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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Apr 06. 2021

문어도 꿈을 꾸고 잠꼬대를 할까


잠꼬대하는 강아지를 본 적 있으신가요? 강아지들은 자다 말고 뭔가 먹는 시늉을 하거나 달려가려는 것처럼 다리를 움찔거리는 식으로 잠꼬대를 하더라고요. 사람처럼 꿈을 꾸는 것 같기는 한데, 깨워서 물어볼 수도 없으니 정말로 꿈을 꿨는지, 무슨 내용의 꿈을 꿨는지 확인하기는 어렵지요.


사람은 잠을 자면서 REM 수면이라는 단계에서 꿈을 꿉니다. REM은 'rapid eye movement'의 약자인데요, REM 수면을 하는 동안 안구가 아주 빠르게 움직여서 이런 이름을 얻었습니다. 포유류와 조류는 모두 REM 수면과 유사한 수면 단계를 갖지만 대부분의 어류나 파충류, 양서류는 REM 수면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으니 꿈을 꾸는 동물은 꽤 드문 편이고, 전체 동물 중 비교적 인간과 가까운 일부 종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21년 3월 25일, 문어의 수면 사이클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REM 수면과 유사한 단계를 관찰해서 학술논문으로 보고했습니다. 간단한 소개 기사도 <Science>에 실렸고요. 문어는 진화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과는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데요, 포유류와 문어의 공통 조상을 찾으려면 무려 5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요. 문어보다 우리와 더 가까운 생물들도 REM 수면을 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대단히 의아한 일입니다. 우선 '꿈 꾸는' 문어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실까요?



갑자기 피부색이 휙휙 바뀌는 것이 보이시나요? 연구진은 수조에 든 문어가 잠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문어가 좋아하는 게가 움직이는 동영상을 보여주거나 수조를 고무 망치로 가볍게 두드려 보았다고 합니다. 문어가 잠든 것을 확인한 다음에 움직임을 분석해 보니 문어가 두 개의 수면 단계를 오간다는 것을 발견했는데요, 바로 '조용한 수면(quiet sleep)'과 '활발한 수면(active sleep)' 단계였습니다.


잠든 문어는 대부분의 시간을 '조용한 수면' 단계에서 보냅니다. 이 단계에서는 피부가 창백해지고 동공은 거의 닫혀 있습니다. 잘 움직이지는 않는데 가끔 다리가 천천히 꿈틀거리기도 한다네요. 그런데 '조용한 수면' 시간을 30~40분 정도 보내고 나면 40초 정도로 아주 짧은 '활발한 수면' 단계가 나타납니다. 이때 문어의 피부는 위의 동영상에서 보이는 것처럼 피부색이 검게 바뀌고, 팔다리가 격렬하게 꿈틀거립니다. 


'조용한 수면'과 '활발한 수면'을 오가는 2단계 수면 패턴은 포유류나 조류에서 관찰되는 REM수면/서파수면 패턴과 비슷해 보입니다. 물론 포유류와 두족류의 두뇌 구조가 워낙 다른지라 잠든 문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와 비슷할 거라고, 예를 들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지요. 애초에 문어를 깨워서 무슨 꿈을 꾸었냐고 물어볼 수도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피부색의 변화나 다리의 움직임을 보면, 문어가 활발한 수면 단계에서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다는 건 제법 분명해 보입니다.


살짝 논리를 비약해서 문어도 꿈을 꾼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건 진화론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운 상황인데요, 문어보다 인간과 더 가까운 대부분의 생물들은 꿈을 꾸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어와 인간처럼 진화적 계통이 관련되지 않은 생물들이 독자적으로 진화한 끝에 같은 기능을 갖게 되는 현상을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이라고 부르는데요, 조금 복잡한 개념이니 예시를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좌) 프테로닥틸루스, 박쥐, 새의 날개. (우) 다리와 날개의 수렴진화, Wikimedia Commons.


비둘기와 참새는 둘 다 조류이고, 그래서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했습니다. 비둘기와 참새의 공통 조상은 이미 날개를 갖고 날아다니던 생물이었으니 비둘기와 참새의 날개는 공통 조상에게 물려받은 날개가 각자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한 결과이지요. 그래서 이들의 날개는 해부학적으로 아주 비슷하게 생겼고 배아에서 발생하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반면 박쥐는 포유류입니다. 비록 박쥐와 비둘기의 날개가 둘 다 하늘을 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지만, 이 날개는 어떤 공통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유로, 독립적으로 진화시킨 기관이예요. 그래서 언뜻 보기에 박쥐와 비둘기의 날개는 비슷해 보이지만 위의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세부적인 구조가 아주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문어의 '2단계 수면을 하고 (아마도) 꿈을 꾼다'는 특징은 공통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수렴진화한 결과입니다. 글 서두에 언급했듯이 포유류와 두족류는 대략 5억 년 전에 갈라졌어요. 포유류와 조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생물은 2단계 수면 패턴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우리와 문어는 어떤 공통 조상에게서 수면 패턴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서로 다른 시기에 2단계 수면을 진화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2단계 수면과 꿈은 어떤 진화적인 이점이 있길래 문어와 인간이 돌고 돌아 여기서 만나게 된 걸까요?


일반적으로 포유류나 조류의 REM수면/서파수면 사이클은 장기 기억을 처리하거나 뇌에 쌓여 있는 독소를 처리하기 위함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포유류와 조류는 자연계에서 비교적 지능이 높은 생물에 속하는데요, 학습/기억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는 데 수면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마 2단계 수면 사이클은 두뇌 활동이 활발한 고등생물이 진화하는 데 필요한 기능인 것 같아요.


(좌) 문어는 조개 껍데기를 주워서 은신처로 쓰는 등 도구를 사용할 줄 압니다. (우) 주변 환경에 맞춰 몸 색을 바꾸는 갑오징어입니다. Wikimedia Commons.


문어를 포함한 두족류는, 수명이 짧은 무척추동물이란 걸 생각하면 놀라울 만큼 지능이 높습니다. 문어는 장기기억을 다루는 수직엽(vertical lobe)을 포함해서 여러 개의 엽(lobe)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두뇌 구조를 갖는데 몸무게를 생각하면 어지간한 척추동물보다 뇌가 큰 편이예요. 다른 개체와 의사소통을 하거나 도구를 사용하고 퍼즐을 푸는 등의 행동이 보고된 바 있는데요, 심지어 어항에 레고를 넣어줬더니 레고 블록을 쌓아서 은신처를 만드는 모습이 관찰된 적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조금 과감하게 추론해 보면 문어나 포유류처럼 고등한 지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2단계 수면 패턴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문어의 수면 사이클이 정말로 포유류의 수면과 같은 기능을 하는지는 아직도 연구를 많이 해 봐야 하는 주제예요. 제대로 확인해 보려면 문어 머리에 전극을 잔뜩 붙이고 뇌파를 측정해야 하는데 문어가 다리를 여덟 개나 달고서 그걸 보고만 있을 리가 없으니, 사실 연구하기 아주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지능은 어떻게 진화하는가?'라는 큰 주제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미지 출처:

(1) Wikimedia Commons, Analogous & Homologous Structures.svg, CC BY-SA 4.0.

(2) Wikimedia Commons, Camouflage cuttlefish 02.jpg, CC BY-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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