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니 4

by stdmtm

겨우 내 힘으로 걷게 되자 우습게도 홀슈터가 보고 싶었다. 내가 삼킨 돌멩이와 그 무거운 소명에 대해 떠들며 그녀를 괴롭힐 생각이었다. 고집스러운 홀슈터를 기대에 부풀게 하고, 실망스러운 표정이 조금 풀어지는 얼굴을 놀려대고 싶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홀슈터가 없다.

모기니는 사라진다. 언제나 늘 사라지며 끝을 맺는다. 그래도 그 결말이 지금이 될 줄 몰랐다. 복합 성장인자 실험체 중 가장 어린 채로 성장이 멈춰 더 이상 관찰 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들은 홀슈터의 얼굴과 말발굽 중 뭐가 더 보관 가치가 있을지에 대해 떠들었다. 배아를 분석하여 홀슈터의 외모를 재현할 유전자 맵핑을 시도해 보자는 말에 그들이 웃는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배 속에 있던 태아는 다섯 개의 손가락과 다섯 개의 발가락만이 달려있었다는 정보와, 그래서 보존할 가치 없이 바로 소각장으로 보내졌다는 무전까지. 내가 홀슈터의 발목에 낸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이다.


‘박사, 당신이 틀렸어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바뀌는 건 없어요.’


나는 내 삶이 절망을 알만큼 나약하지 않다고 여겼다. 날 때부터 체념하는 법과 존엄을 버리도록 교육받은 내가 뭘 알겠는가. 더 떨어질 지옥이 없다고 자만했다. 처음으로 박사를 원망했다. 왜 희망을 알게 해서 나를 좌절시키는지. 헛된 거짓을 심어 주었는지. 미래의 변할 수 있다는 말은 우리 같은 것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똑바로 바라보고 구하라는 말도 헛소리다. 알게 된다면 언젠가는 궁금해 할 수 있다는 말도, 무엇이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지도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가능성이니 거짓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내 안에서 꽃 피운 희망에게 잡아 먹히고 말았다. 나 스스로 역겨워 구역질을 멈출 수 없었다. 홀슈터가 생각날 때마다 슬픔에 속을 게워냈다. 더 이상 마신 것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내 작은 기생식물은 사막의 물을 저장하는 선인장이 아닌가. 계속해서 토해냈다. 우리가 토해 낸 것은 절망이었다.

그들이 정한 시기와 형태가 아니라 스스로 죽어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지만 허락될 리 없었다. 강제로 삼켜진 모든 영양분을 거부하자, 뉘어진 온몸에 액체가 주입되기 시작했다. 작은 선인장은 다시 푸른 생기를 찾았고 내 눈에 초첨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릴 때마다 연결된 라인을 뜯어내고 발버둥 치니 눈 위로 뜨거운 액체가 몇 방울 떨어뜨려졌다. 시야가 서서히 점멸되고 몸을 가누지 못해 몽롱한 채로 잠에 빠졌다. 꿈에서 나는 끝이 없이 푸른 사막을 걷고 있었다.



내 작은 선인장에 꽃이 폈다. 작은 꽃은 본 적 없는 새빨간 잎을 가지고 있었다. 내 염원이 고작 이렇게 작고 연약했을까. 고작 이런 걸 이루려고 나는 그토록 발버둥 쳤던 걸까. 난생처음 보는 결실이지만 반갑지 않았다. 붉은 꽃을 물어뜯고 망설임 없이 삼킨다. 꽃에는 꿀이 있어 달다고 배웠는데 사막에서 피어 난 꽃에서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며칠 뒤 오우라가 내 앞에 앉아있었다.


“감각은?”

“… ….”

“고통은?”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내가 먹어 버린 꽃이 있었던 자리는 바스러져 새로운 꽃봉오리가 더 맺혔다. 꽃이 잔뜩 피면 어떨까. 이곳에도 나비가 있다면 내게로 날아와 줄까. 또 눈물이다. 말도 안 되는 상자를 삼키다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 속에 무겁게 자리 잡은 알맹이는 어디로 갔을까. 가만히 복부에 손을 올려본다. 손등과 발목을 덮고 자라던 선인장이 내 차가운 몸보다 더 싸늘하게 느껴졌다.

