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엔진 예열 소리와 헤드라이터의 불빛이 어둠을 밝힌다. 요동 치는 심장 박동을 체스에게 들킬까 몸을 띄우자 꽉 잡으라며 자세를 고정시켰다. 역시 출정복과 재킷을 겹겹이 껴 입은 그의 등의 감촉이 낯설지 않다. 가마우리의 심장 소리보다 더 큰 루머의 고동이 하나로 합쳐져 곧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는, 잿빛 암흑의 슬러릭스 속으로 질주했다. 그간 걱정과 불안이 모두 기우였던 듯 이제 한 형태로 링크된 열 일곱대의 루머는 대형을 유지하며 순탄하게 궤도에 올랐다. 순식간에 [1]T_slur를 넘어서는 속도로 질주하자 파쇄된 슬러릭스가 쉴 새 없이 반짝거렸고 부딪히고 깨진 결정이 유리 조각이 나부끼듯 깜빡였다. 산란하는 빛무리와 시원한 해방감,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은 출발 전의 불쾌한 감정들을 조금 씻겨져 가던 순간.
속도계가 [2]플럭스 존(Flux Zone)에 안착하자마자 제동 된 제어 장치에 동시에 급정거했다. 안간힘을 다해 온몸의 근육으로 관성에 저항했지만 대부분 버티지 못하고 튕겨나가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체스의 등에 충돌하는 걸로 그친 가마우리도 충격에 눈앞이 점멸되었다 돌아왔을 때에는,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체스가 55와 함께 달려 나갔다. 제일 앞에서 선두로 저항을 가르던 L.T의 주변에서, 원래라면 그의 팔이 있었던 그의 왼쪽 어귀에 붉은 스머지가 피어오른다.
“링크 해제, 전원 대피.”
L.T가 절규한다. 붉게 물든 짙은 대기가 일렁이고 마스크와 기어를 뚫고 코 안 점막까지 침범하는 지독한 피냄새.
“다시 한번 반복한다, 전원 대피, 안전 확.”
명령을 마무리 짓지도 못한 채 L.T가 발작을 일으킨다. 쇼크로 몸부림치는 그를 껴 앉고 너덜 너덜하게 팔이 뜯겨져 나간 자리를 55가 급히 레이저로 지혈했다. 성긴 공기에 달라붙어 세상을 붉게 물들여 나가는 인간의 혈액이 석류알처럼 영글어 간다.
“레이저는 위험 해.” 그가 정신을 잃기 전에 남긴 말이었다. 체스의 옷깃에 닿은 검붉은 점액질들이 점점 더 크게 번진다. 55의 밀빛 머리카락이 검게 변한다.
“마취가 필요합니다, 빨리!.”
“안전지대 확보, 흩어져!”
충격을 가장 가까이에서 흡수한 좌측 통제사가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 개인의 안전을 확보하고 우선 스스로 지켜내는 것, 생존하지 못하면 자기 목숨을 말할 것도 없고 결국 동료의 짐이 된다. 구조 업무가 우선인 체스와 55를 제외한 모두가 링크를 끊고 각자의 루머로 위치했다. 각오는 했지만 누군가를 남겨두고 움직이는 순간은 더 빨리 찾아왔다. 다시 한번 다짐한다. 그에게 짐이 될 수 없다. 그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을 테다.
“가마우리, 내 뒤에 타.”
달나 덕에 체스를 위한 루머를 남겨 둘 수 있었다. 달나 뒤에 매달리자 엉덩이가 채 닿기도 전에 출력을 높여 달려 나간다. 서서히 굳고 있는 공기 층에 갇히기 전에 벗어나야 한다. 실드와 기어, 핸들을 잡은 달나의 손, 저항을 맞는 모든 부위 위 얇은 막이 팽창하고 부스러져 흩날린다. 틈을 파고든 날카로운 파편이 날카롭게 피부에 깊게 박혀 생체기를 내 온몸이 가렵고 열이 오른다.
가마우리는 능숙하게 활성탄을 쏘아 길을 텄다. 슬러릭스를 흡수, 압축할 때에는 주변 온도가 급속히 변화하가 때문에 격리된 공간 없이 사용하는 건 위험하지만 잡아 먹히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는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재난 속에서, 맞는 길로 가고 있다고 믿으며 집중한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슬러릭 베일의 시작점인 씨드를 파괴했다. 눈도 뜰 수 없는 상황에서 이동 경로로 뻗치는 재앙을 파쇄해 길을 트는 그들 뒤로 둘셋의 루머가 제대로 따라붙은 모양이다. 짧은 윙이지만 다시 대열을 형성해 속도를 높인다.
