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니 3

by stdmtm

생의 시작에는 원래 선택권이 없다. 비극은 마지막 순간에도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잘 모르겠다. 답을 찾는 건 좋아하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게다가 어차피 이곳의 죽음은 하나다. 일말의 예의로 마지막은 고통 없이 보내준다고 하나 뜬 구름 같은 소문만 무성했다. 뭐가 되었든 선택지가 없다는 전제가 그대로이니 체념할 뿐이지 한 종의 종말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대상이었다. 죽음은 원래 예고 없이 다가온 다지만 불안에 떨며 시작하는 매일은 언제쯤 익숙해질까.


높은 천장이 무너질 듯 울리면 경비는 더 삼엄해진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건물이 진동하는 날에는 그나마 자유롭던 지상 구역마저 폐쇄되어 빛 하나 들지 않는 지하의 개별 케이지에 제 발로 들어가야 했다. 심해어나 해파리, 바다 생물의 발광 유전자 발현종들이 주변을 미세하게 밝혀 보지만 역시 천장이 높고 텅 빈 거대한 지하 공간의 어둠을 몰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외부의 공격이 우리를 제거하기 위해서인지 혹은 구원하기 위해서인지 알 길은 없다. 몇 차례 총성과 경고음이 오가면 한 동안은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다. 기관은 다시 한번,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우리를 꼭꼭 숨기는 것에 성공했다.


갈수록 빈자리가 늘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출고된 애들이 안 보이는 걸로 봐서는 대조군 교체 시기가 당겨진 게 아닐지 추측만이 난무했다. 텅 빈 파충류 접합체들의 난 자리에도 누구 하나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유난히 고요한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곧 개체 유지의 비효율성을 따져 가장 짧은 [1]더블링을 거친 개체를 제외 한 모든 샘플은 해체되어 장기 보존 캡슐로 얼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검진복만큼 새하얗게 질린 채 돌아온 마지막 아이를 보고 눈이 떠오른 건 어째서일까.


사막 한가운데에서 눈을 볼 수 있을 리 만무했지만 언젠가 딱 한 번 눈을 본 적이 있었다. 소우 박사마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내려앉은 모래 그림자라고 했지만 나는 믿고 싶었다. 희고 차가운 계절의 산물과 직접 조우한 적이 있음을, 그리하여 내 삶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배워보고 싶었다.


결국 그 어린 개체마저 얼려지고 말았다. 홀로 남겨진 마지막 종은 밤새 벽에 머리를 찍었고, 출현 과다로 실려간 후 장기와 신체가 정확히 분류되어 얼려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소리가 새어 나갈까 침구를 둘둘 말고 두개골이 으깨질 때까지 수없이 찍어댄 선혈이 낭자했다. 아이가 떠난 침상에는 가장 좋아하던 포도당 컨테이너가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부재를 숨기기 위해, 자신의 무게만큼 몰래 모았을 작은 병. 유일하게 단 맛이 가미되어 아이가 좋아했던 유리병들은 여전히 알록달록한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큰 비참함은 동요하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개중 몇몇은 자신과 유사한 실험체 수를 가늠하며 혹여나 자신의 차례가 올까 불안한 눈빛으로 배회했을 뿐 큰 파장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체념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스스로도 존중하지 않는 자신의 목숨은 거추장스러운 제약이 되기 십상이었다.


제약이 없는 인간처럼 날뛰던 오우라에게도 계획에 없던 샘플의 소실은 타격이었는지 모든 모기니들을 모아 놓고 으름장을 놓았다.


