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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im Dec 22. 2020

선생님들 세컨폰을 쓰세요

소소한 이야기

교사가 되고 나서 일 외적인 부분에서 다소 당황했던 점이 있다. 내가 마치 연예인이나 공인이 된 것처럼 사생활이 노출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정도로까지는 아니겠지만, 불편한 점이 여럿 있었다. 


첫째로, 학군내의 장소에서는 어디에서든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교사니까 당연히 어디에서든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학군내에서는 그것이 좀 더 심해진다. 내가 어디에 갔고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가 그렇게 이야기가 퍼질줄은 몰랐다. 퇴근 후에 학교 앞에서 누군가를 만났는데 다음날 바로 소문이 퍼져 있어서 심히 당황스러웠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한 아이가 하는 말이

"선생님 여자친구 분 완전 별로라던데요?"


화가 나기 보다도 어이없는 감정이 들었으나, 이내 나의 위치를 돌아보고는 오히려 내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했다.


'아, 학교 근처에서는 어떤 행위도 조심했어야 했는데'


이 일은 학교를 중심으로 나라는 사람은 이미 교사로서 공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준 일이었다. 물론 그 이후로는 학교 주변에서 지인을 만나거나 사소한 행위도 거의 하지 않는다. 단순히 편의점을 가서 물건을 사는 일도 학교 주변에서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누가 보고 누가 들을지 그리고 이야기가 어떻게 퍼져나갈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나의 사적인 삶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미 '공인'으로서 인식되기 때문에 교사로서의 '사적인'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혼동되게 한다. 


'나의 사생활까지도 교사로서의 잣대로 평가되어져야 하는 부분인가?'


둘째로, 이런 일도 있었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잠시 여자친구 사진으로 해두었던 적이 있었다. 원래는 노출되는것을 꺼려 해놓지 않다가 여자친구의 성화에 잠시 프로필 사진을 여자친구 사진으로 해두었었는데 며칠 뒤 바로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샘 여자친구 어떻더라. 결혼은 언제 해?' 등등의 이야기들이 나도 모르는 새 교내에 퍼지기 시작했고, 내 여자친구의 외모 품평회가 이미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 한창 열렸었다는 것을 회식 자리에서 알게 됐다. 예상은 했었지만 참으로 저급한 일이었다. 어째서 나의 평범한 여자친구가 그녀들의 품평회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당사자인 나도 모르게 많은 이야기들이 재생산 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일들이 무례하지만 직장내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떤 사적인 사진도 카톡이나 sns에 올리지 않는다. 개인적인 사진이 누군가의 사이에서 돌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서는 여자친구의 사진이 학부모나 우리 학생들까지도 돌려봤으리라 생각하니 다시는 카톡이나 sns에 나의 삶을 노출할 수 없게 되었다.


어쨌든 이런 류의 불편한 이유로 말미암아, 8년차쯤 되어 업무용 세컨폰을 개통하게 되었다. 기계는 중고 아이폰으로 7만원 정도에 구입하였고, 한달 통신비는 알뜰폰으로 단돈 9900원짜리지만 업무용 연락이나 소통으로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세컨폰 덕에 나는 불필요한 업무용 연락과 공적인 영역을 나의 사적인 영역과 분리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소소하지만 비로소 표현의 자유를 되찾게 되었다. 단지 휴대폰을 두개 들고 다니는 불편함은 있지만, 그것에 비해 내가 얻는 행복과 자유는 월 이용료 9900원의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 더 이상 교사로서 나의 삶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사소한 노력도 하지 않아도 되고, 현대인으로서 해야하는 sns를 통한 지인들과의 소통도 가능하게 되었다.


나 역시 교사로서 내가 가져야 하는 몸가짐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충실히 행하려 하지만 교사로서의 나와 인간으로서의 나의 영역은 어느정도 분리해서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교사를 하나의 평번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그 사적인 삶도 존중해주는 문화보다는 성직자나 교직자로서의 삶의 모습을 바라는 분위기가 훨씬 크다. 여기에 대해서는 교사로서 응당 받아들여야 하지만, 자유로움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만나는 모든 교사들에게 항상 세컨폰을 권한다. 9900원의 자유를 누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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