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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인 Apr 11. 2021

12화. 새로 쓰는 이야기

이전 회사에서 유튜브 제작 일을 하긴 했지만 촬영과 편집은 비장애인 편집자분들이 해주셨기 때문에 채널을 개설하고 영상을 업로드하는 모든 기술적인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 일들을 스스로 해내야 했다. 나는 유튜브 영상 제작과 채널 운영에 관한 영상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많은 유튜버들이 채널을 오픈하고 운영하는 과정 A to Z를 공유해주고 있었다. 신세계였다. 촬영과 편집뿐 아니라 채널아트, 썸네일, 재생목록 등 부수적인 작업들이 많았다. 제목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노출을 위한 키워드 분석과 알고리즘 분석이 필요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이런 작업들을 하나하나 배워서 해나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고 했던가. 구글 계정을 오픈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영상으로는 아주 간단해 보였는데 스크린 리더로 가입을 위한 메뉴에 접근하는 것이 익숙치 않았다. 확대를 해도 메뉴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렇게 몇 시간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겨우 가입을 하고 채널 오픈에 성공했다. 친구나 다른 비장애인 팀원에게 부탁하면 몇 분 안에 가능했을 일이었지만 할 수 있는 한 내 스스로 해보고 싶었다. 백수라 남는 게 시간이었고, 제작 과정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이전에는 몰랐던 기술적인 부분들과 편집 등 각 과정에 필요한 작업 시간도 파악하게 되었다. 기획과 콘티 작업부터 현실 가능성을 고려해 작성하게 되었고, 일을 더  주도적으로 하게 되었다. 영상을 하나 하나 만들어보며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팀원들에게 맡길 일을 분리해 우리팀만의 운영 프로세스를 구축해나갔다.

영상 편집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스스로도 당연히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전 회사에서 작업할 때도 편집할 부분을 따로 글로 써서 편집자분께 전달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팀원들에게 맡겨야 하나 고민이 됐다. 하지만 저시력 시각장애인 PD님이 어플을 사용해 태블릿으로 편집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학부 때 프리미어를 사용해 뉴스 영상을 편집했던 경험이 있어서 편집에 대한 기본개념은 알고 있었다. 다만 확대기능을 사용하더라도 그때처럼 섬세하게 작업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PD님이 알려준 어플로 편집을 시도해 봤지만 사용법을 익히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러다 더 직관적이고 쉬운 편집 어플을 알게 됐고 유튜브의 랜선 선생님들을 통해 어플 사용방법을 익혀 나갔다.

밝기나 색 조정을 하거나 자막을 넣고 스티커를 넣는 작업은 어려웠지만 많은 연습을 통해 내용을 듣고 컷 편집하는 작업은 금세 능숙하게 되었다. 시각장애인이니까 당연히 편집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스스로 깨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나 촬영은 친구와 피디님이, 기획과 컷 편집은 내가, 후 편집은 우리님이 하는 제작 프로세스가 갖춰 졌다.

그동안 배우를 준비하며 시나리오와 콘티에 익숙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애초에 기획과 콘티 작업을 꼼꼼하게 하고 스크립트를 써서 촬영 전까지 숙지했다. 촬영 때는 웬만하면 엔지 없이 한 방에 가려고 노력했고 편집은 콘티의 큰 틀을 따라가면 되었다. 그 덕에 촬영 시간과 편집 시간이 많이 줄었다.

채널을 운영하며 다른 시각장애인 유튜버들도 알게 되고, 새로운 랜선 동료들도 생겼다. 시각장애인의 의견이나 자문이 필요한 곳에서 연락이 오기도 하고 협업 제안이 오기도 했다. 유튜브 채널을 오픈했을 뿐인데 새로운 소통의 장이 열리며 색다른 관계를 맺어나가게 되었다.


물론 시각장애로 인한 불편함과 어려움은 여전하지만 그 중에서도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이야기들로 영상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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