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만약에 나

정원이가 데려간 영화관에서

by studio imparo 소희

1월 말, 정원이에게 연락이 왔다.

무조건 나오라고. 거절은 거절한다면서.

작년 말부터 제안서를 넣고, 계획서를 짰다. 연말 모임 연락이 와도 읽고 덮었다. 연초 모임도 그렇게 지나갔다. 내 머릿속이 시끄러우니까. 가서 즐겁게 웃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참다못한 정원이가 약속을 잡아버린 거였다.



오랜만이네


마침 추위가 풀려서 춥다는 핑계도 못 댔다.

집에서 나왔더니 정원이는 이미 우리 단지 지하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차 안에 있는 그녀를 보자 웃음이 났다.


"얼굴 까먹었어."

“미안해, 그래도 기분 좋네.”


정원이는 내 취향을 알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한식집이 아니라 브런치집으로 데려갔다.

망원시장 근처, 간판도 잘 안 보이는 작은 가게였다.

빵과 샐러드와 과일들.

사람도 많지 않아서 오롯이 음식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밖에서 먹으면 이게 좋다. 대접받는 느낌.



무슨 영화인지도 묻지 않고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지겠거니 했는데 정원이가 영화를 예매했다고 했다.


"영화? 왜?"

"오랜만에 가보자고. 너 영화관 온 게 언제야?"


코로나 전이었다. 그것도 정원이랑 봤던 것 같았다.

무슨 영화인지 묻지도 않고 따라갔다. 나도 참 무심한 사람이다. 열심히 골랐을 텐데.

게다가 눈이 아파서 시작할 때까지 눈 좀 감고 있겠다 했다.


그러다 영화가 시작됐다.

흑백이었다.



만약에 나


"만약에 우리"라는 영화였다. 흑백의 현재와 컬러의 과거가 교차했다.

대학생 때 만난 두 사람. 힘든 환경에서도 서로의 꿈을 응원했고 뜨겁게 사랑했다.

그리고 현실 앞에서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한순간도 딴짓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내 일이 아닌 다른 것에 완전히 몰입했다.

영화가 끝나고 정원이가 말했다.


"저런 연애가 꿈이었어."


나는 말했다.


"너 했잖아."


아니란다. 싸움도 많이 했다고.

지금도 여전히 알콩달콩한 부부임을 알고 나는 더 묻 않았다.



내 20대가 아까워서


나는 그런 연애를 몰랐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힘든 삶은 아니었지만 자유롭지도 않았다. 아르바이트해서 학비 벌고, 장학금 받으려고 수업 열심히 듣고, 통금 시간 지키느 여행 한번 내 맘대로 못 갔다.


그들은 힘들었지만 삶의 주인이었다. 나는 덜 힘들었지만 내 삶의 주인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2주가 지난 지금도 그 생각이 남아있다.


만약에 나였다면.
만약에 내가 나로 살았다면.



아이들한테는 늘 말했다.


"너희는 항상 자신을 먼저 두어야 한다."


내가 못했으니까.


아이들을 잘 성장했다. 다행이다.



이제라도 나로 살아야겠다.


쉬라는 말에도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도 내 맘대로 하는 것 중 하나다.

영화 속 두 사람이 예뻤던 건 젊어서가 아니라 삶의 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우리.

만약에 나.


그 질문이 아직 남아있다.


작가의 이전글새로운 길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