“너희가 고작 죽음이 안식이라고 믿을 만큼 멍청한 건 놀랍지도 않지만 명심해라. 모기니는 기관의 자산이다. 오늘부터 인도적 폐기처리는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은 없다는 단호한 악의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내 고기 덩어리로라도 매달아 두겠다는 의지는 높은 천장을 울리며 멀리까지 전해졌다. 그의 표정과 언어가 어찌나 살벌했는지 평소 동요하지 않던 연구원 몇몇마저 걱정하지 말라며 몇 마디를 더 건네고 사라졌다. 나는 오우라가 들어간 문을 계속해서 노려봤다. 모든 모기니들이 떠나고 나 혼자 남아 불이 꺼질 때까지, 그가 남기고 간 절망이라는 벌레가 떼를 지어 성을 쌓고 무너지기를 반복하다 결국 모든 이를 삼켜버리는 것이 두 눈에 담겨 오랫동안 맴돌았다.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었다. 개화를 빌미로 과량 투하 된 수액으로 물러진 근육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상관없었다. 하물며 떨어지는 눈송이도 각자의 무게가 있는데, 의도적으로 다양한 변이를 만들어 낸 주제에 하나의 실험체로만 정의되기를 종용하는 그들의 아집을 부러뜨리겠다. 서서히 얼리고 균열을 만들어 언젠가는 무너뜨릴 작정이었다. 나는 약자가 마음속으로만 되새기는 다짐이 얼마나 하찮고 보잘것없는지 나를 통해 오랫동안 배워왔다. 하지만 세상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하찮은 것들의 증명 또한 나였다.


며칠 째 상자를 노려보기만 하는 내가 답답했는지 홀슈터는 식사 때마다 나를 들들 볶기 시작했다.


“왜 연구원들이 우리에게 감정적으로 접근하는지 알아?”

“글쎄. 좋은 사람도 있으니까?”

“천만에. 감정 실험을 할 조건을 만드는 거야. 너는 참 특별해, 네가 인간이라도 아름다웠을 거야. 말 따위를 하다가 근데 너는 가축의 발을 달고 있구나. 괴물이라고 되새겨 주는 거지.”


홀슈터는 소우 박사와 가까운 나를 예전부터 경멸했다. 정확히 말하면 소우 박사와 가까울 때의 나를 경멸했지 홀슈터는 나를 사랑했다. 우리는 서로를 아꼈다. 그녀는 내가 성체가 된 시기에 자가 호흡실에서 나와 가까워진 또래였다. 검사체를 보러 온 연구원들은 그녀의 외모에 놀라고 곧장 팔꿈치에 달린 발굽으로 시선을 옮겨 역겹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약자의 입장에서 아름다움은 끔찍한 약점일 뿐이었기에 홀슈터의 얼굴에는 스스로 낸 상처가 무수했고 언제부턴가 머리는 짧고 삐죽이 잘려있었다.


“그 여자가 너한테 대단한 걸 남겼을 리가 없어.”

“확인해 보지 않았잖아.”

“인간이 우리에게 좋은 걸 준다고? 얼른 깨부수고 정신 차려. 꿈을 오래 꾸면 비참한 건 너일 뿐이야.”


군더더기 없이 단호한 말투와 확신에 괜히 심통이 난다. 스스로에게도 예외 없이 엄격한 홀슈터의 냉정함에는 익숙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문제였다. 곧 죽을 박사를 욕하는 것도, 내 희망이 밟히는 꼴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평소에는 듣고 넘기던 그녀의 냉소가 떠난 자리가 얼어붙는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나를 밀어버린 홀슈터가 발굽으로 상자를 짓이긴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잔인하고 불쌍한 홀슈터는 내가 발목을 물어뜯자 짐승처럼 울부짖을 뿐 작은 상자를 온몸으로 감싸는 나를 공격하지는 못했다.



홀에서의 소동은 동시에 입을 다문 우리 둘 때문에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한동안 개별 케이지에서 식사를 해야 했지만 혹시나 상자의 존재가 알려져 뺏길까 걱정한 내게 그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모서리에 작은 틈이 벌어졌지만 견고한 사각형의 덩어리는 여전히 반짝거렸다. 손끝으로 금이 간 부분을 톡톡 건드려 본다.


