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세모에서 동그라미로 갑니다.
관악 50+ 센터의 홈페이지를 눈앞에 두고 마우스 커서가 갈 길을 잃었다. 제안서 작성을 위해 며칠 밤을 지새우며 화면과 싸웠던 시간들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클릭 한 번이면 끝날 일인데, 그 쉬운 손가락 움직임 하나가 왜 이리도 버거웠을까?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결과에 따라 앞으로 남은 다른 센터들의 지원 방향까지 송두리째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3일이 넘게 이 짧은 찰나를 미뤄온 나 자신을 안쓰러워하며, 차라리 다른 곳처럼 문자로 통보해주지 않는 시스템을 원망해 본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침내 눌렀다.
"어?"
명단에 '박O희'가 있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찰나의 희열이 스쳤다. 하지만 그 기쁨은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차가운 현실로 바뀌었다. 이름은 비슷했지만 옆에 적힌 전화번호 뒷자리는'3OO6'. 나의 숫자가 아니었다.
명백한 아웃이었다.
경력보다는 강의안을 본다는 '열린 학교'라는 말에 기대를 걸었지만, 아직은 내가 부족하다는 성적표를 받은 기분이었다.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만큼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지는 않았다. 어쩌면 '박O희'라는 분의 존재가 준 찰나의 착각이, 이 쓰라린 충격을 조금은 흡수해 준 덕분이지도 모르겠다. 그분에게는 합격의 영광이 함께하시기를 빌어본다.
브런치 글쓰기 창을 열었다. 지금의 마음을 글로 몇 줄 적고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의 온기를 만났다.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흥미롭고 좋았습니다.
첫 댓글이었다. 어떤 글자도 남지 않은 시스템이 보낸 통보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독자가 건넨 따뜻한 위로. 지난 크리스마스를 반납하며 썼던 글 위로 스무 개의 하트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좌절의 구덩이에 다시 들어갈까 봐 무서웠던 마음이 한결 옅어졌다.
그 기운을 빌려 메일함을 열었다. 채용 소식이나 강의 확정 관련 답장이 왔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반, 또 다른 거절 통보일까 하는 불안 반.
재능기부 제안서에 대한 답장이 와 있었다.
"상반기는 조기 마감되어 어렵지만, 강의안이 좋아서 하반기에는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 가능한 시간을 알려주세요."
관악50+는 내 번호가 아니었고, 재능기부는 상반기가 막혔다. 성적표로만 보면 오늘은 실패한 날이다.
하지만 조금 전 마주한 댓글과 하트의 온기 때문인지, 메일 속 문장들이 다르게 읽혔다.
'세모'가 조금씩 굴러가서 '동그라미'로 변해가고 있다는 기분.
50대의 커리어 전환은 직선 코스가 아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때로는 옆으로 구르고, 가끔은 뒤로 밀리기도 한다. 완벽한 원이 아닌 울퉁불퉁한 세모처럼, 어딘가에 걸리고 삐걱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밖은 오늘도 춥지만, 노트북을 덮는 손끝에는 온기가 남아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둥글게 갈 수 있기를.
오늘도 잘 했다. 아자아자! 박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