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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im Feb 05. 2021

바야흐로 업무 분장 시즌 - 1

무거운 이야기와 일침 가하기

연말 연시는 학교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다. 아이들의 나이스와 생기부 입력 및 점검, 학년 마무리 등으로 교실에서도 각각 굉장히 바쁜 시기이며 동시에 '업무 분장' 시즌이기 때문이다. 초등의 경우 교사가 모든 교과목을 맡을 수 있고 학년 어디에도 배치될 수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내부 규정과 협의에 의해 업무와 학년이 정해진다.


교사로서 내가 1년간 어느 학년을 가르치게 될지, 어떤 아이들과 만나게 될지, 어떤 교사들과 팀을 이루어 일을 하게 될지 그리고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가 개인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거의 교사 개인에게는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모든 구성원들이 긴장하는 시즌이다. 하물며, 학생들과 학부모들 조차도 어떤 교사가 어느 학년에 배치되는지는 큰 관심사이기 때문에 이 학년말 '업무분장'이라는 녀석은 모든이들을 예민해지게 만든다.


업무 및 학년 배정은 일반적으로 학교의 내부규정에 의해 정해지고 최종적으로 교장이 결정하는데,

내부규정을 무시하고 개인 사정을 봐준다거나

혹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특혜를 준다거나 하는 식의 사례들로 실상 유명무실한 시스템이 되는 곳도 많다.


내부규정은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그 학교에서 그동안 얼마나 힘든 일을 하거나 다른 교사들이 기피하는 업무나 학년을 했는지에 따라 더 많은 내부 점수를 가져가게 되고 그 누적된 내부 점수에 의해 순서대로 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허나 일부 배째라족 - 내부 점수와 무관하게 저 죽어도 못하겠습니다. 저 이거 말고 다른 업무 혹은 학년 주세요 - 들로 인해 큰 혼란을 초래하는데 이때는 교감 혹은 교장이 말을 잘 듣는, 혹은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을 불러다 놓고 통사정을 하는 그림도 많이 볼 수 있다.


교무실에서 -


교감: 아 김선생 이번 한 번만 꼭 6학년 좀 가줘. 박선생 알잖아. 형편없는 거. 그 사람 거기 가면 사고나. 유능한 김선생이 대신 6학년 가주면 안될까?

김선생: 교감샘 작년에도 그러셨잖아요. 제가 학교 4년차인데 왜 이번에 처음 저희 학교 오신 분보다 후순위로 밀리는지 이해가 안가구요. 그럴거면 내부규정 뭐하러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못합니다.

교감: 김선생 그러면 대신에 다른 업무 빼줄게. 그냥 담임만 해주라.

김선생: 교감샘 원래 6학년은 업무 없잖아요. 저 업무까지 주시려고 하셨었어요? 진짜 너무하시네요. (울음)


교장실에서 -


교감: 교장샘 아무래도 김선생 6학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본인이 완강히 거부하는데다, 사실 내부규정이랑도 안맞구요

교장: 내부규정같은 소리하네. 어차피 최종 결정권자는 난데 무슨 소리인가? 지금 바로 김선생이랑 박선생 교장실 내려오라고 해봐

(5분후)

박선생, 김선생: 교장샘 부르셨어요?

교장: 박선생 자네 말이야. 학교 처음왔는데 그런식으로 배째라로 못하겠다고 하면 안돼. 학교에도 엄연히 규칙이라는게 있잖아.

박선생: (울면서 대화를 시작) 교장샘 너무하시네요 배째라라뇨. 그게 아니라 제가 나이도 많고 학생들도 잘 안따르구요. 고학년은 맡기가 좀 어려워요.

교장: 아니 그럼 교직은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김선생도 그러는거 아니야. 교감이나 교장이 그렇게까지 부탁을 하면 알겠다고 하고 들어야지. 박선생이 하기 싫어서 안하는게 아니라 나이도 많고 건강도 안좋아서 못한다는 걸 젊은 사람이 그렇게 매몰차게 이야기하면 쓰나?

교감: 저기 교장샘..

김선생: (답답해하며) 그냥 제가 6학년 가겠습니다. 대신에 제가 학년부장 할 수 있게 해주시구요. 동학년 교사들 구성 제가 할 수 있게 해주십쇼.

교감: 김선생 그래줄 수 있겠어? 고마워


라는 식의 그림은 모든 학교에서 비일비재하다.


문제의 원인은 쉽게 말해서,


1인분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부 교사들 혹은 배째라족 교사들 때문이 크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학년도 못가겠다. 업무도 못하겠다면, 이 교사들은 학교 입장에서 어떻게 대우하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또한 이 교사들 외에 평범한 선량한 다른 교사들이 받는 부담과 피해는 어떻게 보상해줘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이 학교에서 생길 때 가장 피해를 받는 것은 해당 교사 학급의 학생들일 수 있다. 업무에 치여 수업 준비는 뒷전이 되기 일쑤다. 옆반 모 교사는 배째라를 시전한 덕에 여유롭게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에게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여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그리고 개인적인 삶의 질도 높아 직업 만족도도 높다. 그에 반해 더 열심히 사는 김선생은  다른 일들로 인해 수업 준비나 학급 관리에도 비교적 시간을 덜 쓸 수 밖에 없어 항상 일에 치여 살며 삶의 질과 직업 만족도가 떨어진다.


"선생님 선생님은 왜 항상 바쁘세요. 우리랑 같이 시간도 못 보내시고요. 옆반 선생님은 일 없으신지 매일 같이 놀아주시던데ㅠㅠ"


이건 현재 대부분의 학교들이 업무 및 학년 분장과 관련해 안고 있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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