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혁의 <사랑> 변천사에 대해서 묻다
마지막 장을 덮고, 엔딩 크레딧이 흐른 뒤에도 마음 한켠에 오래 머무는 작품이 있습니다.
퀘스천퍼데이는 그 여운의 틈에 스며든 질문 하나를 꺼내어 소개합니다.
매일 질문 보내는 뉴스레터, 퀘스천퍼데이에서는 이렇게 '큐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아주 긴 질문을 발행한 적이 있어요. 2025년 9월 17일에 발행한 글을 보내드립니다. AKMU의 <BENCH>라는 곡과 이찬혁의 솔로 앨범 <EROS>에 드러난 그의 '사랑론'을 살펴보고, 사랑의 반대말이 무엇일지 스스로 고민해보세요.
✈️ 2025년 9월 17일에 보내드리는 오늘의 질문이에요.
– 발행인 평정
“왔다네 정말로 / 아무도 안 믿었던 사랑의 종말론 / It’s over tonight”
- 이찬혁 정규 2집 앨범 『EROS』, <멸종위기사랑> 中
사랑의 반대말은 멸종일까요, 미움일까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요? 뮤지션 이찬혁은 꾸준히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왔어요. 2021년 AKMU의 <BENCH (with Zion.T)>는 미움을 넘어서는 사랑을 노래했지만, 2025년 『EROS』는 더 깊은 질문을 던지죠. 2021년 <BENCH>와 2025년『EROS』를 따라가며, 그가 이야기하는 사랑의 변화와 함께 그 반대말은 무엇일지 이야기해볼게요.
<BENCH>는 AKMU의 앨범 『NEXT EPISODE』에 실린 곡으로, 이찬혁의 사랑관이 따뜻하고 낙관적으로 빛나는 순간이에요. 가사를 보면 '나 때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 하겠다고 하죠. 세상의 비판과 미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바로 벤치에 누워, '천장 없는 내 집을 누비'면서요.
여기서 벤치는 단순한 의자가 아니라, 매일매일 상처를 잊고 새롭게 시작하는 자유의 공간이에요. “이른 아침 벤치 위에서 깨어나 / 모든 걸 잊고 있어”라는 가사는 미움을 망각하며 사랑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죠.
<BENCH>에서 사랑의 반댓말은 확실히 미움입니다. 이 미움은 외부에서 표현되는 적대감일 뿐, 사랑의 본질을 흔들지 못해요. 이찬혁은 미움을 잊고 모두를 안아주는 포용적 사랑을 노래하며 '사랑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어요. 이렇게 2021년의 <BENCH>에 이어, 올해에는 아예 사랑을 주제로 솔로 앨범을 내기에 이르는데요.
“그들은 사랑에 대해 말해요.
사랑에 대해 노래해요.
세상 모든 노래는 사랑에 대한 노래라죠.
나는 그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때때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오류(errors)를 노래합니다.”
– 이찬혁 정규 2집 앨범 『EROS』 소개글 中
4년 뒤, 이찬혁의 솔로 앨범 『EROS』는 사랑에 대한 질문을 새롭게 던져요. 제목부터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을 전하는 에로스(Eros)와 ‘오류(errors)’를 중의적으로 담아, 사랑의 불완전함을 직시합니다. 이찬혁은 왜 이러한 불완전함에 집중했을까요? 대표적으로 아래 두 곡이 이 앨범의 주제를 잘 보여줘요.
<멸종위기사랑>은 사랑이 희귀해지는 세상을 그립니다. 하지만 멸종의 위협은 역설적으로 사랑의 존재를 증명해요. 사랑이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없다면, 우리는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죠. 이 곡은 결핍이 비로소 사랑을 존재하게 한다고 노래합니다. 사실 ‘멸종 위기’는, 생태 분야에서 쓰이는 언어죠. 그렇게 이 노래를 직역하자면 사랑이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서식지’ 가 사라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아요. 따뜻한 말의 온도나, 묵묵한 기다림의 시간, 관계를 지탱하는 작은 배려 같은 것들이 사랑의 서식지가 되죠. <멸종위기사랑>이 경고하는 건 ‘없음’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이 머물 자리를 갉아먹는 냉소적인 우리 사회, 생태계라고 볼 수 있어요.
