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저스 3.

by stdmtm


VES/D+011/방향 상실로 인한 거리 계산 불가

새벽에 소동이 있었습니다. 새벽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돌발상황이 있었다고, 아니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갑자기 캠프를 이탈했고, 찾았는데 그때부터 분위기가 안 좋아요. 계곡을 지나고부터는 실드 없이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안개가 심해졌고, 그래서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많이 뒤처진 것 같아요. 벌써 두 명이나 부상을 입었는데, 분명 해가 날 거라고 했는데 여전히 너무 어두워요.

사람을 저렇게 둬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자꾸 벌벌 떨고, 구하러 간다는 말만해서 묶어두긴 했지만. 자꾸 누굴 만났다는 것도 소름 끼치고. 돌아가고 싶어요. 로그아웃.


FOU/D+011/ Border, Sector 17

안개 현상을 슬러릭 베일, 정확한 명칭으로 정정합니다.
첫 번째 이탈, 세 번째 부상자입니다.
3번 레프트 윙의 추가 이탈로 인해 지연 발생. 생존자의 구조 신호를 포착했다는 주장에 따라 근방 500미터 내 수색 완료. 생존 신호 없음. 슬러릭 웨이브로 인한 탐지 오류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틀 내 수색 재개 고려 중으로 추가 식수 확보도 필요합니다. 가이드라인 설치 후 귀환을 고려해야 할 시점입니다.
대부분의 출정 인원의, 특히 연령대가 어린 대원들의 정신 건강이 염려됩니다. 로그아웃.


오랫동안 굳게 걸어 잠겼던 게이트가 활짝 열리고 도시 방어막 아래로 향하는 터널이 그들을 맞이했다. 깊고 어두운 땅 속, 가득 찬 습기 때문인지 속눈썹이 묵직하다. 축축한 공기와 한기에 소름이 돋았지만 묻어 나오는 결정이 없는 순수한 자연 안개였다. 반가운 마음에 보호구를 벗어던지고 숨을 들이 삼킨다.


“뭐 하는 거야?”

“괜찮아. 진짜 안개야.”

“조심해서 나쁠 거 없어.”


입을 크게 벌려 숨을 한 움큼씩 들이마시는 모습에 55가 질색하며 황급히 실드를 올려준다 미우나 고우나 이제부터 동료라는 걸까. 55의 거리감이 부쩍 가까워졌다. 혀 끝에 살며시 닿았던 물을 머금은 공기가 달다.


Zone 1. 평소라면 접근할 수 없는 통제 구역의 시작. 슬슬 긴장하기 시작하던 차 머리 위에서 갑자기 들리는 굉음에 가마우리는 헛숨을 들이켰다. 정화필터에 이렇게 가까이 오기는 처음이다. 오래된 장치가 마모되어 충돌하는 마찰에 신경이 곤두선다. 뒷목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에 걸음을 빨리해 보지만 열대로 선 사람들은 속도를 낼 생각이 없어 자신만 종종걸음으로 동동거릴 뿐이었다. 이 사람들 전부다 안전 불감증이다, 가능 한 전부 멀리해야지. 죽음의 각오와 곱게 죽고 싶은 바람은 제대로 맞물리지 못한 거대한 철근 덩어리들처럼 멈추지 않고 충돌했다.

할 일을 다한 듯 광폭한 소리가 서서히 멎고 저 멀리서 희미하게 출구가 보인다. 빛의 결핍과 희뿌연 질감 중 더 절망적인 암흑은 어느 쪽일까. 희한하게 어둠의 결 사이에도 경계가 있었다. 조용히 뒤따르는 시위대가 고마울 지경이다. 수상쩍고 불안한 이 순간이 여정의 시작이구나. 엄습하는 두려움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숨기려 주먹을 꼭 쥐었다. 긴긴 터널의 끝, 마침내 도시 밖의 마지막 경계선에 도달했다.


물리적인 제약 하나 없지만 지난 13년 동안 누구도 넘고자 하지 않았던 경계. 저 땅을 디딘 자는 다시 도시로 돌아오기 힘들어진다.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이들이 한 발짝 남겨두고 발을 멈추고 출정팀은 너무도 쉽게 그 선을 넘었다. 연이어 곧 들려오는 스산한 노래가 울음처럼 들려온다.


이렇게 떠나서 돌아오지 말아요. 새로운 날은 고통을 다 잊은 후가 될 테니. 그때는 우리가 만날 거예요.


몇몇이 불안한 듯 동요하자 앞서던 지휘부가 멈춰 서 그들을 저지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주춤거린다.


“딱히 위험해 보이지도 않는데, 그냥 가면 안 돼요?”

"… 그거 알아? 레인저스 출정은 완전한 자유의사로 이루어져."

"알아요."

"그 말은 곧 막아 볼 노력이야 해보겠다만…, 누군가가 마지막 마음을 바꾼다고 해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거겠지."

“설마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겠어요. 사람들 이목도 있을 텐데.”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55가 자꾸 불쑥불쑥 끼어든다. 머리 하나는 더의 목소리가 위에서 들리자 슬그머니 약이 오른다. 진위 여부와 별개로 그가 하는 말은 늘 맞는 말 같아 트집을 잡고 고쳐주고 싶은 오기가 든다.


"체스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거였어. 믿지도 않겠지만 피차 그쪽을 이해시킬 생각도 없고."

"나도 안 궁금하거든."


체스의 한숨 소리까지. 여기서 시끄러운 건 늬들 둘 뿐이라고 달나가 웃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고 투닥거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실제 마주한 죽음과 각오 사이의 괴리감을 메꿔주었다.