결코 충분하지 않은 열람 자료 대신 박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들을 보여주곤 했다. 어떤 날은 떠오른 주제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기도 내가 질문을 하게 하기도 했다. 명확한 답은 없었지만 향하고 있는 곳은 분명한 확신에 찬 물음이었다. 아마 박사는 내가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길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볼 거야.”

“어려워요.”

“사라진다는 말을 알지?”

“세 번째 투약과 함께 질병인자가 사라지다!”

“물리적으로 볼 수 없지만 분명한 존재가 없어지는 표현이기도 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사라져요?”

“음……빛이 사라지는 거야. 당장 눈앞에 없다고 해도 빛나는 것들은 있어.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는 것이 있듯이.”

“그건 저희들인가요?”


아니야, 따지자면 오히려 여기 인간들이지. 혼자서 중얼거리던 박사는 곤란한 듯 웃기도 했다.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모습이었다.


“나를 세 가지로 설명해 볼래?”

“소우 박사. 연구원. 고통을 주기도 치료해 주기도 하는 사람.”


박사의 표정을 떠올릴 때마다 고마운 사람, 이 답이었을지 모른다는 후회를 반복한다.


“그럼 저는요? 모기니? 실험체?”

“모기니, 실험체… ….”


그리고 미안해. 잘 모르겠다. 모르겠다며 말을 삼킨 소우 박사, 사과의 이유를 몰랐던 나. 모른다는 말이 가지는 용기를 알려준 사람. 지금까지는 소중한 사람이 준 상자를 부술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두려움에 균열을 낼 차례다. 금이 간 상자를 입에 넣고 꾸욱 씹자 모양이 어긋난다. 으스러진 파편 사이에서 부피가 느껴졌다. 뱉어 낸 검정 알맹이는 반짝거렸지만 모든 빛을 잡아먹은 어둠이었다. 내 손바닥 위에서 천천히 투명하게 변한 작은 돌멩이를 꿀꺽 삼킨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이물감이 뻑뻑했지만 온몸의 구멍으로 쑤셔 넣어지는 라인에 비하면 이쯤은 견딜 수 있다. 매끄러운 작은 입자는 목 언저리의 좁은 틈을 지나 식도를 따라 느리게 움직여 마침내 배 속에 자리 잡고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묵직하게 중심을 잡고 내게 흡수되거나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홀 출입이 허용된 처음 며칠은 내심 들떠 돌아다니며 실없이 말을 걸었다. 무시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대부분 내 인사에 답해주는 친절까지 아끼지는 않았다. 밤이 되면 어딘가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살랑살랑 따듯한 기대에 나는 들떴지만 가시들은 내 마음처럼 춤추지 않고 뻣뻣하고 조금 더 단단해진 모양새였다.


그다음 며칠은 굳건하고 경건한 신념과 믿음을 가졌다. 처음 기관 밖의 세상을 확신했던 날처럼 참을 수 없이 벅찬 마음으로 주변을 더 들쑤시고 다녔다. 사물과 모기니들은 알록달록하게 한데 얽혀 다채로운 풍경과 높은 벽으로 무너지고 쌓이길 반복하며 주변을 물들였다. 내게 투여되는 액체는 점점 더 많아졌다. 처치실을 나올 때에는 알 수 없는 역겨움과 현기증에 아무것도 없는 속을 몇 번이고 게워내야 했지만 혹 삼켜버린 소중한 돌멩이가 튀어나올까 걱정이었지 그쯤은 참을 수 있을 만큼 들뜨고 반짝이는 기다림이었다. 눈을 가늘게 치켜뜬 오우라들이 나를 주시했지만 그들에게 마저 무릎을 굽히고 우스꽝스러운 광대놀음을 하는 나는 은연중에 알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이 견고한 믿음이 무너져 내 세상이 사라 질 날이 다가오고 있으니,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지금은 미쳐 있어야 한다고. 결국 잔뜩 물러 터진 다리 근육은 온 힘을 다해 날뛰는 나를 버티지 못하고 꺾이고 말았다.



[1] 더블링: 성장을 배속시키기 위해 임의로 외부 요인을 바꾸는 실험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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