만개할 거라 믿었던 생명은 빠르게 시들기 시작했다. 다시 올라오던 봉우리들은 활짝 피기도 전에 부서져 추락했다. 달지 않아도, 향기가 없어도 꽃이었는데. 내가 사라져도 영원할 것 같던 내 작은 선인장이 말라갔다. 내게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나보다 더 가치 있고 용감한 내 몸의 일부가, 나를 유일하게 가치 있게 해 주던 푸른 식물이 제 생명을 다해간다. 홀슈터의 말이 맞았다.

홀슈터.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눈과 부드러운 부드러운 머리카락, 용감한 야수의 심장과 종마의 발굽을 가졌던 나의 모기니. 홀슈터는 무엇을 남겼을까. 그녀의 마지막은 어떘을까. 아프지 않았을까. 죽음을 준비할 시간은 있었을까. 어쩌면 홀슈터는 웃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홀슈터라면, 웃었을 것이다.


“샘플 채취 할까요?”


건조한 물음에 오우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은 회수되어 체액-01784 이름이 생겼다. 결국 내 몸은 사막이 되었고 마지막 생명조차 거두었다. 바스락 거리며 죽은 표피를 털어내는 작은 식물을 보았다. 네가 자라 나를 삼키는 편이 더 아름다운 결말이었을 텐데. 어리석은 내 행동 때문에 날 때부터 하나였던 내 친구마저 잃었다. 슬픔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잠들고만 싶다. 정신을 차리려 애쓰다가도 이쯤이면 포기하라는 다정한 속삭임에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거대한 오우라의 팔에 들려 어디론가 향하는 중이었다. 그의 발자국 소리가 멀리까지 울리는 걸 보니 다른 구역으로 가는 통로로 짐작할 뿐이었다.


“넌 나를 싫어하지. 나도 네가 싫거든. 오해는 마라. 나는 모든 실험체를 경멸하지 특별히 너라서 그런 건 아니다.”


텅 빈 공간을 울리는 오우라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리 묵직하게 울린다.


“소우가 널 아꼈어. 나는 소우를 아꼈고. 이건 그런 거야.”


‘이유가 없어도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게 세상이야.’


“우연히 일어나는 그런 일. 이해 못 하겠지만 뭐, 그런 거야.”


‘살면서 한 번쯤, 반가운 우연을 볼 기회가 있을 거야.’


마침내 뜨겁고 건조한 공기를 마주했다.


“잘 가라. 행운을 빈다.”


‘우리 삶에 그런 일들이 한번쯤은 꼭 있을 거야.’



‘불분명한 일이 우연히 발생한 것’의 다른 이름은 오우라 일 지도 모른다. 오우라도 불분명하게 벌어지는 어떤 일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걸 박사는……,


‘그런 운은 특별해. 그래서 행운이라고 불러.’


맞아. 행운이라고 불렀다. 행운을 모른다는 내게 낯선 존재를 확인했을 때 달라지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던 소우 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는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해 줄 수 있는 답도 없고. 그렇지만 많이 궁금해하고 배워 둬. 그래야 언젠가 실제로 마주했을 때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거야.’


그때는 그런 날이 오지 않으리라 믿으면서도, 내심 기대하며 아까워 입 밖으로 내지도 못했는데.


‘네가 원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이야.’



태어나 처음 마주해 보는 세상의 가는 공기가 온몸을 짓눌렀다. 금방 잡힐지도 모른다. 기관의 또 다른 실험일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경계가 있어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버리는 실험체가 된 나는 몇 걸음 후 날아온 총알에 죽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이 많은 내게 박사가 보여주고 싶어 했던 세상을 떠올렸다. 작고 오래된 네모난 상자의 흑백의 움직이는 화면을 떠오른다. 막이 오르기 전 숫자를 하나씩 세며 화면이 바뀌길 기다리는 순간이 가장 좋았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이 날 때, 적어도 마지막 순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잠깐의 시간이라도 허락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하게 나는 살아남고 싶다.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고 암흑이 뒤덮는 순간을 마주하길 원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에 몸을 적시고 언젠가는 차가운 눈을 직접 밟고 얼음이 온기에 녹는지 확인하고 싶다. 푹푹 빠지는 모래를 딛고, 나를 묶어 두려는 어둠을 뿌리치며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내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떠올리고 기억하려 애썼다. 갈 길이 멀겠지만 나는 원하는 것이 아주 많으니 괜찮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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