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가 준 작은 숨구멍

딱딱해진 마음 위에 긋는 선 하나

by studio imparo 소희

목요일 저녁, 뒷목이 뻐근했다.

반려견 정수기 물소리와 컴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AI는 내가 원하는 대로 문제를 만들어 내지 않았고 스트레스가 가득했던 나는 모니터 앞에서 한심하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프롬프트를 정확하게 입력하지 않아서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조건을 추가하면 되는데...


1월 24일이 아니면 4개월 이후에 ‘국제 기반 ISO 인공지능지도사 – 프롬프트 엔지니어‘ 자격증 시험 일정이 있어서 약간은 무리가 될 것을 알면서도 시작했다. 약간이 아니었다보다. 시험 준비 3주째, 인공지능 엔지니어 용어들은 낯설고 어려웠다. 반백년이 지난 머리는 버거워했다. 시험일이 다가오자 날카로워져 갔다.


머리가 무거워 목을 좌우로 움직이다가 책상 한 옆에 둔 붓펜이 보였다.


12월에 신청해 놓은 캘리그래피 수업이 시작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현재 수입이 0원인 상태라 고용 24에 문의해 여러 단계를 거쳐 쉽지 않게 발급받은 국민내일배움 카드를 품에 안고 대학로로 향했다. 오랜만에 직무에 관련되지 않은 수업이라 사실은 마음이 들떠 있었다.

낯설고 어려운 인공지능 엔지니어 용어들

하지만 책상앞에 앉아 주중에는 자격증 시험에 매달렸고 캘리그래피 재료는 책상 귀퉁이에 놓인 채 며칠이 지났다.


손이 붓펜으로 갔다.


내 앞에 있던 자격증 예상 시험문제들이 적혀 있던 A4종이를 옆으로 밀었다. 지난주에 썼던 내 글씨가 있는 캘리그래피 종이를 놓았다. 어색한 글씨들이 아주 오래전에 국민학생일 때의 내가 붓을 잡고 서에를 쓰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붓펜의 그 말랑한 몸통의 감촉과 부드러운 털의 느낌이 마음을 간질였다. 뾰쪽 뾰쪽하게 서 있던 신경 세포들 사이로 몽글몽글 부드러운 기운이 내 머리를 감싸주는 느낌이 들었다.


큰 숨을 한 번 쉬고 붓펜을 들었다.


'캘리그래피 연습하는데 1시간쯤 쓴다고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진다면 이미 결정된 상황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반백의 나는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이 붓펜을 잡는 것을 참아야 한다고 나를 압박했었는지….


선생님이 적어 준 필체를 따라 하며 집중하며 캘리그래피 쓰는 연습을 했다. 시작 획 숨기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힘 조절도 잘 안되고 어떤 획은 자연스럽게 써지고 내 맘대로 안 되는 글씨들….


한참을 쓰다 보니 목덜미의 뻣뻣함과 온몸의 짜증이 빠져나간 것처럼 가벼워졌다.


아! 글을 써볼까?


문서의 빈 페이지를 열어 글을 작성했다.

글이 막혀서 보름이 넘게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글이 써진다.


캘리그래피가 나에게 작은 숨구멍을 주었나?


잘 쓰고 싶은 글쓰기도 아니고 합격해야 하는 자격증 시험도 아닌,

잘 안 써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캘리그래피. 그저 천천히 그으면 된다.


이 작은 트임이 숨 쉬게 해 주었다.


“고맙다, 나의 캘리그래피.”






아자아자! 박소희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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