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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 Apr 12. 2022

꾸준함에 대하여

위대함의 다른 이름

소비는 찰나로도 그 가치를 보일 수 있지만, 생산은 꾸준하지 못하면 빛을 보기 어렵다. 나를 포함하여 대중들이 멋진 소비와 그 자랑에 열광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꾸준함을 상실해가는 우리에게는 그것이 가장 쉬워서다.


그 자신도 성공한 나PD가 한 프로에 나와 강호동 씨를 언급하며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


"제가 어렸을 때는 대단한 사람이 대단해보였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냥 꾸준한 사람이 참 대단해보여요."


관심있는 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 성공에 대한 담론을 주제로 할 때가 꽤나 많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주 모이기 마련이니까. '그래,맞지!'를 주고 받기도, 의아해하는 이견들을 섞기도 하면서 조금 은 깨달은 것이 있다. 세상에는 생각 이상으로 널리 알려진, 진입 장벽 낮은 성공의 길이 많다는 것. 여러 분야에서 각자의 성과를 낸 사람들이 공통되게 하는 말이다. 방법은 분명 많으나 그것을 하는 사람이 없다. 주저하고, 꾸준하지 못하고, 즉각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내던져버린다.


아래의 현상들이 그 예시가 될 것이다.


1. 웨이트트레이닝에 유달리 꾸준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즉각적인 성과가 가시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 투자가 성행하는 것은 그것이 소비와 생산 그 중간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이고 꾸준하게 생산에 개입할 자신도 능력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뒤쳐진다는 느낌은 싫기 때문에, 클릭 몇 번으로 가치를 '생산'한다는 느낌을 주는 투자에 '노력없이' 들어간다.


3. 원데이 클래스, 쇼츠, 릴스, 3줄 요약 ; 우스갯소리같지만 꾸준함을 잃고 잊은 사람들의 마지막 유희거리다. 덧없이 흘러가는 듯 보이는 일상에서 주변을 돌아보면 느껴지는 무언가라도 해야한다는 압박감 - 엄두도 안나는 생산 대신 소비를 찾는다. 그러나 유희조차 꾸준할 줄도, 제대로 끝낼 줄도 모른다. 유희조차 노력없이 쉬운 것을 찾는다.



나라고 이 사회가 돌고 있는 궤도에서 제대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이지 누구나 조금씩은 발을 담그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분명 우리에게 소비와 일시성을 지향하게 만든다. 지난 1년간 대차게 이에 대항하며 혼자만의 담론을 만들기에 바빴다 - 주된 주제는 '이 시대가 강요하는 것만 따르면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하기 어렵다.' 였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떠오르는 생각이라면 어떻게든 내뱉고 살았다. 그러면서도 정작 행동한 것은 '멋진 소비를 통한 행복찾기'였으니 아이러니하기만하다. 일련의 과정에서 내게 남아있는 객체는 옷 몇 벌, 위스키 스무 병, 책 백여 권, 그리고 증명할 필요 없는 <내적인 성장> (객체는 아니겠지만) 뿐이다.


증명할 필요 없는 담론에 빠져사는 것이 어차피 발붙여 살아가야할 신자유주의 세계에서는 조금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밀어내고 거부하려 애썼다. 내 노력, 어쩌면 그 이상이 필요한 세계를 마주하는 일이 두렵고 또 비참하리란 생각 때문이었을테다. 그냥 열심히 살기가 싫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이 문제라고 생각될 때 항상 속으로 되뇌이는 말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멋진 소비보단 대단한 생산이, 담론보다는 실행을 말할 때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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