“벗어난 거 같아?”
“모르겠어요.”
“레이더에 잡히는 건 없어?”
“우선 직진 제어를 넣어요. 위성 기록으로 봤을 때 여기서 다음 보더까지 일직선에 있어요.”
그들을 가둘 것처럼 굳어가던 대기가 다시 끈적이고 부유하며 엉기는 입자로 변한다. 여전히 공기는 흐르지 않았지만 최악을 벗어났기에 불투명한 시야를 헤치며 질주할 뿐이다. 그때 루머의 [3]등자에서 미세하게 다른 열기가 느껴졌다.
“달나 멈춰요!”
가마우리의 다급한 외침에 달나가 기어를 변속했지만 미처 [4]이너샤 락 (Inertia Lock)을 걸지 못한 급정거에 실드가 충격으로 순식간에 부서졌다. 엔진에서 발생한 플레어와 푸른빛의 전류가 번쩍인다. 가마우리가 급히 엔진을 분리해 던지고는 달나를 부축해 반대로 달렸지만 감속에 실패한 다른 루머에서 엉겨 붙은 플레어가 폭발과 함께 달나를 덮쳤다. 순식간에 번지는 화염을 잡기 위해 연소 억제 스프레이와 온도 저항기가 소용없이 불꽃과 함께 달라붙은 끈적이는 슬러릭스가 기어이 달나를 집어삼킨다.
§
“나 데려갈 생각하지 말고 우선 달려. 그러고 나서 다시 찾으러 와.”
무시한 채 재킷에 세이프 스크랩(safe strap)을 달나의 것과 단단히 묶었다.
“55말이 맞네.”
“뭐라고 했는데요.”
“고집은 도시에서 네가 최고래.”
“아니라고는 못하겠어요.”
“걱정돼?”
“…그것도 아니라고는 못하겠어요.”
“괜찮아. 둘 다 보통이 아니잖아.”
본인의 고통이 더 크면서 달나가 가마우리를 위로하려 애쓴다. 탐스럽던 머리카락까지 태운 열기에 보호 기어까지 잃었다. 간신히 벗어날 때쯤에 슬러릭스 베일의 결정화가 끝나가고 있었다. 완전히 고체가 된 슬러릭스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된 적 없지만, 아마 갇히거나 함께 굳거나, 혹은 압사하거나. 거기까지 생각한 가마우리는 고개를 젔는다. 그렇게 단순한 상변화가 통하는 물질이 아니다. 적어도 포기는 하지 말자.
“이렇게 빨리, 실패하게 될 줄 몰랐어요.”
“맞아. 최소한 보더 라인까지는 갈 줄 알았지.”
여전히 흐를 줄 모르고 고여있는 공기에 방향 감각이 더욱 무뎌진다. 입을 막아도 어느 순간부터 미끄러운 슬러릭스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이 가빠지고 구역질이 난다. 걸음을 내딛어도 땅의 경계를 확인할 길 없었고, 발소리 대신 진동하고 분산되고 다시 뭉치는 입자의 흐름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겨우 확인할 수밖에 없다.
고요 속 침묵이 주변을 질식시킨다. 이 정도의 짙은 슬러릭스 내라면 수신기도 레이더도 작동하지 않기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오감에 의지해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비록 그중 후각, 촉각, 그리고 시각마저 무용지물이었지만. 가마우리는 한걸음이라도 더 걸으려 노력하며 다음을 생각하려 애썼다. 수 백번, 아니 수 천 번도 더 시물레이션 했던 조난 상황이지만 그 수천 번 모두 길을 잃었다. 달나의 몸이 점점 더 굳어 무거워진다. 이렇게 움직일수록 점성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마냥 걸어갈 수도 멈출 수도 없다.
그때 멀리서 아지랑이처럼 번지는 이질적인 질감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빛과 냉기의 결합 뒤에서 누군가가 플라즈마 스틱을 흔들고 있다. 헛것을 본 걸까. 다가가도 가까워지지 않는 빛에 절망해 주저앉고만 그때, 끈적끈적한 경계 너머에서 누군가 삼켜진 그들의 팔을 잡고 당긴다. 같은 공간이지만 결코 통하지 않던 죽음의 문턱에서 그들을 뽑아냈다.
§
“한때 빛났던 태양과 깜깜한 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아요. 세상 어디서나 숨을 쉴 수 있고 질감이 없는 공기가 존재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어쩌면 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잠결에 누군가가 기록하는 로그가 들렸다.
