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가불 해서 공부하는 아이들, 그리고 잔혹한 이자
"치익- 탁."
정적만이 감도는 수업 시간. 칠판에 적히는 소리 사이로, 아주 경쾌하고도 불길한 소리가 교실 뒤편에서 들려온다. 캔 따는 소리다. 고개를 돌려보지 않아도 안다. 검은색 캔, 가운데 박힌 형광색 M자 로고, 일명 '몬스터'.
그 소리는 내게 보내는 구조 신호 같다. "선생님, 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 억지로라도 뇌를 깨워서 이 미적분 공식을 쑤셔 박아야 해요."라는 아이들의 비명 말이다.
시험 기간이 되면 학원가 편의점 쓰레기통은 '몬스터'와 '핫식스'의 무덤이 된다. 아이들은 물 대신 카페인을 마신다. 밥 먹을 시간은 없어도, 2+1 행사를 하는 몬스터를 사재기할 시간은 있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 오늘 세 캔째예요. 심장이 좀 빨리 뛰는데 공부는 잘 돼요."라며 자랑한다. 등골이 서늘하다. 저건 공부를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생명력을 미리 가불 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이 '검은 캔의 마법'은 참으로 달콤하고도 잔혹하다. 시험 기간, 아이들은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한다. 눈은 퀭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그 모습을 보며 안도하면서도 불안해한다. "우리 애가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멈추라고 할 수가 없다. 멈추면 뒤처지니까.
그 대가는 참혹하다. 약발이 떨어지는 평소 수업 시간이 되면 반드시 '반동'이 찾아온다. 억지로 끌어다 쓴 에너지는 비싼 이자를 쳐서 갚아야 하는 법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눈을 부라리며 질문을 쏟아내던 녀석이 오늘은 시체나 다름없다. 뇌가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주인놈아, 더 이상은 못 해 먹겠다. 제발 잠 좀 자자.'라며 뇌세포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태, 나는 이걸 '좀비 모드'라고 부른다. 이런 상태에서 2시간, 3시간 수업을 듣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저 깨진 독에 물 붓기다.
학부모님들과 상담하다 보면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는다.
"선생님, 애가 너무 졸려하니까... 본인이 사 달래요. 오죽하면 그걸 마시겠어요.
안쓰럽긴 한데 아이가 원하니깐, 한 박스 사 뒀어요."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아이가 책상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걸 보느니, 차라리 카페인의 힘이라도 빌려서 버티게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일 테다. 하지만 이건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열일곱 살 아이가 간신히 버티기엔 이 입시라는 판이 너무 가혹하게 설계되어 있는 탓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봐야 한다. 카페인은 피로를 없애주는 게 아니라, 뇌가 피로를 느끼지 못하게 감각을 차단하는 마취제다. 몸은 비명을 지르며 쉬어야 한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아이들은 스스로 몬스터라는 마개를 틀어막고 강제로 기계를 돌린다. 부모는 그게 안쓰러워 총알(음료수)을 대주는 보급병 역할을 자처한다. 이 얼마나 슬픈 전쟁인가.
수면은 뇌의 청소 시간이다. 낮 동안 받아들인 정보 중 쓸모없는 것을 버리고, 중요한 기억(수학 공식)을 저장하는 작업이 잠을 잘 때 이루어진다. 그런데 잠을 줄이고 카페인을 때려 붓는다? 이건 열심히 공부한 내용을 저장하지 않고 '전원 끄기'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10시간 공부하고 4시간 자는 아이보다, 7시간 공부하고 7시간 자는 아이가 결국은 이긴다. 이건 내 신념이 아니라 뇌과학이 증명한 팩트다. 하지만 옆집 아이가 밤을 새운다는 소리에, 이 팩트는 힘을 잃는다. 불안이 과학을 이기는 세상이다.
각성 상태가 끝나면 우울감이 찾아온다. 카페인 금단 증상으로 예민해져서 짜증을 내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성적이 내려가고, 그 성적을 올리려 다시 몬스터를 따는 악순환.
제발 부탁드린다. 아이 방 쓰레기통을 확인하시라. 검은색 캔이 수북하다면, 아이를 혼낼 게 아니라 같이 아파해야 한다. 그리고 용기를 내야 한다.
"오늘은 몬스터 마시지 말고 그냥 자라. 하루쯤 푹 잔다고 대학 못 가는 거 아니다." 부모가 이 말을 해줘야 아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캔을 내려놓는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건, 억지 각성을 위한 시커먼 음료수가 아니다. 부모의 불안이 섞인 몬스터 박스가 아니라,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핫초코 한 잔과 푹신한 베개다.
부디 아이의 뇌를, 그 소중한 머리를 화학물질로 절이지 않도록 우리가 막아줘야 한다. 아이들은 연료를 주입하면 24시간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