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 화석 3

by stdmtm

사막의 변덕은 이번에도 이플의 편이 아니었다. 행운은 늘 그녀를 외면했기에 막막한 상황이 새삼스럽지 않지만 어쨌든 의뢰는 해결해야 할 터. 수송기의 이륙까지 고작 몇 시간, 결국 거대한 함선으로 숨어드는 수밖에 없다. 이륙 후에 더미를 안고 뛰어내리던지 던져버리던지. 따지고 보면 더미의 소멸도 의뢰인이 건 선택지이기에 우선 목표물에 접근하기로 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흥분에 찬 함성, 몇 시간 뒤면 도시는 광대한 무법지대가 된다. 어수선한 어둠 속으로 달려 나간다. 살육을 향한 열망에 찬 눈동자들이 암흑 속에서 번쩍이며 시야를 방해하지만 곧 이플의 전력을 파악했는지 곧 뿔뿔이 흩어진다. 고지가 높은 곳으로 기어 올라간 순간, 전야제의 폭죽이 만발하다 마지막 불씨까지 사라졌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폐허가 된 고공 레일을 따라 주변을 살피고 돌아오자 자신의 소지품 앞, 누군가가 서성거리고 있다. 오래 비우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대충 던져 놓은 전투용 팔이 관심을 끈 모양이다.


"언볼트(unbolt)는 동체 패턴. 훔쳐 간들 무용지물일 텐데."


갑자기 등장한 팔 주인의 행색에 당황했는지 하얗게 질린 남자는 결백을 보여주려 되려 과장된 몸짓으로 물러섰다


“내 눈알을 팔 생각은 없어 보이고.”

“그, 그게.”

"해킹하려는 순간 폭발할 테고, "

“아니에요, 저는.”

“나도 궁금하니까 시험해 봐도 좋고.”


얼굴을 스캔하자 낮에 만난 남자의 얼굴과 높은 연관성을 띤다. 아들인가. 아까 그 남자는 과하게 노쇠했고 지금 이 남자는 지나치게 연약했다. 손자 일 수도 있다. 인구가 고여 있는 게 흔한 시대이니 얼마든지 벌어질 법한 일이다.


쭈뼛거리던 그는 늘어진 이플의 [1]실리카이드 팔을 내밀었다. 손을 뻗는 순간 에어 튜브가 재배치되며 요동치기 시작한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남자와 생면 부지의 남보다는 자신의 팔이 우선인 이플이 동시에 움켜쥔 덕에, 둘은 늘어진 인공 신체를 맞잡고 기묘한 인간적 교류를 하는 모양새였다.


“악수는 한 셈으로 칠까요?”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냥… 보고 싶었어요."


진동하던 기관이 멈춘다. 11분마다 가스로 이동하는 에어 튜브는 공중 토지권의 허점을 노린 불법 롯지로 이플과 같이 짧고 익명으로 머물러야 하는 자들에게는 좋은 쉼터였다. 물론 보안은 없다고 보는 게 맞기에 방금처럼 누구나 타인을 노릴 수 있었지만 그만큼 자기 몸 하나는 지킬 수 있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혹은 지킬 의지조차 없던가. 그래서 지금 이 자는 흥미롭다.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다. 대충 스캔하자 코어가 아닌 심장으로 이족 보행 중인 확실한 인간이기는 하네.

대충 던져둔 왼쪽 팔이 그의 흥미를 끈 모양이었다. 순간, 다시 요동치는 튜브와 소실된 신체의 환상통에 이플은 자신의 눈앞에 띄워진 빈 막대를 노려봤다.

있지도 않은 왼팔이 밤마다 불에 타는 듯한 통증에 시달려 선택한 해결책이었다. 고통까지 지표로 확인한다는 게 꺼림칙했지만 끝나지 않는 고통 앞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실제 한 적 없는 감각이기에 막대가 차오른 적은 없다. 텅 빈 기억처럼 공허한 빈칸을 응시하다 보면 깜빡깜빡 사라진 기억이 채워지는 한심한 착각에 빠지기에 차라리 고통이 차오르기를, 차오른다면 무엇이든 반가웠다. 자신의 기원이 남아있길 바라는 허황된 기대, 채워질 리 없는 반듯한 직사각형, 그렇지만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하는 통증. 이플을 괴롭히는 발 디딜 곳 없는 감상을 깨는 격한 진동이 울리며 현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인공 팔은 접합부는 이플의 몸에 닿자 빠르게 결합되었다. 생살을 파고드는 신경 브릿지의 이질적인 감각에 소름이 돋는다.


