 사람들이 혹해서 집을 계약한대. 채채야. 오늘 마들렌 재민이 삼촌이 만들었다? 채채를 위해서 삼촌이 만들었어. 해가 뉘엿거리다 못해 어둠이 찾아왔을 때 마들렌이 완성됐다. 오븐에서 갓 꺼낸 마들렌에선 치명적인 버터향이 났다.


마들렌의 효능은 맛있는 향으로 집 안을 가득 채워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다. 선선이 말한 대로 부동산에서 집을 구경하러 온다고 하면 꼭 만들고 있어야 한다. 효능이 그렇다면 마들렌은 세상에 도움 되는 쓸모 있는 존재겠지. 아직은 내가 쓰고 만드는 책이 쓸모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오늘 만든 따듯하고 작은 마들렌처럼 효능이 생기지 않을까. 오늘 당장은 마들렌 덕분에 쓸모 있는 인간이 되었다. 마들렌을 꺼내 미미 씨, 선선, 채채와 함께 나눠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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