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막에 다양한 색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늘 진 흙빛, 태양을 그대로 머금은 붉음, 흩뿌려진 검은 그림자. 뜨거운 낮과 얼어붙는 밤 사이, 치열하게 살아남은 발자국이 모래 바람에 사라지고 고운 백지만 남는다. 그래서 유일하게 마주하는 작고 푸른 식물에게 더 애정을 주는지도 모른다. 내 손등에 접합된 이 선인장처럼.
아프냐고 묻는다면 늘 모르겠다고 답한다. 어떤 대답을 한들 따라오는 동정 때문은 아니다. 정말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이 있다 한들 내게는 날 때부터 당연했으니 그 감각이 무엇인지 통 알 수 없다. 다행인 일이다. 근래 로우 섹션에서 새로 출고되는 모기니들은 후천적 접합 실험에 최적화된 개체로 고통을 온전히 인식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확장 구역의 천장은 낮고 통로는 좁았다. 비명소리가 멀리까지 뻗어 나가지 못하도록 말이다. 탱크에서 출고된 성체 모기니들의 몸을 자르고 붙일 때 피어나는 절망이 수분이라면 이 넓은 사막을 다 적시고 넘쳐 울창한 숲이 되겠지. 선천적 접합 개체인 나는 비교적 무탈한 편이지만 선인장에서 돋아나야 할 가시가 내부 장기에서 발현되는 날에는 아득한 감각에 정신을 잃곤 했다. 세상의 모든 약들을 다 가지고 있는 실험실이니 완충제를 놓아주지 않을까 기대해 봐도 그런 요양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예민한 편이 이 몸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관찰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침범에 난도질된 내 몸은 각성제에 절여진 채 눈을 뜨곤 했다. 눈이 타들어 가는 불빛 아래에서 벌거벗겨진 채 깨어나 비명을 삼키다 보면 아무리 비참한 인생이라도 부러워진다. 적어도 인생이라는 말의 허락은 같은 틀을 가지고 있어도 결코 호모 사피엔스 종이 아닌 우리와는 달리 사람의 범주에 속한다는 의미였으니. 지금이라도 아픔에 대한 답을 정정할 수 있다면 이게 고통이 아닌가 짐작해 볼 뿐이다.
그래도 식물계 접합인자인 나는 나은 편이다. 이식 범위가 넓지 않고 비교적 괴사 확률도 낮은 데다 적어도 나는 내 몸에 자라나는 푸른 생명체에 애정을 갖고 있었다. 이곳에서 성장기를 경험한 몇 안 되는 사례이기도 했다. 그 사실이 퍽 위안이 된다는 말은 다른 모기니에게도 입 밖으로 낸 적은 없다. 서로를 향한 동정, 연민은 있다 해도 공감과 애정을 베풀기에 우리의 삶은 지나치게 척박했다. 대신 어릴 때부터 나를 담당해 온 소우 박사에게는 종종 내 마음을 표현했다. 행복에도 기준치가 있다면 내가 있는 곳까지 끌어 내려서라도 손에 넣으려 한다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전제는 공평하지 않았다. 누구도 어루만져 주지 않는다면 나라도 나를 버리지 않을 각오가 필요했다. 실험체의 처지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애초의 존재의 목적이 붙여진 채 태어났다. 그리고 그 목적은 고귀한 생명의 가치 따위가 아니다. 연구 결과로써의 필요가 만족된다면 종결 후 폐기처분이 당연한 존재. 실험체로 불리는 것에 거부 반응이 큰 모기니도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벗어날 수 없다면 냉정한 직시가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첫걸음이라고 박사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하찮게 취급하는 기관에서 드물게 가치가 검증된 자산인 박사가 떠난다는 소식은 모두에게 큰 동요를 일으켰다. 재생 큐브로 얼마든지 초기 회복이 가능한 질병을 받아들이는 고집, 그 병원체의 확률이 죽음의 손을 들어줄 때까지 방치하는 용기를 뒤로하고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떠나겠다는 박사의 결정을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그녀는 기관을 떠나 두문불출하다 알 수 없는 곳에서 죽을 것이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감시받는 속박에 누구보다 익숙한 박사가 전부를 무시하고 내린 결정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박사는 이별을 미리 알았던지 시간을 들여 내게 은밀하게 많은 것을 남겼다. 대부분은 무형으로 마음을 써 기억하지 않으면 곧 사라지겠지만 배우기에 어렵지 않았다. 대화를 할 때 상 대의 눈을 맞추고 표정을 살피는 법, 상대의 호흡과 속도에 맞춰 대화하는 법.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는 구조와 순서가 있고 어떻게 조립하는지에 따라 의미가 바뀌기도 한다는 배움은 너무도 낯설고 매력적이었다.