"굳이 신경 삽입 라인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어려 보이는 남자는 어울리지 않는 공용 경어를 사용했다. 실리카이드 신경의 장점은 이질감 없는 이식. 그런 걸 굳이 떼어 놓는 이유를 묻는 걸까. 답할 이유는 없지만 기대에 부합하고 싶게 만드는 눈빛을 가졌다. 동공 반사로 총격 모드를 실행하자 손의 형태는 순식간에 소형 [2]프릿으로 전환된다. [3]티알 모드 중에서는 최고라고 자부했다. 업그레이드된 프릿은 설정한 목표물을 추격해 시스템에 침투 후 코어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무력화시킨다. 대상을 파괴시키지 않으면서도 무너뜨리는 악명 높은 무기다. 인도적인 면에서도 더 바람직했고 편리하지만 여전히 조금 지루한 성능이었다.


이플도 한때는 아날로그 장비만으로 무장한 채 뛰어들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기도 했다. 전투 중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어 좋았고 살아남아 얻는 새 상흔이 흐릿한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해 준다 믿던 시기도 있었다. 어렴풋이 그 무엇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절망을 받아들이던 무렵, 고통의 근원인 왼쪽 팔을 신형 실리카이드 프릿으로 교체했다. 자신의 의지로는 처음 선택한 신체였다. 어설픈 악인에게 평안은 허용되지 않는지 희박한 확률의 이식 부작용에 오랫동안 시달렸다. 업보를 청산하겠다는 다짐도 그쯤이었다. 그렇다고 종교에 귀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살기 위해 버둥거리며 단 하나의 규칙을 세웠다. 마주 보지 않은 총구를 향해 공격하지 말자. 초식 동물을 일방적으로 사냥하지 않겠다는 별난 다짐을 하나 더 새겼다.

살벌한 변환 모드를 보아서 그런지 예의 바르지만 굳은 목소리의 남자는 곧 순한 얼굴에 어울리는 말간 말투와 목소리로 돌아왔다.


"인간에게는 소용없잖아요. 사냥하러 온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요."

“어차피 다른 걸 느끼지도 못할 텐데, 뭐 하러.”

“당신 같은 사람이 구경하게 해 주려고?”

"… …."

"방해가 안된다면 마저 끝내고 될까요."


전투용 스킨을 착용하는 이플의 눈앞에 뭔가가 불쑥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작은 천조각을 이어 붙인 손수건이다. 무엇에 쓰는 용도인지 몰라 빤히 바라보기만 하자 곧 자신의 팔 언저리에 시선이 닿았다. 결합 부위에 피가 맺히고 있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출혈이 생긴 모양이다. 굳이 남의 비싸 보이는 물건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지만 미동도 없는 남자의 손은 이플을 재촉하는 듯했다.


"고마워요."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사람을 머쓱하게 만들 줄 아는 남자였다. 낡았지만 소중해 보이는 조각 천에는 몇 방울의 피자국이 붉게 남았다. 빨아서 돌려준다는 말도 이상해 대충 내밀자 남자는 목례와 함께 돌아섰다.



•••

인기척에 선잠에서 깼다. 사각지대에서 대기하던 중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멀리서 그 남자가 쭈뼛대며 다가온다.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몰래 따라온 주제에 되려 본인이 공격받은 것 마냥 잔뜩 겁먹은 얼굴로 담배와 맞바꾼 출입증을 가리킨다.


“그 사람 죽었어요. 근데 태그가 활성화 됐길래.”

“여기는 어떻게 찾았지.”

“로그에 있어요."

"보안이 이렇게 허술한가."

"제가 잘 본 거예요."


결심이 선 듯 남자가 꺼낸 제안은 예상 밖이었다. 자신은 이 도시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송 작업에 관여할 수 있으니 몇 시간 정도 작업 시트에 구멍을 내어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뭘 하러 온 건지 알고."

"사냥도 안 하면서 캔져서스에 묵는다는 게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내 목적이 도둑질이다?"

"아닌가요?"


금세 부러질 듯한 목은 한 줌이었다.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주제에 눈을 또렷하게 맞춰온다

"더미를 가지러 온 거잖아요."


귀찮은 게 따라붙은 것이 분명해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위협조차 되지 않는 모양새에 공격할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다.


"수송선은 이틀 뒤에나 뜰 수 있을 거예요."

"뭘 믿고."

"말했잖아요. 도시에서 제가 모르는 건 없어요."

"대가는."

"없어요."

“그럴 리가 세상에 대가 없는 거래는 없거든.”


