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아 나두나두”
부쩍 재잘거림이 많아진 셋째가 차 안에서 한 말이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모두 차에 타서 집으로 가고 있던 그때, 아이들과 친구 이사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땅아가 뭐지? 그게 무슨 뜻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제야 말 문이 터지는 아이의 말은 수수께끼 같다. 상황과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 그 순간이 돼서야 이해할 수 있다.
자주 쓰는 ‘뚜뚜’라는 말도 언제는 ‘했어 ‘가 되고 언제는 ’또‘가 된다.
내일모레부터 어린이집을 가기로 원에 이야기를 해 두었다. 문득
‘내가 보지 못하는 일상이 많아지면 아이의 말도 이해할 수 없겠지.’ 란 생각에 서글퍼졌다.
사실 나는 아이 보는 일이 별로 힘들지 않다. 육아가 힘든 게 아니라 달리고 싶은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이 힘든 것이다. 또 언제나 부족한 돈이 문제다. 까짓 마음을 내려놓자. 조금 더 참는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이의 말이 아깝지 않은 그때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