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진짜 담배야?"
"맞아."
"어디서? 훔쳤어?"
높은 바리케이드 근처에는 핵분열 경고 표지판이 살벌하게 뒹굴고 있었고 심심찮게 돌아다니는 경비들은 여러 곳에서 차출된 듯 어우러지지 못했고, 서로를 경계하며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오랫동안 방치 된 구형 [1]어쓰본을 회수해 가는 작업 치고는 과하게 삼엄한 경계에 방황하던 차, 어슬렁거리며 배회하던 누군가가 접근해 왔다.
"누가 죽어서. 집 청소를 했거든."
"횡재! 죽어? 좋은 날? 특별해?"
"그럴 리가."
"어? 그럼 안돼. 아까워. 특별한 날. 필요해!"
드러난 목과 팔, 발목 언저리에 엉망으로 꽂힌 패치와 오락가락하는 어눌한 말투를 보니 이미 해독은 불가능한 상태인 듯했다. 작업복 사이로 새로 구입한 흠집 없는 배지가 보인다. 빛나는 더미의 수송을 위해 동원된 외부 인력이 확실하다. 단순 노동 지원으로 굴러들어 온 [2]모기니다. 말없이 한 개비를 꺼내 내밀었다.
"진짜야?"
"물론, 어떻게 할까?"
독성에 취해 심하게 떠는 손이 닿기도 전에 재빨리 몸을 틀자 금방 난폭한 눈빛으로 으르렁거린다. 강화제 복용도 꾸준히 해왔을 터, 어차피 진짜 담배인지 재로 만든 합성 물질인지 알아차릴 감각도 더는 남아있지 않을 텐데. 여차하면 덤벼들 모양새로 사족 보행을 시도하는 남자의 발 밑으로 먹잇감을 던졌다. 원래라면 더 갖고 놀며 재미를 봤겠지만, 꾸물거리며 하늘을 점령하기 시작한 먹구름보다 존재감이 큰 수송선 때문인지 조급해지는 마음을 가다듬기 힘들었다. 흙바닥을 핥다시피 살피는 남자는 낑낑거리며 바닥을 기었다. 헐거운 셔츠 아래, 드러난 척추뼈가 살아있는 생명이 아닌 화석처럼 앙상하다.
"출입증."
흙바닥을 핥던 그는 망설임 없이 출입증을 던지고 원하던 바를 얻었다. 말단 노동자의 택은 빈약한 정보만큼 어려움 없이 따올 수 있었다. 가이드라인까지나 겨우 접근할 수 있을 터. 시물레이션을 반복해 봐야 설계도 없이 들어갈 방법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눈을 감고 암호화된 도면의 빈칸을 상상해본다. 지리적 이점을 고려해 굴타나 공항 보안 채널로 이동할 모양이다. 그쪽에서 뜨는 비행선들의 행선지야 뻔하다. 남극 초원에 위치한 중립기지. 임계 수치를 훌쩍 넘어선 자기장을 통과할 수 있는 수송선은 몇 안된다. 그중 중립 기지의 크지 않은 활주로에 수용 가능한 모델은 기껏해야 서넛. 내부로 숨어드는 것 보다야 이륙을 막을 만한 사건을 일으키는 게 빠르다. 함께 뜨는 상황은 면하고 싶다. 퇴로가 막힌 공중전은 대비하기 까다로운 데다 의뢰에 매인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이쯤에서 그만두고 이 도시의 불법이나 실컷 즐길까 싶지만 짠 것 마냥 필요한 금액과 딱 맞아떨어지는 거액의 보상금을 포기하기란 못내 아쉽다.
수거된 기억, 분명 내 것이건만 열람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만만찮았다.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반쪽자리 더미가 정말 살아 있다면 그게 자신과 뭐가 다를까. 같은 숫자로 찍혀 나온 더미의 몸값에 동질감이라도 느끼는 걸까. 늘 그렇듯 질문에 물음표가 하나 더 추가될 뿐이었다. 다 찢어져 굴러다니는 포스터를 주워 들자 조잡한 형광 염료를 덧입힌 그림과 유치한 문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영원한 사랑의 증표! 빛나는 더미
현존하는 유일한 제3세대 인간형 바이오-코-머신
최단 시간 단종 된 비운의 모델.
더미를 부르는 이름과 소문은 무성했다. 모범적인 1,2 세대 후 맞닥뜨린 과도기의 프로젝트로 외부 에너지 유입 없이 자급자족하는 최초 모델이자 최단 시간 내에 폐기된 단 일곱 대의 인간형 동력체. 그들을 보호하는 통합 법률의 개념조차 없던 시대의 유일한 생존자.
설계도와 보안 자료는 소실되었고, 생산 라인조차 폭발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 사막 한가운데, 불법 도시의 조잡한 전시관에 처박힌 반쪽자리 더미가 아니었다면 차라리 전설로만 남을 수 있었을 텐데. 모든 것이 엉망이었던 시대, 세력을 넓히는 중앙 리움과 체제에 대항하는 자유군을 모두 피해 경계 지역에서 태어난 최초의 사고하는 어쓰본은 비극의 주인공인 채 스스로 숨을 멈췄다.