떼를 쓰는 냥 억지를 부리면서도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숨기려고 하지만 벌벌 떨고 있었다. 자기 발로 찾아와 묻지도 않은 거래를 먼저 제시 한 주제에 이플에게 고문이라도 당한 것 마냥 굴던 남자는 마지막까지 냉담한 대꾸에 웅얼거린다.


"유전자 샘플을 공유해 주세요."


신원 정보 등록은 용병에게 치명적이다. 용병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정보를 밝히는 건 곧 스스로를 표적 위에 세우는 꼴이다. 안락하고 포근한 리움의 보호를 거부하는 인간들이 왜 그렇게 많겠는가. 보호의 명목 아래 마지막 피 한 방울의 성분까지 밝혀야지만 속할 수 있는 안락함의 본질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플의 신체와 수트를 보았다면 대충 어떤 인간인지 알 텐데, 뻔뻔하게 들이미는 조건에 무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익명으로… 생체 지표만 보게 해 주세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도시 외부 사람의 것은 흔하지 않아서, 그래서."

"연구 자원 소속인가?"

"네. 아직은 발령을 기다리는 중이지만, 그래서 더 필요해요. 다음번까지 뽑히지 못하면…… 아시잖아요."

"… 대신 기록과 고유 패턴은 안돼."


자그맣게 펴지는 얼굴 근육과 기뻐하는 선량한 눈빛이 낯설지 않다. 익숙함은 가장 큰 불안 요소였다. 쉽게 침투하고 무너뜨리는, 실상은 살상무기보다 더 큰 위험 인자. 저 하찮은 인간의 손을 잡는 것 밖에 선택지가 없을까 고민했지만 멀리서 번져오는 새벽빛에 곧 그를 따라나섰다.


의심이 무색하게도 남자는 정말 소량의 혈액과 점막 타액만을 채취했다. 이게 뭘 할 수 있는 재료나 될까 싶을 정도의 미량의 샘플을 꼼꼼하게 살피는 그는 이플의 신체에 이식된 수많은 대체품의 존재는 능숙하게 무시했다. 불순물 없는 인간을 대하는 듯한 태도는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곧 얇은 피리처럼 보이는 관이 달린 유리병을 내밀었다.


"가볍게 불어 주세요."

"이걸?"

"사막 바깥에서 온 사람의 폐를 거친 공기는 어떤가 해서요."


그게 차이가 있을 수 있나. 의문점이 머리를 떠다녔지만 어차피 자신은 알 수 없는 영역이니 대충 몇 초간 입을 대고 말았다. 이렇게 아무렇게도 해도 되나 싶어 오히려 눈치를 보자 남자는 별말 없이 샘플을 받아 역시 소중하게 밀봉시킬 뿐이었다. 숨을 불어넣기 전에는 정말 비어 있었는지 미세하게 차오르며 겉면에 부착된 라벨의 색이 붉게 변했다.


"색은 뭘 의미하는 거지?

“…… 별 건 없어요. 그냥 차올랐다?”

“이산화 탄소가?”

“……그런 셈이죠.”


어떤 물음에도 남자의 대답은 느짓하다. 이제는 완전히 붉은빛이 도는 겉면을 한참 응시하다 뭔가를 끄적거린 그는 다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탈칵하는 둔탁한 걸쇠 소리와 크지 않은 용기의 푸른빛이 점화되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다 천천히 사라진다. 모든 일을 가능한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이플에게는 잠시의 공백도 고문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 그의 굼뜬 행동 하나하나는 지켜보기에 기꺼웠다.


"방금 결함 코드를 해킹했어요. 곧 긴급 운송로 점검을 할 거예요."


여전히 그의 손은 느리게 바빴고 시선은 손끝에만 머물렀다.


"컨테이너를 열어 둘게요. 저는 이제 타임 테이블을 해킹할 거구요. 도킹 스테이션 좌표도 손 볼 거예요. 엉망이 되겠죠."

"설명해도 못 알아들어."

"그러니까...… 목적을 이룰 때까지 충분히 혼자이실 거예요."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과 가냘픈 목소리가 위협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참, 제 이름은 일립이에요. 어쩌면 유용하실 테니까"


영원할 것 같은 한 뼘의 공백.


“기억해 주세요.”




[1] 실리카이드: 섬모로 신경전달물질을 전달하는 대체 신체. 실리에이트(ciliate, 섬모충)와 카테콜아민 (catecholamine, 신경전달물질)의 합성어

[2] 프릿: 동력체를 추적하는 기능이 탑재된 무기로 대체 신체 변형으로 무기화된다.

[3] 티알 모드: T-R, Track-Remorse (추적과 후회) 무기사 브랜드 이름을 딴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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