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가 재수학원에서 겪은 일

수험생 대상 심리상담가가 연재하고 싶은 글

by 이새벽

브런치스토리에 첫 발을 내딛게 된 4년차 상담가 이새벽입니다.

저는 현재 재수학원에 출강하며,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집 둘 째 아이가 고3인데요! 브런치스토리에 한 작가 분이 연재한 심리 상담에 관련된 글을 열심히 읽더라고요.


여기 수험생 불안, 심리와 관련되어 궁금한 학생분들이 있을까해서, 이렇게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을 시작하게 된 이유

심리상담을 전공한 저는 처음에는 일반적인 청소년 상담을 주로 진행했지만, 몇 해 전 우연히 재수종합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아예 이쪽으로 발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 기억이 잊히지가 않아요.

학생들 표정이 하나같이 너무너무 어두웠습니다. 분명 불이 다 켜져있는데, 꺼져 있나 의심이 들 정도로 어두웠어요.


첫 강의를 하고, 개인 상담을 신청한 아이들과 약 10여분의 개인상담을 진행했는데요.

그때 알게 된 것들이 있습니다.


그곳의 아이들은 단지 공부만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정말 끝장이다.”

“내가 떨어지면 우리 가족도 무너진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아이들 속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학습 스트레스를 넘어, ‘존재의 불안’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요.


그 뒤로 저는 수험생 심리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여러 학원과 협력해 전문적으로 상담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의대가 아니면 실패라고 믿는 아이에게

의대입시전문학원에서 겪은 일을 하나 풀어보려고 합니다.

가볍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저 이번에 또 떨어지면 그냥 끝이에요.”

상담실 문을 닫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 아이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고3을 지나 재수를 하고, 삼수를 지나, 지금은 네 번째 수험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말끝마다 묻어나는 단호함은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죠.


“왜 그렇게까지 생각해?” 하고 물으면,

“의대를 못 가면, 제가 살아온 이유가 없어져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아이의 ‘의대’는 단지 진로가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누가 만든 건지도 모르는 각인 같은 믿음.


처음엔 부모님이 권했다고 했습니다.

가정형편이 아주 넉넉한 건 아니었고, 오랫동안 희생하며 키워준 부모님에게 보답하는 길이 ‘의대’라고 믿었다고요. 주변에서도 “넌 머리 좋으니까 당연히 의대지”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그 말들이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의대를 못 가면 나는 실패한 인간이다”라는 생각까지 이어진 겁니다.

이런 마음의 구조는 상담을 하면 할수록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특히 수능을 두 번, 세 번 치른 학생들에게는 그 압박이 ‘의지’가 아니라 ‘강박’처럼 작용하기도 하죠.

그 아이는 이미 어느 대학에 가도 잘 살아낼 수 있는 아이였습니다.

차분하고 성실했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말할 줄 아는 아이였으니까요.


그런데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오직 하나, 의대라는 이름에만 고정되어 있었기에

그 외의 가능성은 애초에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만약에 의대가 안 되면?”


그 질문에 아이는 잠시 침묵하더니, 조용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런 질문은 하면 안 돼요. 이미 저는 너무 늦었어요.”


아이들의 고통은 때때로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기준에 갇힌 현재’에서 더 깊어집니다.

의대라는 목표는 누군가에겐 꿈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오랜 수험생활을 반복한 아이일수록, 목표 자체보다 ‘내가 지금까지 버틴 이 시간이 무의미해질까 봐’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두려움은 종종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더욱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말보다 조용하게 무너집니다.


“괜찮아요”라고 말해도, 눈동자는 매일 조금씩 힘을 잃고 있었으니까요.

그 아이는 지금도 공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아주 조금씩 자신을 다그치는 언어들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말들이 나오는 날이면, 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뻐합니다.

의대 진학 여부보다 훨씬 중요한 건,

이 아이가 자기 자신을 믿고 살아낼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종종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저도 저희 아이들에게 자주 물어봤던 것 같아요.ㅠ)


“넌 어디 대학 갈 거니?”


그보다는 이렇게 물어야 할지 모릅니다.


“넌, 너를 얼마나 믿고 있니?”


수험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목표도 아니고, 각오도 아닙니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허락, ‘넌 너 자체로 충분하다’는 인정, 그리고 무너지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주는 한 사람입니다.


상담실에서 저는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연재 목차 미리보기

모의고사 후 상담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불안이 공부를 망친다?

수험생이 매일 우는 이유

부모님이 던진 한 마디가 아이에게 남기는 흔적

공부는 ‘앉는 것’보다 ‘일어나는 마음’을 다루는 일

반복되는 실패 뒤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심리 기술

“나는 왜 매일 포기하고 싶을까?” – 자존감과 자기효능감

비교가 만드는 정서적 탈진

수험생의 공통된 불안 문장들

성적표가 아닌 감정표가 먼저 필요할 때


이 외에도 수험생 부모님들을 위한 심리 소통법, 시험 끝난 후 찾아오는 공허함에 대해서 다루어볼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며

수험생이라는 단어는, 단지 학생이라는 신분보다 훨씬 무거운 감정과 책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무게를 아이 혼자 짊어지지 않도록, 저는 곁에서 그 마음을 함께 들어주고 싶습니다.


제가 작성하는 글은 거창한 이론이나 조언은 아닙니다.


그냥 누군가에게 작은 쉼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상담가 이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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