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져서스 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주 연방 휴머노이드 보호법률령에 속하며 모든 어쓰-본 (earth-born) 지적 동력체의 평등을 지지합니다 즐기세요! 사냥을!
죽죽 그어진 페인트 위로 덧입혀진 글귀가 목적지에 제대로 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지겹게 펼쳐진 사막, 붉은 바위들의 협곡을 지나 다다른 도시 초입, 가파른 회전로에는 수동형 [1]베허트가 줄지어 서있다. 물질형 연료로 굴러가는 적지 않은 수의 운송구들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말라버린 물길, 수로였던 협곡, 이제는 거대했던 댐의 흔적만 남은 사막 끝. 이동식 거주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지막 자유 지대에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눈을 사로잡은 반짝임은 예상대로 승전 탑이다. 특수 속성의 탑은 사냥 후 동력을 잃은 [2]로피에만 자력을 가진다. 겹겹이 쌓여 마치 탑의 껍질 같은 그들은 혼란과 고통, 평온을 가장한 각자의 마지막 그대로 전시되었다. 생의 마지막을 벗어난 그들은 조금 우그러진 표면을 제외하면 두 발로 땅을 디디던 모습 그대로였다. 출발 전 이식한 [3]줌안을 활성화시키자 역시 희미하게 남겨진 인식표가 보인다.
Conversation level 3
DIVE형 사고체계
Mirror-Type Empathic Processor: 대화 상대 감정 전의 기능, 공감형 처리 장치
짐작한 대로 자율형 코어가 탑재된 인간형 모델이다. Homo synthetica empathis,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코어 머신은 인간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며 사냥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조약이 새 협약의 핵심이었다. 고유한 경험과 기억을 머금고 스스로 판단하는 그들의 개체 정체성에 대해 정작 제 3자인 인간들은 나름의 도덕적 잣대와 이득을 따져 오랫동안 대립했고 협약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를 대며 갈등은 극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무언가에 쫓기듯 절박하게, 그렇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된 드라마는 평화를 성급하게 반겼고, 그날 오랫동안 서로를 적대하던 두 갈래의 인간들은 삐걱거리는 소음이 전부 사라질 미래를 확신한다는 듯 두 손을 굳게 맞잡았다.
주체가 빠진 협약은 허울뿐이었지만 적어도 그곳에 있던 생명체는 모두 만족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고 떠들썩했다. 네 개의 [4]리움을 기준으로 대각선의 교점에 존재하는 정오각형의 광장. 어디서나 존재는 점, 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 곳에는 다섯 개의 모서리와 이기심과 욕망을 대표하는 가당찮은 구조물이 있었다.
리움의 광장에서 자율형 코어 머신의 개체 독립을 공표하던 순간, 이플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모처럼 사막화 경보령이 없던 날씨와 한 목소리로 환호하는 군중, 좀처럼 목소리를 통일하지 않던 까다로운 다수의 리움이 잡음 없이 자리 한 진귀한 풍경이었다. 후에 고작 몇 시간의 게인 날씨를 위해 동원된 어마무시한 수의 [5]디샌더를 보고는 곧 감흥이 사라졌지만, 어쨌든 그날의 선전은 외부 공격과 내부 분열까지 겹쳐 불투명하던 리움의 명성을 성공적으로 끌어올렸다. 다시 한번 미래형 국가 체제가 승리하리라는 외침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플의 마음속에도 희망의 불씨가 자리 잡게 할 정도였으니까.
'미래형'이 붙는 순간 윤리적, 도덕적 잣대에서 너그러워지는 세상에서 숨 쉬는 것은 행운일까. 자신도 그 자비의 수혜자이기에 부인할 생각은 없었다. 불과 반세기 전이었다면 이미 죽은 신체였다. 혹은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처량한 인생을 버텨야 했을지도 모른다. 개인의 생명 포기 의사는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지지만 만만찮은 비용이라 성치 않은 채로 죽기 위한 자금을 모으는 비참한 말로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행운이었다. 덕분에 특출함 하나 없던 인간이 기동력 자원으로 분류되기 시작했으니 세상 모든 일에는 나쁜 면만 있지 않다는 생각만 반복하며 대체 신체 적응을 마쳤다. 역치까지 높아진 고통은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어 짧지 않은 시간을 버텨냈고 그제야 거울 속 반쪽짜리 자신을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당신의 도움 없이는 성장할 수 없어요. 코어 머신에게 경험을 나누어 주세요. 다정함으로 동력체는 진화합니다.’
친근한 말로 속내를 숨기고 개인의 고유한 기억을 수집해 간다. 트레이닝 베이스의 데이터로 흡수되는 대신 살아났으나 정작 살아난 후에는 기쁨조차 느끼지 못했다. 너른 백지에 새로운 걸 하나씩 담으려 애썼지만, 알 길 없이 모든 감정 앞에서 어정쩡하게 고민했다. 자신이 동의한 소생이기는 하냐는 의심에 그들이 알려주는 한 불렸던 이름과 서명, 생체 증명서가 눈앞에 떡하니 놓였고 확인할 길 없는 진실을 마주한 후에는 단념, 그뿐이었다.
허무했다. 반쯤 소실된 신체는 숫자로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얼마짜리 인간인가. 이제 나라는 인간의 가치를 무엇으로 가늠해야 할지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뻔한 질문이 쉽게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사고 중에 머리를 온전히 보존한 건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비스듬히 신체의 반을 갈고 휩쓸어 버린 폭풍은 텅 빈 반쪽자리 자신만 두고 홀연히 소멸되었다.
