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정상적인 학부모들은, 너무나 비정상적으로 의대 진학 놀음에만 열중인지라, 내가 이런 글을 아무리 쓴다 한들 말릴 수가 없기에 답답하고, 그런 심정으로 가르치다 보니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수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수백 수천 가지의 특성 중에서 몇 가지가 조합된, 세상에 둘도 없는 유니크한 존재인데, 그 특성들이 의대 진학에 도움이 안 되면 마치 뽑기 실패로 괴성을 지르는 유튜버들 같아서 안쓰러울 따름이다.
똥개, 시고르자브종, 믹스견, 하이브리드견, 부르기 나름이지만, 나는 우리 강아지들을 소개할 때 그냥 믹스라고 하곤 한다. 믹스, 무엇인가 섞여있다는 것이지. 당신도 정자와 난자의 믹스 아닌가? 인간은 모두 X와 Y의 결합에서 시작되지만, 그 결과인 각각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존재인가?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당신과 내가 다른 것처럼, 각각의 믹스견들도 그냥 똥개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발현이며, 수천수만 가지 조합 중에 선택된 유일한 존재이다. 나는 우리 강아지들이 각각 세상 단 하나뿐인 강아지라고 믿으며,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서 필요한 침착성, 인내력, 지적 우수성 등등은 쉽사리 발견되는 특성이 아니다. 각각이 매우 희소한 특성인데도, 저 모두를 갖춘 경우에나 의대 도전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인내력은 좋지만 지능이 부족하다면, 계속 고통받을 뿐이다. 머리는 똑똑한데 침착성이 없다면, 실전에서 쉬운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그래,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운 좋게 저런 특성을 모두 갖추고 태어난 친구 아들을 부러워할 것인가? 아니면 당신의 자녀에게 집중해서, 당신의 자녀만이 가지고 있는 멋을 세상에 뽐낼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
특성 얘기한 김에 몇 가지 얘기해 보자. 침착함은 문제를 풀 때는 좋겠지만,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여야 할 때에조차 느긋하게 행동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남들보다 머리가 똑똑한 것이,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의료인의 범죄들이 문제가 되면 일반인의 그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라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백번 거절에도 묵묵히 사랑을 외친다면, 이건 인내가 아니라 스토킹이다. 시험은 단순하지만, 삶은 보다 복합적이다. 그냥 정말 이기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의사 아들이 아니라, 효심이 깊고 부모를 정말 사랑하는 자식이 제일 좋지 아니한가?
오늘 시험이 끝난 아이의 학부모님께서, 자녀가 드디어 꿈이 생겼다고, 기쁘게 말해주셨다. 범죄 현장에서 증거를 찾고, 피해자를 돕는 과학수사관리관이 되고 싶다고 하시더라. 너무 좋았다. 꿈이 뭔지 모르겠다던 제자에게, 꿈을 세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살겠다는 각오, 의지라고, 매 시간마다 얘기했던 게 드디어 꽃을 피웠나 보다. 차분하고, 꼼꼼하며, 내향적이지만, 자기주장이 분명한 아이기에 정말 억울한 사람을 돕는 이러한 조사 업무에 잘 맞을 것 같아서,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얘기한다.
너의 꿈을 응원한다. 꼭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