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이번에도 망했어요.”
모의고사가 끝난 주에는 상담실의 공기가 조금 더 무겁습니다. 평소보다 말수가 줄고, 문을 열며 한숨부터 내쉬는 아이들이 늘어나죠. 한 달 가까이 쌓아온 기대가 ‘한 장의 성적표’로 돌아오는 순간, 그 속엔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조용히 앉아 눈을 돌립니다.
“솔직히 기대도 안 했어요.”
라고 말하지만, 그 말 끝에는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이 따라붙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괜히 짜증을 냅니다.
“아니, 왜 이렇게 킬러 문항만 어렵게 내는 거예요?”
“이게 실력이에요? 그냥 운이죠.”
화가 난 건 문제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실망 때문이란 걸 상담자는 압니다.
그리고 가장 자주 듣는 말.
“이렇게 해서 대학 갈 수 있을까요?”
그 말엔 묻혀 있는 두려움이 많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안 될 것 같다는 불안, 노력은 하고 있지만 제자리에 머무는 것 같은 답답함, 누군가보다 뒤처졌다는 막연한 열등감.
그럴 땐,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지금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처음엔 대답하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너무 박해서, 따뜻한 말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조심스레 내뱉는 말.
“괜찮아, 이번에 조금 흔들렸을 뿐이야.”
“이전보다 틀린 문제 개수가 줄었으니까, 나아지고 있는 거야.”
그제서야 상담실의 공기가 조금 풀어집니다.
점수가 아니라 마음을 들여다본 덕분이죠.
모의고사는 성적표 이전에 ‘마음의 성적’을 보여줍니다.
긴장, 불안, 자기불신, 비교, 회복력…
그 안에서 우리는 아이가 어디쯤 있는지를 봅니다.
다시 묻습니다.
“이번 모의고사를 지나오면서, 너 자신에게 어떤 응원을 해줄 수 있을까?”
상담실에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망했어요”가 아니라
“그래도 해볼게요”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아주 천천히, 아이들 마음에서 싹이 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