적막을 깨며 들려오는 정적인 음률에 마침표를 찍듯, 반응할 새도 없이 누군가 대열을 이탈했고, 55가 곧 저것 보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모두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누구도 구하려고 하지 마, 다 죽어도 돼. 새로운 땅도 필요 없어. 너만은 살아 돌아와.”


조용히 속삭이는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말, 꿈에서 이런 적이 있었던가. 어휴, 너는 끝까지 살아야겠다. 다시 돌아온 이의 어깨동무를 한 55가 너스레를 떨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때는 우리가 만날 거예요.



§

달나의 지휘 아래 신형 정찰기가 떠오른다. 한 팀이라고 해도 겨우 안면을 튼 사람들이 삼삼 오오 모여 주변 공기를 우그러트리며 천천히 떠오르는 정찰기를 바라보며 저마다 마음을 졸였다. 뼈아픈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새로 고안된 디자인은 매끄러운 구형이었다. 지면에서 서서히 멀어지던 정찰기는 대기를 흡입하고 내뿜으며 부유하 듯 층층이 올라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습지. 슬러릭스가 아니라면 말도 안 되는 이론이었을 거야.”

“막힐 확률은요?"

“내부 온도를 한계까지 높였어. 지열 지대에서 힌트를 얻었지. 쿨링 시스템이 없어서 오래 못 떠있지만 이게 최선이니깐.”


달나가 패드에 눈을 고정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다음은 네 차례지? 꼬마 천재?”

“둘 다 틀렸어요. 꼬마도 아니고 천재도 아니에요.”

“그래, 해맑기는 어려운 세상이긴 해. 그래도 너 아니었으면 이번 해 안에 출정은 불가능했을 거야. 고마워.”

“… 뭐가 고마워요. 그거 때문에 사람들이 죽으러 가는 건데.”


인류의 희망이고 뭐고 다 없애버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따라왔잖아. 책임감은 칭찬할만해.”


달나는 가마우리의 계약을 모른다. 애초에 환원해야 할 유산이었지만 협박용으로 써야 했기에 부모님과 형제들이 가지고 있던, 연구소와 재난 대응팀에 소속된 가족들의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숨겼다. 인간이 아닌 이상 언제 끌려가서 도시의 재건을 위한 재료가 될지 모르는 체스를 명분 상으로라도 벗어나게 해야 했다. 특히 자신처럼 미성년 소유주가 유일할 경우 분해 후 재배치할게 뻔했다. 모든 게 파괴된 세상은 퍼즐처럼 구멍을 막기에 급급했기에 언제 강제 회수가 내려질지 몰라 충분히 슬퍼하지도 못한 채 마지막 남은 가족마저 잃을까 매일매일 두려움에 떨었다. 출신, 소속 넘버를 억지로 바꿔서라도 최소한의 방어막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불안해서 못 견딜 것 같았다. 모든 정보는 체스 안에만 남아 있으며 여차하면 같이 폭발해 버리겠다는 미친 소리를 하던 꼬마와 언쟁을 이어갈 만큼 여유롭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솔직히 억지였어요, 부끄럽지만 또 다시 잃을 수는 없었어요,라고 털어놓는 대신 아직도 떠 있을 태양 빛에 정찰기의 표면이 디스코볼처럼 반짝인다고 하자 달나가 드디어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았다며 큰 소리로 웃는다. 정찰기는 혼탁한 잿빛 속에서 빛나는 태양 같았다.


임무를 마친 디스코볼이 천천히 하강한다. 꾸물거리는 슬러릭 아이스들이 완충제가 된 덕에 안정적인 착지였다.


이번에는 가마우리 차례였다. 트랙 센서가 장착된 [1]루머로 정확한 주행 각도와 위치에 따른 열분배 시스템 계산값을 입력한다. 기본 돌파 대형은 [2]웨지 전술을 따르기로 했다. 빠른 속도로 달리기 위해서는 슬러릭스의 저항을 분산하고 결정을 녹여 빠르게 제거하는게 광건이었다. 질감이 가득 찬 공기를 밀어내며 달리기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지 않았기에 뒤집힌 V자 형태로 전방을 뚫고 날개를 펼치며 열방사기로 슬러릭스를 녹이고 튕겨내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게 달려간다고 해도 갑자기 앞에서 솟아 오른 슬러릭 베일이나 포그 폴(Fog fall)이 덥친다면 그대로 충돌하겠지만 적어도 정찰로 확인한 지점까지는 이동할 수 있기를 희망을 품어본다.

위험 부담이 제일 큰 꼭짓점은 출정의 리더인 L.T가 맡기로 했다. 원래는 고작 열여덜의 인원 중 셋이나 차지하는 지휘부가 번갈아가며 맡는 게 규칙이었지만 L.T는 자신이 있는 한 돌파구 역은 자신의 몫이라고 못을 박았다. 전우애가 생기는 걸 방지 하기 위해 최소한의 사전 교류만 하자던 냉정한 판단도 그의 아이디어였지만 리더로서의 자질만은 높은 사람이다. 신호에 따라 거대한 컨테이너에 보관 되었던 마지막 정비를 마친 각자의 루머와 보급품 배급이 시작되었다.



[1] Roumer(route-mover)시스템에서 입력한 루트에 따라 세밀하게 제어되며 이동하는 탈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바이크라고 부른다.

[2] 웨지 전술(wedge formation): 선두를 꼭짓점으로 하여 V형으로 진입하는 전투 대형.



월요일 연재
이전 13화레인저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