소우 박사가 남긴 유일한 유형은 아주 작은 상자였다. 작고 반질거리는 나무상자는 꼭 각진 씨앗 같았다. 나는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두기를 싫어했는데 내 오른쪽 손등부터 팔목까지 점점 더 넓게 자라나는 선인장이 뒤집힐 때마다 중력이 꼭 거기만 작용하는 것 마냥 묵직하게 중첩되는 감각이 표현할 길 없이 불쾌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뒤집혔을 때 현기증을 느끼는 쪽도 내 뇌였기 때문에 강제 지령을 받지 않는 이상 늘 왼쪽 어깻죽지 언저리에 손을 포갠 채였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꼭 두 손을 모아 받고 싶었다. 나를 잘 알고 있는 그녀는 맞댄 채 내민 내 두 손을 보고 잠시 멈칫했지만 곧 조심스럽게 그것을 놓았다.
우리에게 허락된 [1]날레디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박사가 남긴 유산이었다. 제대로 자라지 못한 탓에 대조군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의 ‘정상’ 손바닥 위에 올려진 그것은 꼭 공기처럼 아무 무게도 느껴지지 않아 사라질까 두려웠지만 퍽 마음에 들었다. 내 기뻐하는 표정을 읽었는지 박사도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던 순간처럼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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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편한 차림의 박사를 본 연구자들과 모기니들은 모두 당황스러워 보였다. 나 역시 태아 배지에서 출고된 이후 멸균복, 정복이 아닌 차림의 박사는 처음 보았다. 병의 진행이 빠른 지 며칠 사이에도 야위고 지친 얼굴이었지만 표정은 어느 때보다 좋아 보였다. 기관의 초창기 멤버인 박사는 오랜 세월이 무색하게 빈손으로 떠날 모양이었다. 자신의 팀원들과 또 다른 연구원들과도 짧게 인사를 나누던 박사는 나를 보자 천천히 다가왔다.
"언제 열어봐야 하나요?"
"저번에 본 것 기억하지?"
"움직이는 것, 그림"
"잘했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는 손길을 다시는 못 느낀다는 사실이 슬펐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지만 온기가 오래 남는 접촉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들을 만지는 경우는 약물을 주입할 때, 체액을 채취할 때, 새 샘플로 출고될 때나 죽게 될 때뿐이라 목적 없는 손길을 받을 기회는 아주 드물었다. 어쩌면 폐기될 때까지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어 이해하지 못하는 모기니도 있을 것이다.
"움직이는 그림, 영화라고 해."
"……영화, 것?"
"기억하지?"
자신은 없었지만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박사는 눈을 맞추고 웃어주었다.
"그날 배운 ‘것’도?"
불분명한 핵심은 우연히 발견되기도 한다. 새로 배운 '불분명'과 '우연히'의 정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늘 검사 후에 알 수 없는 선이나 숫자뿐이던 영상 보드에 찍혀 나온 작은 인간, 작은 세상이 충격적으로 아름다워 밤새 잠들지 못한 날들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그게 생각 나는 날에 행동해."
소우 박사는 내 어깨를 힘주어 꾸욱 잡았다. 손길에 내 선인장의 연약한 가시들도 살랑살랑 흔들리며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나는 내 작은 친구의 인사 또한 전하고 싶었지만 박사가 접합부를 불편해했던 기억에 오른손을 등 뒤로 더 깊숙하게 숨겼다. 오랫동안 좋아하지 않는 일을 익숙하게 해 온 박사와 나는 마지막 순간은 좋아하는 우리의 것으로 하기로 했다.
"꼭 기억해."
주어가 명확하지 않은 혼잣말이었지만 그 말이 기억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언젠가 당신의 가치는 무엇이냐는 내 질문에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답했던 박사였지만 실은 사실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인간의 부재는 많은 파장을 몰고 왔다. 모든 일들은 의외의 연관성을 가질 수도 있어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박사에게 배웠던 어려운 단어들을 그녀가 떠나고서야 하나씩 실감 나기 시작했다.
소우 박사의 후임자리에는 내정된 오우라가 개체 유지를 이유로 열댓의 모기니를 폐기시켰을 때, 성장 인자 실험체로 110세이자 72일의 삶의 마감을 앞둔 늙은 모기니를 넘어뜨리고 심심풀이로 그를 걷어찬 날 밤, 신체에 가해진 외부 충격 이외의 이유로 흐르는 눈물의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취침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잠들 수 없어 한 번도 몸에서 떨어뜨린 적 없던 상자를 밤새도록 노려보았다. 상자는 눈물에 흠뻑 젖었고, 사실은 씨앗이었던 그것이 거대한 나무가 되어 기관의 높은 천장을 뚫고 파괴하는 꿈을 꾸었다.
[1] 호모 날레디: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사람 속의 멸종된 인류 화석. 소토어로 별을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