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학교 발표기회? 그 좋을 걸 왜 남 줘?

실수할 기회를 쟁취하라!

by 숨은괄호찾기

"자, 이번학기 발표 순서를 정해 봅시다."


교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학구파 A : '어느 챕터가 가장 도움 되는 챕터일까?'

자유로운 B : '최대한 앞 장으로 골라서 빨리 해치워 버리자!'

여유로운 C : '가능한 뒤쪽으로 골라서 나중에 해야지!'


그렇다면 내 마음의 소리는?


발표가 무서운 나 : '아.. 발표라니.. 정녕 피해 갈 수는 없는 것인가 ㅠㅠ'


학교를 다니며 매 학기 발표 기회가 있어왔다. 석사과정, 박사과정만 계산하더라도 한 학기에 최소 3과목X8학기라면 총 24번의 발표기회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발표'는 정말 피하고 싶은 단어였기에 팀플 과제일 경우 최대한 발표자가 되지 않기 위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자료준비 담당' 역할을 쟁취해 왔다. 팀플이 아닌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그대로 읽어도 되는 발표자료를 준비하고 읊조리듯 마치기 일쑤였다. 그렇게 24번의 기회 중 21번 정도의 기회를 흘려보내 버렸다.


학교에서의 발표기회는 '최고의 연습기회'!

실수하고, 실험하고, 경험하라!


그때는 몰랐다. 학교에서의 발표기회는 안전하게 다양한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최고의 연습기회라는 점을! 하지만, 발표를 잘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 뒤로는 생각이 바뀌었다. 전문강사도 아닌 이 시점에, 대체 학교가 아니라면 대체 어디 가서 사람들을 앞에서 발표를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볼 수 있단 말인가?!


돈을 받고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발표를 제대로 못한다거나 실수를 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상황도 아니다. 어쩌면 고액의 등록금 금중 일부는 안전하게 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부분에도 상당 부분 할애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오히려 학교에서 다양한 도전을 해보고, 시행착오와 실수를 경험하고, 다양한 실험들을 해 보아야 한다. 아뿔싸!! 그런데, 이 깨알 진리를 박사과정을 거의 마쳐가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개꿀 황금 기회'들을 놓쳐왔던 것일까? 어찌 됐건 이 놀라운 깨달음 이후에는 발표시간에 발생하는 실수들도 다른 의미로 와닿기 시작했다.


한 번은 이런 실수도 있었다. 발표를 위해 PPT를 열었는데 어디선가 내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아직 입도 떼지 않았다고!! 이 목소리는 대체 왜!! 어디서 나오는 것이란 말인가!!)


알고 보니 집에서 발표연습을 하다가 내용 구성이나 발음도 들어볼까 하고 파워포인트 녹음기능을 사용했었는데 덮어쓰기로 저장이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녹음내용이 발표자리에서 흘러나와 버렸다는 점이다. 그날따라 강의실 스피커 볼륨은 또 왜 이리 빵빵하게 높여져 있는 건지!


어찌어찌 상황을 수습하고 발표를 진행하기는 했지만 참으로 당황스러운 시추에이션이 아닐 수 없었다. 아... 그때의 수치심이란! (혹시라도 녹음하며 연습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발표용 원본파일을 확실하게 챙겨두시기를! )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의 실수에 관심이 없다!


생각해 보면 실수로 인한 수치심은 '찰나의 순간'이다. 강의실 스피커를 타고 내 목소리가 흘러나오던 3초가량의 당황스러움 + 후다닥 음성을 끄느라 우왕좌왕하던 4초 정도의 진땀 + 이후 정신줄 부여잡느라 애썼던 3초 정도의 에너지를 합치면 도합 10초가량이 될 뿐이다. 하지만, 단 10초여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사전에 실수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발표에 대한 작은 목표들이 없었다면 '영겁의 시간' 속에서 '10초의 수치심'을 무한 반복재생 했을지도 모른다. 예전의 나였다면 '사람들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겠지?' 하며 떠오르는 무수한 생각들로 괴로웠을 테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생각들은 내가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타인에게 투사하며 나 자신을 비난하는 말이다. 물론, 실제로 사람들이 잠시 그 상황에 속으로라도 웃었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오래 에너지를 들이며 품고 있을 만한 대단한 에피소드는 아니었을 것이다. 웃프게도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지나 보니 별일 아니었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렇게 글감으로 쓸 수 있는 소재까지 생겼으며, 사람들을 만났을 때 당시의 쪽팔림을 간식 삼아 같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정도 실수는 스스로 용인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 점이 기쁘다! 이번 실수는 성장의 정도를 체감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실수를 통해 한 수 배웠다. 물론 더 큰 실수였다면 얘기가 달랐을 수 있지만, 하루 이틀 정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반추사고 이외에는 나름대로 로잘 극복한 나를 바라보며 '많이 성장했군!'하고 변화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도 실수는 피해가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실수도 영양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훈련하며 실수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을 늘려가 보고자 한다. 그러니, 부디 나 자신이여! 앞으로도 '피하고 싶은 발표과제'가 아닌 '안전하게 실수도 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발표자 역할을 쟁취해 보자! 피하지 말고 쭉쭉 도전해 보자! 파이팅!

keyword
작가의 이전글"떨면서도 잘하시는 거 보고 위로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