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자전거 업힐에서 배우는 글쓰기 호흡과 케이던스
브런치 10년, 함께 축하하고 싶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매주 몰입하며 글을 쓰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글 쓰는 일상이 자연스러워진다!' 이것이 아마 브런치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 3개월간 로드 자전거와 관련된 이야기로 매주 연재를 이어가며 이 과정이 오르막을 오르는 라이더의 호흡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유지할 수 있는 호흡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오르막뿐 아니라 글쓰기에도 필요한 것이더군요. 『발칙한 로드 자전거 바이블』 중 「로드 자전거의 진정한 엔진, 허벅지에 투자하라」편에서 제가 처음 오르막을 오르던 순간을 이렇게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로드 자전거로 남산을 처음 올랐을 때였습니다. 해가 막 올라오던 시간, 길은 아직 차갑고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맑았습니다. 첫 굽이에서부터 심장이 계단을 뛰듯 들썩였고, 두 번째 굽이쯤 지나자 허벅지는 뜨거운 쇳덩이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핸들바 위로 떨어지는 땀 한 방울이 브레이크 후드에 닿아 번지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같은 문장이 계속 떠다녔습니다. “여기서 내릴까.” 내리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발보다 먼저 도착했습니다.
북악 스카이웨이는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S자 커브가 잇달아 말을 걸어왔고, 평평해 보이는 1%의 완만함조차 착각에 불과했습니다. 케이던스는 흐트러지고, 숨은 잘게 흩어졌습니다. 핸들 위로 몸을 말아 붙이는 동안, 허벅지는 매 순간 ‘지금 가진 것’과 ‘다음 한 바퀴’를 맞바꾸고 있었습니다. 수치로는 몇 분이었을 그 구간이, 몸속에서는 한 계절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오르막에서 배운 건 의외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오르막은 장비를 불러내는 척하면서 결국 리듬을 시험합니다. “당신이 유지할 수 있는 호흡은 무엇인가.” “당신이 지킬 수 있는 케이던스는 어디인가.” 응답은 허벅지가 대신했습니다. 한 번 끊긴 리듬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고, 욕심내서 더 올렸던 기어는 금세 값을 청구해 왔습니다. 그래서 오르막은 늘 ‘적당히’가 아니라 ‘정확히’의 문제였습니다. 내 호흡에 맞는 기어, 내 케이던스에 맞는 속도. 숫자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낮추어 맞추는 일.
정상은 생각보다 소박했습니다. 정상을 오른 것을 축하하는 현수막은 없었지만, 거기서 내려다본 도시는 분명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방금 전까지 그 도시에 속한 한 사람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그 도시를 ‘올라온’ 사람으로 서 있었습니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은 사람만이 넘을 수 있는 경계선—나는 그 선을 간신히 넘어섰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물러서지 않은 기억, 한 바퀴를 더 굴린 흔적이 허벅지에 층층이 쌓여, 다음 고비를 넘길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남산과 북악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르막은 우리에게 늘 공평하다.” 오르막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오래 연습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숨을 걷어갑니다. 그 속에서 오직 자신만의 리듬에 몰입을 한 사람만이 오르막은 올라오는 것을 허락합니다.
어쩌면 이 자신만의 리듬이 가장 필요한 곳이 바로 글쓰기 아닐까요. 첫 편은 순식간에 써 내려가더라도, 다음 편 언덕에서 멈춰 서버리는 것이 글쓰기인 듯합니다. 다음 문장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건 억지로 끌어내는 힘이 아니라, 내 호흡과 맞는 박자를 찾는 일이더군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페달을 밟듯 단어를 올려놓을 때 문장은 비로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오르막이 공평하듯, 원고지 위의 빈칸도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중요한 건 그 앞에서 내 호흡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느냐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제 꿈을 이렇게 적어봅니다. "브런치에서 만난 문장들이 저를 이끌어 주었듯, 글을 통해 누군가의 첫 오르막을 함께 오르고 싶다." 제 글 속 한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포기하고 싶은 순간, 한 바퀴 더 굴릴 힘이 된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제가 브런치에서 이루고 싶은 완주이자 또 다른 출발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