이플의 줌안 끝에 걸린 로피의 마지막 동공 반사가 아득히 멀어진다. 로피의 시각 장치와 자신의 왼쪽 눈에 삽입된 안구의 기본 구조는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언젠가 자신의 시선도 텅 빈 채 점멸될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순간 마주하는 죽음의 서늘함은 다음 살상과 조우할 때까지 미뤄두기로 했다. 남아 있을 리 없는 인간성은 야금야금 파 먹히다 결국 고갈된 모양이다.
동체시력을 기본값으로 재조정한다. 조금 뻑뻑한 감 외에는 괜찮았다. 보급형 안구를 구해 촉발하게 시술한 것 치고는 만족스러운 성능이다.
게이트 통과 전 정체 구간, 인기척에 창을 내리자 그 사이로 뜨겁고 텁텁한 모래가 밀려들어온다.
"뭐 하러 왔수?"
언어를 저장 장치에서 배운 것 마냥 어색한 말투다.
"지나가다 들렸어요. 정비도 할 겸. 금방 떠날 겁니다."
"에이, 이 동네가 그냥 들르는 곳은 아니지. 사냥?"
도시를 통과해 가는 사람을 상대로도 장사를 하니 거액의 보상금이 어디서 나오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게이트 초입 전광판에서 본 숫자가 떠올랐다.
"그럼 10 코인. 헌팅 퍼밋은 뺀 금액이오."
"… …."
"… 배지가 없으면 골치 아파질걸."
침묵에 깔린 의심을 느꼈는지 그가 시선을 돌렸다. 열기로 가득 찬 태양 아래 쇠붙이들과 지루함을 견디는 열망에 찬 눈동자들이 뒤엉켜 빛나며 가시거리를 방해했다.
"7 코인으로 하쇼. 금방 떠난다니까 내 양심상 부르는 거야."
"12 코인. 대신 줄리 앤 고져스 박물관 관람 외 시간까지."
어디 가서도 이 값으로는 캔져서스에 들어올 수는 없다는 고리타분한 말까지 덧붙이는 남자에게 후한 값을 불렀다. 대단할 것 없는, 박물관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조잡한 전시 입장권으로는 넘치는 대가다. 더미를 혼자 볼 시간을 흥정해 볼 생각이었다.
"빛나는 더미를 보러 오셨소?"
작게 끄덕이자 그가 안타깝다는 듯 말한다.
"한 발 늦었어. 내일 새벽에 가져갈 거야."
"가져간다니, 무슨 말이죠?"
아무것도 모르고 왔냐는 표정의 남자의 눈길은 다시 저 멀리 떠있는 수송선을 가리킨다. 그제야 황량한 사막의 지평선 위로 먹구름 마냥 검고 거대한 물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도 잡아떼면 그만이긴 한데. 도저히 양심에 찔려서 말이지."
† 캔져서스 쥴리 앤 고져스 뮤지움 소식 00185
우리 도시에서 특별히 초청한 전(前) 연방 기지 소속 저명한 논-휴먼 생체학자의 의견에 따라 빛나는 더미의 모든 신체 활동은 지극히 정상이며 평온하게 잠든 상태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샤이닝 스킨의 비밀은 [6]프록시 오프 전 마지막으로 유입된 그의 연인의 숨결로 인해 유지되는 에너지 합성이며 더미의 아름다운 피부는 여전히 빛나며 그가 여전히 생존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방문객들은 시티 헌팅 데이를 제외한 매일, 10시에서 4시 사이, 누구보다 가까이서 이 신비한 더미를 볼 수 있답니다. 빛나는 더미의 피부는 공기에 노출될 경우 유해 가스가 생산되지만 안심하세요. 핵분열 기기에도 뚫리지 않을 다이아몬드 [7]큐비클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으니까요.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을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공식적인 그의 생존 확인을 기념하기 위한 선물! 인간에게 무해한 발광 물질로 빛을 내는 토큰, 30일 동안 지속되는 반짝이 크림, 백 분의 일로 축소한 마그넷 등 다양한 기념품 또한 구입 가능합니다. 캔져서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Homo Sapiens 흙에서 난 지혜로운 자.
Homo Synthetica Empathis 공감이 가능한 만들어진 자
[1] 베허트: 가스, 오일로 움직이는 엔진이 장착된 2륜 구동 이상의 운송구
[2] 로피: 이족 보행을 하는 동력체로 명령 체계로 움직이는 모델과 스스로 판단하는 코어 내장형 모델이 있다.
[3] 줌안(Zoom 眼): 확대 기능이 주인 이식 안구
[4] 리움: 국가 체제를 대신해 각 리움은 가이드의 특성에 맞는 운영 체제로 리움인과 그의 거주지를 보호한다.
[5] 디센터: 석고화가 진행 된 사막의 모래 바람을 일시적으로 정화하는 기기
[6] 프록시 오프: 모든 동력 활동이 멈추는 비상 전원 차단으로 외부에서 임의로 시행하거나 풀 수 없다.
[7] 큐비클: 다이아몬드 소재로 만든 강도 높은 투명 상자로 내부를 진공 혹은 고압으로 유지하며 온도에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