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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면서도 잘하시는 거 보고
위로됐어요."

'후달달' 염소소리로 발표하면서도 칭찬폭탄 받을 수 있었던 비법은?

by 숨은괄호찾기

뛰지 않고 있는데도 100m 달리기를 하는 마냥 심장이 '쿵쾅쿵쾅', 거칠게 숨이 몰아친다. 염소 목소리를 들킬까 싶어 더 빨리 끝내려다 보니 어설픈 래퍼마냥 말이 빨라진다.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가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이대로 한 마디만 더 했다가는 진짜 추한 꼴 보이겠다 싶어 발표자료가 몇 페이지나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마치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다음 멘트를 내뱉고야 말았다.


"(침이 꼴깍, 달달달달...) 뒷 내용은 거의 아실 것 같아서 여기서 그만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멘 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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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발표시간도 아닌 스터디 모임 발표 중에 일어났던 일이다.

'엥? 갑자기?'라는 리더 선생님과 조원들의 눈빛과 그때의 당혹감이란..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이다. 하지만, 이 글은 '완벽한 발표자가 되었으니 그 노하우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가 아니다. 여전히 가끔은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하고, 스크린에 떠다니는 나의 레이저포인터가 지진 난 듯 난리부르스를 치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아직 부족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과정이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나름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할 뿐이다. 그저, 발표 왕초보에서 덜 초보가 되어가는 과정을 나누는 정도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


대체 발표할 때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 '왜 이렇게 숨이 차는 걸까?'


★ 발표준비가 미흡해서일까?

준비가 미흡하면 미흡해서 떨리고, 열심히 준비하면 잘 해내고 싶어서 떨리는데 대체 어쩌라는 건지. 잘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없어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잘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떨지 않고 싶단 말이다!


★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일까?

의식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의식하지 않으려 애를 써도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의식을 안 할 수 있다는 것인가!


★ 연습 부족 때문일까?

나름 성실의 아이콘이라 혼자 중얼중얼 연습도 해보고, 녹음도 해보고, 녹화도 해보고, 심지어 가족들 앞에서도 연습해 보았는데 그래도 떨리는 건? 발표 전 이미지 트레이닝, 심호흡 다 했는데도 왜 떨리는지 정녕 알고 싶다!!


★ 실전경험이 부족해서일까?

이건 절반은 맞는 것 같다. 그나마 희망을 걸어 볼 수 있는 요인이 이 부분이었다.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떨려서 경험을 해보는 자체가 두렵다는 것이다.


기적과 같은 대역전 한 방은 없다!

'작은 변화'의 연속만 있을 뿐!


지금까지의 경험상 단지 '그냥 경험'을 많이 하는 것과, 나름의 작은 목표들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다가가는 경험'은 성장의 질적인 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부터 그간 적용해 보았던 '의식적인 작은 목표들'에 대해 나눠보고자 한다.


1. 영혼을 가득 담은 발제자료!


<발제자료 충실하게 준비하기 + 발표 내용 숙지하기 + 발표 멘트 개요 잡아 놓기>

발표시간에 전달해야 할 핵심은 '발제자료'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적어도 이 부분은 사전에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자!


2. 차라리 그냥 염소소리를 내자! 그리고, 준비한 내용은 끝까지 말하자!!


인정할 건 인정하자. 당장 아나운서가 될 수는 없다. 초보 발표자로서 발표를 앞두고 떨리는 건 본능적이고도 신경생리학적 반응이다. 다만 그 떨림이 청중에게 티가 나느냐 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 사실 그간의 발표 목표는 '떨려도 좋으니 제발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티만 안 나면 좋겠다.'였지만, 알고 보니 염소 목소리를 바로 없앤다는 건 환상에 불과한 엄청나게 큰 욕심이었다.


염소소리를 당장 없앨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버려라! 당분간 끌어안고 가자!


차라리 떨리는 소리를 들켜버리자는 마음으로 발표하자. 가끔은 떨리면 떨린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솔직하고 보기 좋다. 프로라면 '떨린다는 말'이 아마추어 같은 발언이겠지만, 어차피 지금 단계는 프로가 목표가 아니다. 대신 말하고자 했던 내용은 떨면서라도 다 말해 보는 용기를 내 보자. 그리고, 지금 이 과정은 평생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더 나아지기 위한 과정의 일부일 뿐이며 언젠가는 목소리가 괜찮아지는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자! 나도 그러했다!


3. 발표자료에 '숨 쉴 틈'을 끼워 넣자!


