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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Dec 19. 2020

사람을 고쳐 쓰지 말라,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그러나 정말로 이렇게까지나 해야 할까?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동료 중 하나에게 화가 나서 고민 중이었거든요. 그간 야금야금 '상식'의 선을 밟아 오다가 최근 대차게 그 선을 넘는 일을 여러 차례 벌인 상황입니다. 이 사람을 따로 만나 이러이러한 규칙은 지켜 달라고 얘기를 해본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이제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줘야 하나, 상급자에게 이야기해서 권위로 제압해야 하나, 정면 돌파하겠다는 생각뿐이었지요. 그러다 리디셀렉트에서 문유석 작가가 쓴 아티클을 접했고, 오랜만에 서가 구석에 숨어 있던 <인간관계론>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물론 책 한 권 읽었다고 상황을 극적으로 바꿀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약간의 실마리를 얻었다고 할까요. 한편으로는 <인간관계론>을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불편한 감정의 원인이 뭔지 대략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관계론>의 원서 제목은 "친구를 사귀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법(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입니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새로운 사람과 호의적인 관계를 만들고 그 사람이 우리 뜻대로 행동하도록 설득하는 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책 내용을 아주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인간의 본성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인간은 절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인간은 인정 욕구에 불타는 존재다.


첫 번째 본성을 볼까요.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 합리화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유명한 마피아 보스 알 카포네마저도 자신이 지역사회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는데도 인정받지 못한 불운한 자선사업가라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이렇게까지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사람은 결국 자신이 악당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걸 인정시킬 방법도 없다는 게 카네기의 깨달음입니다. 논리 정연하게 남의 잘못을 지적해 봤자 그 사람은 자기 합리화에나 몰두할 뿐 그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먹지 않을 거고, 오히려 그 사람의 원한을 살 뿐이니 장기적으로 나에게도 손해라는 겁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해서는 절대 그 사람의 행동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없습니다. 카네기의 제언은 아주 간명합니다. "남을 비판하지 마라."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이제 두 번째 본성을 봅시다. 사람의 기본적 욕구 중에 가장 채워지기 어려운 것이 '중요한 사람이 된 기분'이라고 카네기는 말합니다. 그래서 인정 욕구를 채워주면 누구든 대단히 기뻐하고 감사한 마음을 품는다고 합니다. 카네기는 스스로 경험한 사례를 하나 드는데, 뚱하게 앉아있는 가게 점원에게 "머리숱이 참 풍성하시네요. 부러워요."라고 하니 그 점원이 놀라면서도 자부심 넘치게 "젊을 때만은 못해요"라고 뿌듯해했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마이너한 요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만 엄청나게 관심이 많고 남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여럿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도 자기 얼굴이 잘 나왔나만 확인하고, 대화할 때도 자기 이야기만 하려고 하지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잘 없지요. 그래서 남에게 관심사를 돌리고 그 사람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점을 찾아내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게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태생이 삐딱한 사람이라 여기에 반감이 듭니다. 저는 용납할 수 없는 어떤 선을 넘은 사람과는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카네기의 대인관계 기술은 거의 무아의 지경에서 상대방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고 아픈 곳은 교묘하게 피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기술입니다. 카네기는 이것이 아첨이 아니라 진심으로 타인의 장점을 발견하고 찬탄하는 삶의 태도라고 이야기합니다만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문유석 작가는 아티클 말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계발 강사로서 카네기의 청중은 영업직이나 서비스직처럼 타인과 잘 어울리는 것이 필수적인 사람들인데, 사람 만나는 것이 필수 업무역량이 아니고 인간관계에 소극적인 이들은 오히려 '안 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요. 문유석 작가는 판사로 생활하던 시절 업무 사정상 도저히 피해 갈 수 없는 동료를 다루기 위해 <인간관계론>의 트릭을 쓰긴 했지만, 카네기가 소개하는 우수 일화에서처럼 그 동료와 일생의 친구가 되지는 않았고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서 다시는 보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게 정답일지도 몰라요.


마지막으로, 카네기는 정말 악질적인 사람들을 만나도 굽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진상 고객을 만난 상담직원에게도 카네기는 '상대방을 비판하지 말고, 진상 고객의 인정 욕구를 채워줘서 일을 원만하게 해결하세요.'라고 권합니다. 실제로 <인간관계론>에서는 얼토당토않은 문제를 들고 오는 블랙컨슈머를 이런 식으로 어르고 달래 '윈윈'하는 일화가 여럿 소개됩니다. 그런데 2020년을 살고 있는 저는 이런 대응이 너무 끔찍하고 나쁘다고 생각해요. 도를 넘어선 진상은 직원이 임기응변과 인간관계 기술로 해결할 일이 아니고 회사 법무팀이 다룰 문제니까요. 다행히 우리 사회도 느리게나마 변하고 있어서 2년 전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고객응대 근로자 보호 조항이 추가되었지요.


어떻게 보면 자기계발서의 전형적인 한계점입니다. 세상살이에서 불합리한 점을 만났을 때 자기계발서는 스스로를 조절해서 그 상황을 넘고 개인적 성취를 얻고자 합니다. 좋은 자기계발서의 내용을 충실히 따라간다면 물론 좋은 성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회나 조직은 바뀌지 않습니다. 뒤따라 오는 사람도 같은 역경을 넘어야 하지요. 하지만 어떤 사람이 정면으로 불합리에 맞서 싸워 지난한 과정 끝에 그 관행을 고쳐내는 데 성공하면 그 혁명은 앞으로 살아갈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줍니다. 모든 사람이 <인간관계론>을 바이블 삼아 공부하면서 진상 고객을 하나하나 상대해 오고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면 산안법 개정도 없었을 겁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대개 자기계발이 혁명보다 편합니다. 저도 그래서 자기계발서를 제법 즐겨 읽고 제 삶에 적용해 보려고도 하니까요. 하지만 자기계발의 논리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 고통받는 이들을 보며 '현명하게 대처하면 될 텐데?'라고만 말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릅니다. 경계해야 할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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