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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 Sep 26. 2022

좋은 로퍼 고르기

올바른 신발 사이즈에 대하여

요즘 로퍼를 자주 신는다. 지인들에게 가끔 하는 말이긴 한데, 과장이 아니라 구두가 운동화보다 편하다. 좋은 소재와 알맞은 족형으로 제작된 구두는 길이 들면서 내 발에 맞는 느낌으로 신발이 변해간다 (학창 시절 삼선슬리퍼를 생각해보면 된다. 똑같은 삼천 원짜리 슬리퍼임에도 친구 것과 내 것은 발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구별이 되지 않았나!). 물론 달리기 같은 운동을 할 때야 당연히 운동화가 제격이겠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땐 발을 조이지도, 과히 덜렁거리지도 않는 가죽 구두가 가장 편안하다 - '감싸 안아 주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외출 시 자가용을 주로 이용해서 많이 걷지도 않다 보니 요즘엔 로퍼가 정말 편안해서 신는 신발이 됐다.


초기 형태의 로퍼. Weejuns라는 이름을 썼는데, 노르웨이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노르-위준스).

로퍼의 기원에 대해선 설들이 많지만, 인디언(Native American)이 신던 모카신에서 유래했다는 기원이 구두 업계에선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로퍼의 어원은 Loaf(빈둥거린다)-er로, 사실 20세기 중반 한 뉴잉글랜드의 회사가 특허를 낸 상표 이름이다. 해당 모양 신발의 명칭에 대해 여러 이름이 각축전을 벌이다 가장 입에 잘 달라붙고 이미지에 걸맞은 Loafer가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휴지곽을 미국에서 크리넥스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되겠다). 이 때문인지 알든을 비롯한 몇몇 회사에서는 자사 제품에 로퍼라는 말을 쓰지 않고 원래 기원에 걸맞게 Moccasin, Moctoe 등의 명칭을 사용한다. 그래도 원래 슬리퍼, 슬립온 정도의 역할이었던 구두에는 게으른 자의 신발, 로퍼라는 명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네, 접니다.

나도 한일한 아침에 근처 카페 가서 책이나 읽을 요량으로 집을 나설 때면 반바지나 추리닝에 갈색 로퍼를 신는 것을 좋아한다. 보통은 페이크 삭스도 생략하고선 맨발을 쑥 집어넣고 나가는데, 내 발에 잘 맞춰진 좋은 소재의 구두는 땀이 잘 차지 않는다. 과거의 슬리퍼라고는 하나 현대에 들어선 꽤 격식을 갖춘 가죽 구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미묘한 무언의 드레스코드가 필요한 공간에 편하게 가기에도 제격이다. 맨발에도 쉽사리 품격을 부여할 줄 아는 관대한 녀석이다.



로퍼를 고를 때에는 디자인, 만듦새, 소재, 족형(라스트)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 특히 나에게 맞는 라스트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발등과 발뒤꿈치 부위 정도로만 발을 고정하는 로퍼의 특성상 좋은 착화감을 위해선 피팅감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가죽이란 소재에서 오는 품격은 끈이 없기에 편안함을 아우를 수 있게 됐지만, 이는 개인 맞춤형 사이즈 조절 장치가 하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넓은 바지통이 대세가 되면서 신발도 딱 맞게 신기보다 꽉끈(아예 크게 사이즈 업을 한 후 끈을 꽉 묶는 방식)으로 신발을 크게 신는 것이 유행인데, 로퍼엔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주목! 대표적인 잘못된 신발 사이즈 이미지


신발 사이즈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발가락 부위가 끼지 않는 것이다. ABC 마트를 비롯한 유수 매장에서 '원래 신발은 신으면서 늘어나요'라는 멘트를 세뇌해서 그런지 발에 꼭 맞게 신으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발 건강에 좋지 않다. 발은 직사각형 모양이고 신발은 앞이 뾰족한 타원 혹은 삼각형 형태에 가깝기 때문에, 자연스레 앞부분에 여유 공간이 남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사이즈 선택법이다. 억지로 신발 모양에 발을 욱여넣은 상태로 오래 걸으면 발가락에 굳은살이 배기고 발 모양의 변형을 초래해 올바른 걷기 자세를 방해한다. 참고로 어떤 양말을 신었는지, 아침인지 밤인지에 따라 작게는 5에서 크게는 10까지도 사이즈 차이가 나기도 한다. 따라서 이를 염두에 두고 애매할 땐 살짝 큰 것이 더 낫다.




올바른 사이즈의 예시


로퍼 또한 엄지와 새끼발가락이 옆면에 끼면서 닿아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크게 신으면 끈처럼 발등을 고정해줄 수단이 따로 없어 발뒤꿈치 부위가 과히 들리며 들썩거리게 된다. 로퍼를 고를 때 앞부분의 조임과 뒷부분의 들썩거림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개인적으론 슬리퍼라는 신발의 기원 상 차라리 뒷부분이 들썩거리는 것이 낫다고 본다.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의 신발 사장님도 "기성 로퍼는 원래 좀 들썩거려도 신는 겁니다."라고 한 바 있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해보고 발등, 발볼, 발길이, 발가락 모양에 부합하는 족형의 로퍼를 찾는 과정을 추천한다. 도산 공원 쪽에 '유니페어'라는 구두 가게가 있는데, 가격대가 조금 있지만 합리적인 수준이라 생각될 정도로 서비스와 제품의 질이 뛰어나다. 사장님부터 직원들까지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개인에게 알맞은 구두를 추천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과 자부심이 대단한데, 꼭 거기서 구두를 구매하진 않더라도 한 번쯤은 들러 구경해보며 제품을 피팅해보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내가 신는 로퍼는 Church's 사에서 나온 Pembray 로퍼(UK 9.5)인데, 처음 피팅하는 순간부터 이거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발가락, 발등, 발뒤꿈치를 전혀 압박하지 않으면서도 들썩거리지 않으며 발을 감싸 안아주는 완벽한 착화감. 굳이 길을 더 들일 필요도 없을 만큼, 내 발을 라스트로 썼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든다. 개인의 발 모양에 딱 맞는 기성 로퍼를 찾는 것은 소개팅에서 이상형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행운에 감사하고 안목에 뿌듯한 마음으로 내 발에 들어온 이 녀석을 요즘 애첩처럼 끼고 다니고 있다.


오늘도 무료하여 한량의 마음 가짐으로 밖을 나갈 생각이다. 텐셀 소재 흰 셔츠에 체크 스윔 팬츠를 입고, 내 갈색 로퍼를 신어야지. 요즘 통 비가 온다 만다 하더니 오늘만큼은 좀 덥더라도 비는 안 왔으면 좋겠다. 비오면 우리 이쁜 뻼브레이, 가죽 상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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