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도 진화도 자연 선택도 없다. 완벽한 우리는 통제 아래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눈이 먼 채 한 방향으로만 기어갈 뿐이다.
모기니에게 허락된 교육은 없었다.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없으니 배울 자격조차 없다는 식이었다. 거대한 연구 기관, 관리자의 편의에 맞게 유지될 정도로, 본능을 제어할 일정 수준의 도덕관념은 교육이라기보다는 일방적 주입, 세뇌나 마찬가지였다.
소우 박사와 뜻을 함께한 몇몇의 연구원들은 모기니의 사회화 연구를 빌미로 지식 습득의 기회를 꾸준히 주장해 왔다. 그 끈질긴 요청에 기관은 선심 쓰듯 검증된 사실, 20년 전의 지식 내에서의 교육을 허락했다. 대단한 자비를 베푸는 것 마냥, 실상은 반세기도 훌쩍 넘은 고리짝 시대의 자료를 던져주고는 그마저도 과분하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박사는 그 부당한 기회마저 이름을 짓고, 그 시간을 소중하게 가꾸었다.
“날레디 프로젝트야.”
“그것은 날레디?”
“오래된 사람이야. 의미 없을 만큼 오래전 사람인데 아주 큰 의미가 있게 되었거든.”
박사는 나와 이야기할 때 내게 맞는 단어와 설명을 고르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좀 더 많은 말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을까. 그녀는 이미 충분하다며 내 이마를 살짝 쓰다듬었고 손끝이 닿자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따끈한 온기는 억지로 내 혈관을 비집는 약물의 온도와 달랐고 천천히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건 무슨 감각이었을까.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가 조금 더 박사의 세상을 따라갈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궁금해졌다.
엉망이던 나의 말도 이때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즐거웠다. 알아간다는 일은 부끄러움과 뿌듯함을 다 가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누워있으면서도 나를 둘러싼 이들의 대화를 들으려 애썼다. 처음 들어보는 어려운 단어와 모호한 표현을 당연하다는 듯 이해하며 떠드는 게 부러웠다. 모든 배움은 달고 기꺼워 고요하기만 한 격리실의 한낮을, 차가운 실험대를 들뜨게 했다. 짧은 음절로 칭해지는 세상 속에서는 우리도 ‘것’이었고, 아름다운 무언가도 ‘것’이었다. 마치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아주 하찮은 순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무언의 확신에 매료되었을 때, 내 몸으로 주입되는 투명한 액체를 통과한 수술대의 불빛이 작은 선인장에게 내려앉아 빛무리가 되었다.
기본적인 욕구와 본능을 표현하기에만 급급하던 나는 다양한 표현 방식도 박사에게서 배웠다. 꼭 집어서 알려 준 적은 없었지만 어렴풋이 인간들이 살아가는 법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부유하던 내가 그녀의 손을 잡은 순간, 막연한 동경을 넘어 가느다란 연결고리라도 움켜쥐겠다는 모험은 시작되었다. 날레디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 대단한 자비에 동참하는 모기니는 여전히 나 하나였다. 문을 열고 이곳에 도착해 마주하는 박사의 실망 어린 표정도, 홀로 돌아가면 같은 괴상한 것에게서 받는 괴물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도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박사와 그녀의 동료들의 오랜 노력을 지켜봐 온 나로서는 그 시간을 무시하기 힘들었다. 기관의 빈정거림처럼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 노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질문을 하는 법을 배울 거야.”
늘 새로운 걸 알려주고 싶어 하는 박사를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질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그녀를 놀라게 해 줄 수 있다는 흥분과 기쁨이 나를 들뜨게 하자 선인장의 가시 끝에서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박사도 상처가 있나요?”
“겉에서 흐르는 피와 몸속에서 쏟아지는 피의 온도는 달라요. 왜 그럴까요?”
“상처가 아무는 시간과 영양 상태의 그래프는 부드러운 곡선인데 왜 상처는 부드럽지 않을까요?
