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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인 Mar 07. 2021

1화. 타자의 세계, 타자의 시선

지금이야 나를 시각장애인이라고 소개하고 장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지만, 그 말을 꺼내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장애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마치 금기시되는 비밀을 털어놓듯 조심스러웠고 최대한 그 말을 피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표현을 찾았다. 나는 장애를 잘 몰랐고, 잘못 알았고, 잘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적어도 내가 장애인이 되기 전까지는 내 일상과는 무관한 어떤 다른 세계의 존재,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장애인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로 기억한다. 동네 놀이터에 가끔 출몰하는 한 남자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15살쯤 되는 발달장애인이었던 것 같다. 몸집이 크고 목소리도 커서 멀리서도 금방 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를 발견한 즉시 가능한한 빨리 도망치는 게 또래들 사이의 룰이었다. 호기심 많은 어떤 친구는 그의 근처까지 다가가 보기도 했는데 그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친구는 소리를 지르며 우리에게로 도망쳤고 우리도 소리를 지르며 같이 도망쳤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왜 뛰어야 하는지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나는 겁에 질려 최대한 그에게서 멀리 도망쳤다.


그 다음에 만난 장애인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봉사활동을 하러 간 장애인 시설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그 시설은 동네에서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낯선 곳에 있었다. 그곳은 최중증 장애인들을 보호하는 시설이었는데 처음 그곳의 장애인들을 마주했을 때 든 생각은 '무섭다' 였다. 나와 다른 신체, 나와 다른 움직임... 나는 그들과 분리되어, 걸레를 빨아 창문과 창틀을 닦는 것으로 봉사시간을 채웠다.


중학생 때 만난 장애인은 영어 과외를 받던 선생님의 아들이었다. 여섯 살 정도의 그 아이는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매 수업마다 함께했다. 그는 50분이라는 수업 시간의 끝을 정확히 알고 꺄르르 웃는 것으로 수업의 끝을 알려주었다. 장애인이라면 무턱대고 무서워하던 나였지만 그 아이 덕에 인식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고 지적장애인 복지관과 뇌병변장애인 보호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장애인과 더 가까워지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나는 장애인이 되고 나서 절망했을까? 장애가 생겼다는 말을, 장애인이 되었다는 말을 왜 꺼내지 못했을까? 장애는 철저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고 분리된 세계의 이야기였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월례행사처럼 한 달에 한 번, 그것도 시설에 가야만 만나는 특별한 사람. 장애인은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장애인을 경험하고 잘 이해하게 됐다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타자의 세계에서 바라본 타자의 시선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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