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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프 Dec 08. 2022

우울한 신사 이야기

38. 그는 무기를 항상 곁에 둔다

상극의 계절이 찾아오면

아쉬움을 해결치 못하는 일이 잦아지고

또 한 시름 앓을 징조가 나타난다


움직임이 적어지고

번데기처럼 몸을 감싸줄

무언가를 찾게 되고

동면을 준비하는 짐승처럼

사람의 형상에서 점점 멀어지는 증상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그는

매사에 끙끙 앓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걱정은 금물이다


그는 무기로 자신을 해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으니


두통에 아스피린이 필요한 것처럼

우울을 무기로 쓰는 사람은

항상 적당량의 울적함을 지녀야 하는 법


잘만 사용한다면

제법 괜찮게 갈린 칼처럼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상극의 계절, 보통 첫눈이 내리는 달,

그 쯤에 증폭되는 우울은 아프다


통각과 동반되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단맛을 느낄 때까지 생쌀을 곱씹는 것과

비슷한 행위를 하게 한다


그러다가

표정은 묽게 사라지고

천천히 짐승의 모습이 되어


아니, 그가 머리맡에 두었던

무기 자체가 되어


아무도 모르게 동면에 들어가 버린다


괜찮다

계절이 지나면

인간으로 돌아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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