그동안 생각만 하던 질문들이 터져 나왔다. 입을 다물어야 하는데 제어할 수 없는 말들이 쏟아져 나와 넘쳐흐른다. 흉한 것의 향연들이 나를 부끄럽게 했지만 동시에 희열에 가득 차게도 했다. 내 입에서 멈출 수 없는 말들이 쏟아져 나올수록 박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제 박사마저 나를 밀어낼지 모른다. 불쌍한 모기니, 허락된 것 없는 실험체, 멍청한 접합 종자. 나는 왜 태어났는지, 내게도 기원이 있는지. 이 짓에도 끝이 있을지, 있다면 내가 열심히 기어서라도 그 끝에 다다른다면 그다음은 무엇인지. 박사는 때로는 문장도 되지 못할 말들을 정신없이 뱉어 내는 동안에도 가만히 나를 지켜봐 주었다. 사람의 감정이 죽어가는 순간을 처음 보았다. 눈빛은 여전히 따스했지만 애정보다 더 깊이 차오르는 슬픔을 숨기려 박사가 동요한다. 자신의 얼굴을 감추던 그녀의 손이, 바닥으로만 향하는 그녀의 고개가 떨렸다.
⭓
애초에 설립 목적이 군사 기지라는 소문이 돌만큼 기관의 내부는 방대하고 벽은 견고했다. 우리에게 허가된 장소는 한정적이었고 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지만 배식장에 있을 때에는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다른 형 접합 모기니들 사이에 슬쩍 앉을 수도 있고, 소소하지만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 종에 따라 섭취해야 할 영양소가 까다로운 데다 취식 방식 또한 다양해 동료들의 식사를 지켜보고 있으면 존중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유일하게 바깥을 보여 꿈을 꿀 수 있는 곳. 유리 천장으로 통하는 하늘은 언제나 변화무쌍했다.
“앞으로 취침 외의 모든 활동 반경은 중앙 홀로 제한한다.”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의 오우라는 소우 박사가 있을 때에도 우리에게 적대적이었다. 조금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그의 뒤로 따르는 이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한정된 수의 인간,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급이 존재한다. 소우 박사처럼 이곳에서 태어나 기관 안의 세상만 아는 토박이들과 오우라처럼 바깥에서의 삶을 살다 온 경우는 달랐다. 같은 인간이 서로를 구분하고 그 차이가 적대감으로, 배척으로 표출될 때면 다양하다는 것이 그리 좋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들 사이의 차별과 무시는 상호적이었기에 나름 공평한 일이기도 했다. 그 사이의 적당한 균형을 지켜주는 무게 추는 우리들이었다. 절대적으로 불행한 존재, 어떤 상황에서도 깔아뭉갤 수 있는 실험체들은 분노의 명확한 목적지였고, 덕분에 그들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울 필요조차 없었다.
우리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처지를 모르지는 않았다. 물론 개중에는 본 적 없는 기관 밖이나 사막을 벗어난 세상이 몽상가가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고 삶이 겨우 이 연구 시설이 다라고 믿는 나약한 신봉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허황된 믿음을 지켜 줄 만큼 이곳은 따듯하지 않았다. 손에 쥐어질 리 없는 미지는 미화되고 포장되어 누군가의 절망으로 탈바꿈되었다. 우리가 속할 자리는 어디에도 없으며 존재조차 불분명한 유령을 환영할 리 없다며 체념만을 유일한 선택지로 강조하는 연구원들 또한 때로는 겁에 질려 보였다. 그들의 태도는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다. 사시사철 무지개와 별빛이 반짝이며 공기 중에 애정이 떠다닌다는 아름다운 바깥세상은 어느새 절망으로 탈바꿈해 차갑게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연약한 삶의 균형은 늘 쉬이 깨졌다. 살아 나가는 행위 자체가 지옥이다. 소우 박사의 책장 속 오래된 문장에서 발견한 날, 나를 지옥에 있게 하는 이곳에서 수동적으로 살바에는 차라리 투쟁하여 자유를 찾고 싶다고 말했고 그 후 한동안 박사는 내 정기 검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부터 병세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다른 연구원들과 모기니들이 수군거림처럼 소우 박사가 내게 각별했을지도 모른다.
