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도로 살아간다는 것
우리가 늦었다고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교하면 나의 이야기가 더디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늦음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늦어서는 안 된다는 선입견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한국에서는 ‘빨리빨리’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어, 늦음에 대한 고민은 곧 불안과 직결되곤 한다.
한국에서 자라면서 ‘늦음’은 항상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영유아기에는 또래보다 조금 느린 발달 속도를 걱정해야 했고, 학창 시절에는 한 번도 결석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여겨졌다. 개근상이라는 것이 단순한 표창장이 아니라, 이 사회에 내가 잘 적응하고 있다는 증표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파도 참고 등교했던 날들, 그건 정말 내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속에서 버텨낸 결과였을까?
부모가 되고 나서야 이 늦음에 대한 고민이 다시 찾아왔다. 아이가 말을 늦게 시작하자 의사는 상담을 권했다. ‘몇 개월이면 몇 개의 단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면,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 모든 아이가 같은 속도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어른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닐까?
결국, ‘늦다’는 건 어디까지나 비교의 개념이다. 우리는 누구와 비교하면서 살아왔던 걸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차이도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오히려 나서서 표현하는 것이 존중받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너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때때로 건방지다는 시선을 받을 수도 있다. 의견을 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분위기를 먼저 읽어야 하고, 너무 앞서 나가면 오히려 눈총을 받게 되는 분위기. 이런 문화적인 차이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시도할 때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는 너무 늦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너무 빠르지도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자연스럽게 정해진 흐름을 따르는 것이 미덕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느림’과 ‘빠름’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블루보틀 커피다. 블루보틀은 빠른 속도로 대량 생산하는 커피가 아닌, 핸드드립으로 한 잔씩 천천히 내려주는 방식을 고수한다. 우리는 보통 커피를 기다릴 때 ‘빨리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블루보틀에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오히려 커피를 즐기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단순한 기다림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이고, 어떤 이에게는 숨을 고르는 시간일 수도 있다. 이처럼 늦음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블루보틀은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늦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속도로 살아가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지금 시작해도 늦은 게 아닐까 하는 고민 속에서,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늦음은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 삶을 더 깊게 만들어줄 하나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단순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