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저스 0.

by stdmtm

불꽃


축제


전야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너지는 단어가 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그날은 생일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충격으로 기절해 있기를 한참, 깨어난 후에는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다. 사고 날을 특정 짓기에는 너무 많은 폭발이 있었고, 가족의 사망일을 추적하기에도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아마 체스는 기억하고 있겠지만 물은 적도 먼저 알려주려 한 적도 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가족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세상에는 몰라도 되고 영원히 묻어도 되는 사실이 있다.


“가마우리. 이번 회의는 꼭 가야 해요.”

“스탑, 리마인드.”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라요. 가마우리가 실수하면 저도 죽잖아요.”

“넌 어차피 안 죽잖아.”

“그리고 이제 명령어는 안 먹혀요.”


체스는 예의 그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밖으로 나간다. 잔소리가 귀찮지만 그의 말은 틀린 적이 없다. 계속 미뤄왔지만 이제는 출정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정찰에 참가하기로 한 이상 이건 자신의 목숨만이 달린 문제가 아니다. 죽을 자리에 누우러 가는 꼴이지만 원하지 않더라도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


“죽을 궁리부터 하지 말구요, 쫌!”


속마음을 들은 냥 창고 밖에서 체스가 소리친다. 생각을 바꾼다. 나는 죽더라도 체스는 살아남아야 한다.




끼익

조용히 기어들어가려던 노력이 무색하게, 오래된 문이 긁히는 소리에 몇몇이 뒤를 돌아본다. 하필 무언가 설명하던 리더 격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 …사실상 불가능한 임무를 위해 떠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최대한 서로를 보살핍시다.”


오랜 기간을 들여 준비하던 날을 앞두고 있지만 공기는 차분했고 모두가 고요했다. 모두의 얼굴에는 각자의 결의와 선의가 어린 듯했다. 익숙한 얼굴도 있었고, 전혀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인간 열넷, 동력체 셋. 총 열일곱의 어쓰본(Earth-born)이 출정합니다.”


가마우리는 체스의 식별 코드는 어쓰본이 아니라 무기고 소속임을 정정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체스의 눈빛에서 ‘제발 모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을 읽고는 이내 관두었다.


“우선 목표는…… 가능한 오래, 멀리 갑시다.”




세상에 떠다니던 얼음 입자가 적당히 녹고, 바퀴와 인간의 피부가 녹지 않을 만큼의 태양열이 투과되는 시기. 그 짧은 시간 동안 남은 도시를 위해 끊겼을지도 모르는 길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길을 달리다 온몸을 부딪혀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그들.


과포화된 세상을 뒤로하고 새 땅과 다른 인간을 찾아 떠나는 자들.

우리는 그들을 레인저스라고 불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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