<빛나는 세상>은 이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어요. “빛나는 세상은 오지 않지만 / 그런 걸 바라는 우린 빛이 날 거야”라는 가사가 그렇죠. 사랑이라는 완벽한 이상은 없어도, 그 결핍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바라는 마음이 우리를 빛나게 하고, 비로소 이상을 존재하게 하는 거예요. 결론적으로 이 앨범에서 결핍은 사랑을 약화시키는 적이 아니라, 사랑을 지속시키는 동반자로 규정됩니다.
<BENCH>와 다르게, 『EROS』에서 사랑은 미움과 대립하는 힘이 아니라, 결핍과 공존하는 여정으로 재해석돼요. <BENCH>에서 미움에도 불구하고 포용해내는 힘이었던 사랑은, 마치 허들처럼 미움을 넘어서 지나치겠다는 것처럼 보여요. 미움과 같은 걸림돌들을 초월해내는, 사랑의 힘을 믿는 낙관적인 태도를 보여주죠. 반면에 『EROS』는 미움을 비롯한 결핍들을 껴안은 채, 빛을 찾아갑니다.
두 앨범 사이의 간격인 4년 동안, 이찬혁은 세상의 손가락질을 정말 많이 겪었어요. “GD병 걸렸다”는 조롱을 받으며 독창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지나치게 실험적인 예술로도 비판받던 그는, 그럼에도 자신의 색깔을 고집하며 나아갔죠. 『EROS』의 수록곡 <돌아버렸어>는 직접적으로 이 여정을 표현하기도 해요. 이찬혁이 마치 공작새 같은 모습으로 춤을 추다 '돌아버리는' 뮤직비디오는, 예술가로서 스스로는 필연적이고, 또 자연스러웠던 이찬혁의 다양한 표현들이 대중의 비웃음을 샀던 시간을 반영하죠.
이러한 시간들을 거쳐, 이찬혁은 비로소 사랑이 미움을 넘어서는 힘만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거예요. 냉소와 조롱 속에서, 마치 사랑이 사라질 것만 같던 그 감각이 곧 사랑 그 자체임을 깨달은 그는 솔로 앨범 『EROS』를 내놓고 앨범 커버에서 스스로 사랑을 전하는 천사인 '에로스'가 되기에 이릅니다.
그의 주장을 따라가보면,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도 결핍도 멸종도 아니에요. 그렇다면 사랑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가장 조용하고 완강한 적은 냉소와 방치, 더 이상 서로와 대화하지 않으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어요. 여러분의 사랑은 어떤 반대와 마주하고 있나요?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도 결핍도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퀘스천퍼데이는 질문에 대한 구독자 답을 받아서, 다음날의 뉴스레터에 실어드려요. 이 글이 발행된 다음 날인, 9월 18일에 실린 실제 구독자님들의 답변입니다.
빙글
"사랑은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는 데서 비롯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끝없이 이해하려는 의지에서 지속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반대말은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하홍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사랑은 사소한 관심으로 시작되고 무관심으로 끝나기 때문"
유나
"외로움이라고 느껴요.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게 사랑이라면, 그 반대는 철저히 혼자가 되는 거니까요."
돌아서면
"자기 부정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은 나를 긍정하고 상대도 긍정하는 건데, 사랑이 없을 땐 스스로조차 부정하게 되더라고요."
블러
"망각 아닐까요? 시간 지나면 이별도 잊듯이 사랑도 익숙해지고 서서히 잊고 그렇게 증발해버리곤 하니까, 결국 잊지 않는 맘이 중요한거죠."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는, 그러나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나 자신과 나의 생각에 대한 질문은 꼭 필요해요.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또 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죠. 아직 구독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도 질문 한번 받아보세요. 귀찮을 정도로 성실하게, 매일 보내드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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