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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i Sep 21. 2024

빵의 오해

초보는 빵을 먹고 자란다

아스팔트 도로에서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낸다.
그건 귓가를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다.
나의 눈 앞이 흐릿해진다. 운전대를 잡은 손 끝부터 시작해서 몸이 순식간에 얼어붇는다.
도로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는 소리가 크고 모두에게 들리지만, 나의 사과는 충분히 표현되지 않는다. “너무너무 죄송해요…” 울상이 되어서는 비상깜빡이를 오래 켠 채 주변의 익숙한 차들의 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도망쳐 나온다. 엑셀을 밟는 발 끝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양쪽에 달리는 차들이 모두 낯선 차들로 바뀌었을때, 신호등의 빨간 불에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섰을 때, 그제야 크고 둥그런 한숨이 나온다.


운전연수를 받을 때 나는 사이드미러를 보는 방법도, 어느정도 거리에서 차선변경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없었다. 잘 모르겠지만 대강 이 정도면 되겠지, 할 때 깜빡이를 켜고 선생님의 눈치를 잠깐 본 후 아무 반응이 없으면 안심하고 차선을 변경하는 식이었다. 방법을 모르고 눈치껏 운전을 하다 보니 아슬아슬하게 차선 변경을 하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위험한 순간이 오면 뒷차는 어김없이 나를 향해 경적을 울렸다. 하루는 어떤 차가 창문을 내리고 내 얼굴을 확인하기도 했다. 어떤 놈이 저딴 식으로 운전하냐는 의도였겠지. 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하기 바빴다. 그런 나의 옆에서 운전연수 선생님이 대신 화를 내 줬다.
“지는 초보 시절 없었대? 왜 창문까지 열고 그래?!”
나는 입술을 물어뜯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화가 많이… 나셨나봐요…”


초보 시절 나에게 빵- 하는 경적 소리는 분노였다. 누구든 나에게 화를 낼 수 있다고 가정하고 나갔던 도로였기에 나와 상관 없는 소리도 나를 향한 것으로 느껴졌다. 잘 달리고 있다가도 어디선가 경적 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라 속도를 늦추고 거울을 두리번거렸다. 맞아, 나는 아직 초보니까. 그렇게 나는 도로에서 작아졌다.


매번 이렇게 다른 차에게 화를 받아내기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다른 차에게 화를 낸 순간이 있었다. 세종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도로였다. 이 구간은 대부분 방음터널이고 중간 중간에 빠지는 길이 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네비게이션을 조금만 잘 못 보면 차선을 잘 못 타거나 빠지는 길을 놓쳐서 길을 헤매기 쉬운 곳이다. 나는 자주 지나다니던 길이라 아는 길로, 아는 차선으로 편안하게 주행 중이었다. 그 때, 내 앞에 한 차가 아주 급하게 끼어 들었다. 조금만 브레이크를 늦게 밟았으면 부딪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순간 놀란 나는 세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빵 ——!” 처음으로 내 차에서 큰 소리가 난 순간이었다. 갑자기 끼어들었던 앞 차는 미안하다는 듯이 비상등을 깜빡이면서 서서히 내 앞을 지나갔다. 손발이 바들바들 떨리고 눈 앞의 시야기 흔들거렸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핸들을 잡은 손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했다. 그리고 천천히, 내 체구에 비해 한참 크게 느껴졌던 내 차가 내 몸에 맞게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내 귀에는 분노로만 느껴졌던 자동차 경적 소리들이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늦게 바꾸는 바람에 빠져 나가기 위해 줄줄이 늘어선 차들 사이를 비집고 끼어들어야 하던 날이었다. “이 쯤이면 되지 않을까..?” 간격이 넓은 구간에 깜빡이를 켜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있는데 뒷차가 나에게 짧게 “빵,”하는 경적을 울렸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끼어 들어가는 나를 기다려 주었다. 아무것도 밟지 않으면 저절로 굴러가는 차에서 나를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순간. 그 때 느꼈던 경적의 언어는 분노가 아닌 배려였다. 나를 톡톡 치며 “지금 들어가도 돼요!” 하는 짧은 외침이었다. 자동차 점검을 받고 돌아오는 어느 늦은 오후,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 유난히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뒤쪽에서 한 차가 상향등을 깜빡거리더니 빵,빵 하고 경적을 울리고는 내 옆을 지나갔다. 그 순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전조등을 켜지 않고 깜깜한 채로 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깜짝 놀라 급하게 전조등을 켰다. 눈 앞에 어두웠던 도로가 밝아졌다. 환해진 시야만큼 내 안의 인류애가 반짝 하고 차올랐다.


운전이 많이 익숙해진 지금도 빵- 하는 클락션 소리를 종종 듣곤 하지만 심장이 철렁 내려앉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빵의 다른 의미를 알게 됐으니까. 단순히 나에게 크게 화를 내는 소음이 아니라는 것도, 어떤 순간에는 조심하라는, 또 어떤 도로에서는 얼른 지나가라는 배려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리고 분노가 담긴 빵을 먹어도 괜찮다.
“맞아. 내가 잘 못 했어. 다음에는 더 잘 해볼게.” 그렇게 얘기하고 비상등을 깜빡이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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