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니 5 (完)

by stdmtm

발바닥은 감각이 없었고 그을리고 덧난 피부는 고통에 무뎌졌다. 하염없이 걷고 있자니 이전의 기억이 까마득한 꿈같다. 갈망하던 세상을 마주했지만 형태만 다른 고통이다. 뜨거운 모래, 입안을 태우는 달구어진 공기. 떠오르는 아름다운 해의 감상은 곧 사라지고 갈증만이 남는다. 태양은 서서히 떠올랐고, 어둠은 순식간에 세상을 덮쳤다. 사막의 한낮은 눈이 멀 것 같았고 밤의 한기는 몸을 조각낸다.


나는 또 틀렸다. 사막의 진실은 황량한 흙과 검붉은 열기뿐이다. 몇 번의 낮과 밤이 반복되고 셀 수 없이 미끄러지고 굴러 떨어졌다. 그 사이 죽은 모래뿐이라고 여겼던 땅에 움츠린 생명체를 보았고, 작고 느릿한 그들은 처음 보는 나를 도리어 경계하며 천천히 스쳐지나갔다. 내 몸의 일부였던 작은 녀석의 특기가 발현된 것일까. 목을 태우던 갈증은 사라졌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지만 끝이 없다고 생각하니 도리어 마음이 편하다. 시간도 갈 곳도 충분하다. 적어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보다는 사막이 광활할 것이다. 해가 동쪽에서 떴던가, 달이 북으로 졌던가. 나는 이런 것을 배운 적이 없다. 나를 ‘것’의 범주로 부르는 세상에서 벗어나 제대로 설 기회가 없었고 진정으로 살아남고자 투쟁 한 적 없었다. 넘어지면 발 대신 손으로 기면 되고, 코의 점막이 타버리면 입으로 공기를 머금으면 된다. 거꾸로 매달린 냥 어지러울 때면 드디어 나의 기생 식물이 나를 차지했으니 안심했고, 온몸이 부서지는 통증 속에 달궈지면 다시 내가 되었다고 안도했다. 내가 아는 가장 큰 숫자인 구천 구백 구십 구까지 세고 또 세었다. 구천 구백 구심 구를 구천 구백 구십 구 번 반복하기 전에 나는 죽으리라는 사실이 가장 큰 위안이다. 하지만, 그래도 박사에게, 하다못해 오우라에게라도 그다음을 배울 걸 그랬어.


그 순간 시야에 우뚝 선 무언가가 들어왔다. 모래 바람이 거칠어 흐린 형태였지만 곧 그것이 하늘을 향해 뻗은 큰 선인장임을 알 수 있었다.


눈에서 물이 흐른다. 늙은 지표에게 흡수될 유일한 수분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더 목놓아 울게 되었다. 멈추지 말라고 했지만 이제 상관없었다. 작고 연약한 식물이 아니었다. 내 키보다도 크고 단단한 외피에 둘러 쌓인 거대한 늙은 식물을 마주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여기가 내가 올 곳이었구나. 드디어 나의 종, 내가 무엇인지 보고야 말았다.


퍼석한 밑동에 몸을 뉘이고 크고 작은 가시들이 닳은 옷을 뚫고 나를 침범했다. 상관없다. 나는 이런 류의 감각에는 익숙하다. 다만 이 생명체가 나를 동족이 아닌 괴물로 생각할까 조금 두려웠다.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로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면 비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하니 그렇지도 않았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보드랍고 따스한 순간을 기억하며 생명이 다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평온함이 주인공들의 몫이다. 마지막은 실험체가 아닌 인간 세상의 주인공처럼 굴어 보자. 처음으로 대단하고 영광스러운 내가 되었다.


해가 서서히 밝아 오는 시간. 곧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흥하듯 내 작은 친구의 가시가 살랑살랑 흔들리던 감각이 살아난다. 나는 차가운 실험대에서 죽지 않았다. 모든 부위가 정확하게 나누어 얼려지지 않았다. 죽음만은 온전히 내 선택으로, 막연히 갈망했던 희망에 도달했다. 바람이 피부를 어루만졌다. 목적 없이도 머리를 쓸어주는, 온화한 익숙함과 다시 만나는 순간.



“잘했어.”



늘 듣기 좋았던 박사의 칭찬이 들린다. 내가 죽는다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소우 박사와 만날 수 있을까. 내 작은 푸른 친구는 아담하지만 반짝거리는 상자에 담아 함께 하기로 했다. 너도 뿌리를 온전히 내릴 너만의 대지를 소유할 자격이 있으니. 셋이서 다양한 곳을 여행하고 쌓인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나는, 지금, 원한다.



오우라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최초의 식물계 접합 인자의 부재는 그가 독단적으로 제거한 많은 실험체 중 하나로 추정되었다.


자신이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유전자의 접합종이라는 한 학자의 미친 주장은 그가 직접 증거로 제출한 유전자 맵을 통해 진실로 밝혀졌다. 수많은 검증을 거쳐 진실이 밝혀 지자 곧 모습을 감춘 학자의 이름을 따 “소우(saw)” 고리라고 이름 붙였다.


행복을 느끼면 가시가 물결치는 선인장이 인기였다. 흔한 선인장이었지만 모든 이의 방 한 켠에 작고 아담한 푸른 생명체가 자리했다. 선인장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지의 진위 여부는 불분명했지만 꽃을 피우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뜬구름 같은 말에 모두들 애지중지 초록의 식물을 반려했다. 세상 모든 곳에서 선홍색 꽃이 나풀거렸다.


(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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