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남들 다 몇 번을 걸린 코로나를 이제야 걸려버리다니 참...
쌓이는 약봉지들을 보며 뜬금없이 지난날 앞길이 막막했던 20대의 나에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남들보다 뒤처지는 팔자라고 했던 철학관 아저씨의 말이 생각났다.
20대 후반쯤이었나?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뭔가 일이 풀리지 않아 보이는 딸의 앞날이 걱정되셨던 엄마가 지인이 소개한 철학관으로 나를 끌고 가셨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는 내용은 하고 있는 도자기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내 손을 보며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보다 못하거나 늦게 시작한 사람들이 나를 앞서간다며 결국 뭘 해도 늦게 깨우치고 늦게 따라가는 팔자라는 이야기였다.
그때의 나는 젊었기에 그 철학관 아저씨에게 당신이 뭔데 나에게 도자기가 맞네 안 맞네 하냐며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와버려 엄마에게 엄청 혼이 났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도자기 작업이 더 힘들게 느껴졌고 게다가 경쟁하는 것도 싫고 남들 다 하는 그 무엇이라도 딱히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던 거 같다.
여전히 내 생년월일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들렀던 철학관에서 해주었던 말 역시 '도자기보다는 꽃이나 나무에 관련된 일이 나에게 더 좋다'이지만 도자기를 계속하고 싶다면 꼭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라는 조언 해 주었고 그래서인지 믿는 구석이 생긴 느낌으로 작업과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남들이 다 나를 제치고 먼저 나아간다고 해서 내가 내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 딱히 순번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늦게 코로나에 걸린 덕에 병원에서의 모든 일이 일사천리라 나는 앓아눕기만 하면 되었다.
때론 뒤처지는 것도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