말도 안 되는 일 천지인 세상에서 인간형 동력체에만 적용된 엄격함은 인류의 자만심과 생존 본능의 이기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였다. 규제가 느슨한 유일한 곳은 전투지역뿐이다. 인간과 일치도가 높은 전투용 모델은 적의 혼란을 야기시켜 사망률을 급감시키기에 인간과의 유사도를 높였다. 적어도 군복 위로 보이는 부분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했고 피하에 고르게 분포된 체열 기능과 혼선용 맥박 주파수는 갈수록 정교해지는 추격 기술을 따돌리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시도였다. 사상자는 심장이 자력으로 뛰는 이족 보행 생물체에만 해당된다는 오만한 결론이었지만 원한 것도 이뤄 낸 것도 그뿐이기에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줌안 이식을 해 준 퇴역 군인의 말을 기억해 낸다. 속하지 않은 용병이라는 개념이 흔한 시대에 적(籍)이 있었다는 사실을 퍽 자랑스러워하던 남자였다. 그는 전시 내내 전투형 어쓰본 두대와 함께 움직였는데 적막한 곳에서 꽤 좋은 친우였던 그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를 당황시켰다.
‘예를 들면?’
‘지나치게 사려 깊을 때.’
‘그것들이요?’
‘학습된 거예요. 아픔을 모르면서도 인간의 고통 지수를 추정한다 거나, 처한 상황에 공감한다 거나.’
'……또?'
'쾌락도?'
그가 다시 이플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면 웅얼거렸다. 폭발로 후각을 잃은 그가 감각 신경 대신에 삽입한 [3]뉴로봇의 미세한 진동이 작은 풀벌레의 울음소리처럼 울렸다. 숨결은 차가웠으나 피부에 닿는 규칙적인 떨림에 위로를 받은 것도 같다.
이플 고유의 추정 확률은 죽음에 유독 너그러웠다. 범상치 않은 삶의 고비들이 ‘그녀의 평균’을 높이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생존을 점치는 확률도 못지않게 자비로웠다. 데이터 베이스에 등록된 전투와 생존 기록은 그가 월등히 많았지만 역시 삶과 죽음은 간단히 계산되는 게 아니었다. 동이 틀 무렵, 구역은 폭격으로 쑥대밭이었고 이플이 이명으로 고통받는 사이 그는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사망했으니까. 그를 구조하여 탈출한 그의 전우는 내내 떨어지는 심장 박동수와 잃고 있는 혈액의 양을 읊으며 그의 생존 확률을 계산해 댔다. 무의미하고 평이한 음성으로, 사망을 고지하기 전에는 더없이 편안하게 '안타깝게도'를 덧붙였을 뿐이다. 이플이 그것의 코어를 부숴버린 것은 마침 이명이 멎으며 울린 소리가 더 크게 거슬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복되는 안내음은 전시 사태에 노출될 위험이 커 어디까지나 안전을 위해서였지 남자의 죽음을 향한 분노나 슬픔 때문은 아니었다. 코어가 부서진 그것의 몸체에서 역시 벌레 울음소리 같은 작은 진동이 서서히 멎어갔다. 감기던 눈꺼풀과 ‘안타깝게도’ 만을 반복하던 무엇도 추론 불가능한 말간 표정이 떠오른다.
뭘 시도 하든 해가 지기를 기다려야 했기에 하릴없이 더미의 역사나 뒤적였다. 탑재된 감정 알고리즘은 우울과 포함한 부정적 감정의 통제 기능이 없었고,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무지각 모드 설정이 기본인 실험 세대. 현재 각종 협약으로 단단히 막아 놓은 인간의 경계를 훌쩍 침범한 어쓰본을 고작 일곱 대 찍어 내고는 생산 라인까지 파괴시켰다면 목적은 분명했다.
마지막 제거 대상은 하반신이 관통될 때까지 스스로 인간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덕분에 피 대신 대체 신경 덩어리와 끈적한 보존액이 쏟아지는 꼴을 제 눈으로 담아내야 했다. 신체 훼손도 아닌 정신적 충격으로 실행된 오프 모드에 곁에 있던 소유주는 어이없게도 심폐 소생술을 시도했는데 그때 이 인간과 똑 닮은 동력체의 입술과 식도를 거쳐 몸속으로 빨려 들어간 날숨 한 모금이 그와 함께 갇히고 말았다. 사랑하는 연인의 한 줌의 숨을 머금고 영원히 살아가게 되다니. 비극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살렸다. 종의 멸종을 피해 몸의 반쪽을 잃은 채 영원히 구경거리로 남을 수 있었던 건 저 존재에게 과연 행운이었을까.
마지막 남은 사랑하는 이의 숨 한 모금. 한 움큼의 무모한 애정을 붙잡고 영원한 잠에 빠진 발광하는 더미. 체제와 관습이 무너지고 다시 서기를 반복하던 혼란한 시대의 상징은 영원한 사랑의 증거로 빛나기 시작한 이례로 존엄을 잃은 채 버틴 시간이 무색하게도 연구용 샘플로 해체 수순만을 기다린다. 인간이 아닌 것에게는 영면조차 허락되지 않는 모양이다. 부디 잠들어 있는 저 더미가 절망을 모르길 바란다.
패드의 불이 깜빡이며 의뢰 완료 시간을 최종 선택할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숫자가 몇 번 깜빡거리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좀 더 여유 있는 쪽을 택했다. 요구는 간단했다. 더미를 빼돌려 약속된 운송 채널로 보내거나 만약 실패한다면 누구의 손에도 들어갈 수 없게 소멸시킬 것. 어쩌면 더미에게는 자신이 가장 깔끔한 구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히 어깨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높은 현상금은 빈약한 정보의 보상이었던가. 제대로 된 시도조차 못한 채로 눈앞에서 타겟을 잃게 생겼다. 수송선을 묶어 두는 방법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거대한 날개를 꺾을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변덕스러운 사막의 날씨가 폭풍을 일으켜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1] 어쓰본: Earth-born,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력체.
[2] 모기니: 실험체 목적으로 조작된 인간 유전자를 가진 종
[3] 뉴로봇(Neuro-bot): 뉴런의 역할을 하는 로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