나와 소우 박사의 유별난 유대감은 단순히 박사가 내 담당으로 보낸 시간 때문만은 아니었다. 탱크에서 평균 성체까지 성장한 뒤 자가 호흡 훈련을 거치는 개체들과 달리 나는 어린 시절이 있고, 이곳에서 자랐다. 내 몸에 뿌리내린 식물과 숙주인 내 성장의 연관 관계가 연구대상이었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사실 누구도 내게 확인시켜 준 적은 없기에 내 배아 세포의 융합 시기가 접합 개체 실험의 초창기가 아니었을까 또 상상해 본다. 그러니까 일종의 영광의 상징으로 길러졌고 박사가 지켜본 성장 시기가 조금 특별한 애정의 시작이지 않을까. 정작 어린 시절이라고 해도 특별할 것은 없다. 판에 박혀 반복되는 수많은 하루일 뿐. 모르는 것이 많던 내게, 네 몸에 무엇이 기생되어 있는지 정도만 분명히 인지하면 그만이라는 태도에 둘러 쌓여 있던 기억이 전부다. 나는 늘 궁금해했지만 그 누구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사소한 질문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돌아올까 두려워하는 듯, 내가 작은 식물의 흙과 땅으로, 비료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만 집착했다. 그들은 무지를 인지하고 나아가는 순간 시작되는 엄청난 변화에 데어 본 적 있는 인간 같았다. 그리고 나는 기생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도 자신의 귀가 튀어나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관자놀이 근처에 기생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으니 말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생 기관일 뿐인 내 친구는 섬세하고 본능적이다. 너른 홀에서 포자 마냥 떠다니는 살의를 알아차리기도 하고 출입이 통제된 지하 깊은 층의 진동에 몸을 떨기도 하며 무지하기 짝이 없어 위험에 뛰어드는 나를 여러 번 살려 준 작은 선인장이었다. 정기 검진을 위해 불려 간 채집실에서 그들을 맞닥뜨린 날이었다. 늘 제일 앞에서 나를 맞이하던 소우 박사는 찾을 수 없었고 평소 오우라들과 가까운 연구원들만 줄지어 서있었다. 실험대 옆으로 즐비한 반짝이는 도구들은 그날따라 더 날카로웠고, 공기는 공포로 따끔거렸으며 한기에 가시와 피부는 곤두섰다. 완만한 곡선의 부드러운 그래프를, 그 별 것 없는 그림 하나를 여럿이서 골똘하게 바라보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서로 속삭였다.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었고 액체 질소의 서늘한 반향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꽃… 꽃을 피울 거예요!”
내 외침에 수많은 시선들이 묻고 있었다.
네가?
무슨 수로?
어떻게?
의혹만이 존재하는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외쳤다.
“제가 피울게요! 그것, 피울 수 있어요”
지척에 있지만 너무도 먼 그들에게 닿기 위해 소리치며 그제야 깨달았다. 소우 박사에게는 내 말을 전달하기 위해 필사적일 필요가 없었다. 박사는 언제나 내 눈을 맞추고 내가 모르는 나도 알아내겠다는 끈질긴 눈빛으로 경청했다. 나조차도 몰랐지만 우리의 잔잔하고 따듯한 시간은 나를 다른 모기니로부터 떨어뜨려 놓았다. 애정을 받아 본 경험은 나를 살아가게 했지만 은연중에 조금 다른 존재로 느끼게 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이 밑바닥 인생에서 스스로 조금 나은 것 취급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끄럽고, 부끄러웠고, 무서웠다. 아무리 소리친 들 내게 귀를 기울이는 상대가 이제는 없다.
“네가 안다니 우선 해봐. 손해 볼 건 없으니.”
어느새 그 방에 들어온 오우라가 별것도 아니라는 듯 한마디를 툭 던지고 만다. 그 뒤를 따라서 다른 오우라들이 동요 없이 줄지어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