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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프 Dec 08. 2022

그녀가 떠나야 했던 이유

39. 반딧불의 빛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그녀는 짐을 싸고 있었다


앉은자리에서

마음부터 먼저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떠나야 하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찬 공기에 한 번 부르르 떨고

반딧불의 빛을 찾으러 간다는

낭만을 이유로 붙였지만

왠지 더는 캐물을 수 없었다


나중에 짐작하게 된 실제는 따로 있었다


그녀는 어느 누구와도

평등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평소 온화한 표정으로 지내다가도

누군가의 친절에 빚진 기분이 들면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갚으려 했다


보상을 기대하고 베풀어진

호의는 아니겠지만


그녀는 다시 베풀어

평등함을 되찾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가 갚지 못할

거절치 못할 친절은

고지서처럼 꾸준히 발송되었고


평등을 위해

일일이 체크해가며

그녀는 계속해서

강박을 누적시켜왔다


그러다 그녀를 파산시킬만한

고지서가 또 하나 도착하고

결국 포기에 이른다


요컨대

그녀는 친절에 빚진 사람이 된 것이다


친절의 독촉에

반발 심리가 더해져

자신을 어딘가로 떠나보내기로 했다


갚아야 하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곳으로


실제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그녀는 반딧불의 빛을 찾으러 간 것이니

혹시 만나게 된다면 미소만 살짝 지어주길


당신의 친절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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