“그 시대에도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었겠죠. 슬러릭스는 자연일까요. 그것도 지구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아직 채 돌아오지 않은 정신에도 로그의 주인이 꽤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잘 모르겠어요. 정말로 잘 모르겠어요.”
맞아.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너무 쉽게 깨져서 어이없는 희망이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준비하지도 않았을 텐데.
“정신이 좀 들어요? 물 마실 수 있겠어요?”
끙끙거리는 가마우리의 입에 물기를 머금은 거즈를 물렸다. 코가 찡하며 얼굴의 감각이 돌아온다.
“우선 일으킬게요. 힘들어도 일어날 수 있으면 앉아야 해요. 바닥보다는 산소가 더 맑아요.”
"잠깐 몸에 손을 댈게요. 저 잡을 수 있겠어요?"
마지막에 합류한 소년 틴과 오른쪽 마지막 꼬리 위치의 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려다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동굴 같아요. 깊이 들어오니까 더 이상 슬러릭스가 따라오지 못하더라고요.”
“우리도 알고 들어온 건 아니네.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진입해 있더군. 운이 좋았어.”
뾰족하게 매달린 종유석에서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낙하한다. 충분히 젖은 거즈로 달나의 상처를 살피던, 이번 출정의 가장 연장자라던 운무가 말을 잇는다.
“자네 둘 뿐인가?”
아직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최대 열다섯의 실종, 부상자가 있다는 말인데.”
“대피 중에 둘은 구하지 못했어요. 아마 즉사했을 겁니다.”
미안해요, 구할 수 없었어요. 정신을 차린 달나가 중얼거린다. 누구를 위한 누구를 향한 사과일까. 달나의 왼쪽 머리는 다 타서 없어졌고 눈두덩이와 관자놀이의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었다. 응급처치를 했지만 당장 걸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천연 동굴은 형태 그대로 보존되었는지 오염의 징후가 없었다. 돌바닥의 냉기 덕에 달아올랐던 몸이 식는다. 인간의 몸도 별게 없다. 차가운 돌 위에 앉으면 식어가고 플레어가 달라붙으면 연소한다. [5]37조 개의 세포와 70여 개의 장기로 정교하게 이루어진 영장류도 이토록 쉽게 죽는데 한낮 인공 혈액의 성분은 왜 점점 더 번영하고만 있는가. 무력함에 익숙하다고 자신했는데.
“어쩔 수 없죠. 찾으러 가요.”
“어떻게요?”
“그걸 지금부터 생각합시다.” 달나가 단호하게 답하자 운무를 제외 한 둘도 고개를 끄덕인다. 답이 없는 질문은 없다. 가마우리의 부모님이 늘 주고받던 농담이다. 막막한 일들은 으레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조금씩 덜어지고 사라져 있기도 했다. 대기가 고갈된 세상에서도 숨을 쉬고자 하면 늘 삼킬 마지막 한주먹의 공기는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려 다시 애쓴다. 하다못해 자신의 루머라도 있다면.
“달나. 디스코볼 아직 링크 돼요?”
VES/D+15/위치 정보 없음
반 이상을 잃었습니다. 더 이상 이동할 수 없습니다. 다섯의 어쓰본 중 셋을 해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 둘도 희생되었습니다. 무섭지 않다는 거짓말을 할 만큼 저는 강하지 못해요. 그렇지만 다음 이동 경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측정상의 수치로는 다섯의 동력체 기준으로 약 8시간 후 산소가 고갈됩니다. 대기의 활성 산소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슬러릭스 입자와 활발하게 결합하며 결정화가 가속되는 걸로 보입니다. 멈춰서 질식하거나 다음 죽음을 맞이하러 이동하거나.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1] Tslr, Temperature slurrice, 슬러릭 아이스가 물리적으로 분해 가능한 묽은 상으로 전이하는 임계 온도. 외부 압력과 열로 임계점을 넘겨 이동이 가능하므로 루머의 속도와 열방출기를 이용해 돌파할 수 있다.
[2] Flux Zone, 대기 밀도를 뚫고 통과할 수 있는 속도 구간을 의미.
[3] 등자(鐙子), 원래는 말을 탈 때 쓰던 발걸이를 이르는 명칭으로 루머의 감응 인터페이스.
[4] 이너샤 락 (Inertia lock), 관성 제동 장치. 빠른 속도에서 정지할 때에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
[5] Bianconi et al., 2013; Gray’s Anatomy,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