염소소리가 나는 것은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쉽게 말하자면 위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신체가 바짝 긴장되어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때 주로 추천하는 방법 중 '심호흡'이 있는데, 우선은 발표 전에 최대한 심호흡을 해보자. 하지만, 아쉽게도 그 심호흡만으로는 발표 전체를 끌고 가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의도적으로 발표 중간에 숨 쉴 수 있는 틈을 끼워 넣는 것이다.


■ 숨 쉴 시간 벌기 Tip ■


1) 말을 천천히 하기

듣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느린 속도를 답답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하며 들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2) PPT에 동영상 자료 넣기

중간에 주제와 맞는 영상자료를 넣은 뒤 재생하는 동안 잠시라도 숨을 고르자. 개인적으로 이 방법이 아주 잘 통했다.

3) PPT에 애니메이션 효과 넣기

제목이나 주요 내용들에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어보자. 효과가 재생되는 동안 1초라도 숨을 '후~' 하고 내쉬면 한결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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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시간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으니 활용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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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질문형식의 멘트 던지기

이 멘트의 목적은 절대 답변을 듣는 것에 있지 않다. 그럴 여유로운 짬밥이 있었다면 애초에 떨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숨쉬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장치정도로 생각하자. "그럼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땠을까요?" 등의 작은 질문을 잠시 청중에게 넘기고 1-2초라도 숨을 쉬어보자.


그렇게 두둥!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다음 수업의 발표 시간이 다가왔다. 심지어 이번에는 칼 같은 피드백을 거침없이 던져 주시는 호랑이 교수님도 계시는 진정한 교감신경 뿜뿜 솟는 위급상황이었다! 발표 전 최대한 '성실한 자료준비', '이미지트레이닝', '연습', '심호흡', '괜찮아 잘할 수 있어' 기타 등등 수많은 마인드컨트롤과 안정화기법 등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결과는?? 적어도 나에겐 드라마틱!


하루아침에 일타강사로 변신하는 드라마틱한 대반전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여전히 심장은 쿵쾅쿵쾅.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떨리는 목소리였다! 실망했는가? 그래도 한 가지 바뀐 건! 사전에 명확하게 설정했던 목표. '떨려도 내 할 말이라도 끝까지 하자!'라는 목표를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적어도 하려고 했던 말은 다 했고, 발표를 끊지 않고 끝까지 마쳤다. 나에겐 바로 그것이 바로 드라마틱이다!!!


이날 배운 교훈은 긴장감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지만, 목표와 의지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발표를 들었던 분들이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보내주셨다.

"PPT가 시각적으로 이해되게 너무 잘 만드셨네요.
읽으면서 책 내용이 쫘악 그려지더라고요. 감사해요."

"저도 책 한번 읽고 왔는데 설명 넘 잘해주셔서 도움 됐어요."


☞ 생각보다 자신의 발제순서가 아니면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지 못한 상태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료를 쉽게 정리해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용의 옥석을 가릴 줄 아는 수준 있는 청중들이다.


"조금의 긴장감이 신선해 보였어요."


"떨면서 하시는 게 더 은혜로웠어요."


☞ 떨면서도 할 말 끝까지 다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청중들은 생각보다 발표자의 노력과 애쓰는 모습을 발견해 낼 수 있는 아름다운 눈을 가진 사람들이다.


"저도 늘 많이 떨려요. 떨면서도 잘하시는 거 보고 위로됐어요."


☞ 열심히 준비한 발표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 떨리는 나의 목소리조차 누군가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심지어 실수는 청중에게 큰 웃음과 여유까지 안겨준다.


마지막으로 매시간 발표 관련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던 교수님께서도 감동의 피날레를 장식해 주셨다.


"저도 평소에 학생들 위한 수업자료를 이런 식으로 준비해요!
다른 분들도 이 PPT 참고하시면 좋겠어요.
수고 많았어요. 앞으로 발표에 도움 되는 경험이 되었길요.
마지막 시간을 잘 마무리해 주어 고맙고요."


이 일을 통해 '다른 분들도 사실 많이 떨리는구나'. '비록 떨어도 열심히 발표자료를 준비한 노력까지 헛되지는 않는구나.' '나의 부족한 모습이 오히려 위안이 될 수 있구나~' 하며 여러 의미를 부여해 보았다.


물론 아직 100% 만족은 아니다. I'm still hungry!

그래도 이 발표를 통해 징검다리 하나를 건넜다.

다음은 어떤 징검다리가 기다리고 있을까?


발표로 고민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자신만의 첫 징검다리를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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