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저스 6.

by stdmtm



“다가오지 마세요.”

영원히 굳어있을 것만 같은 동굴 안의 공기를, 무겁게 대치하던 침묵을 깬다.


“가세요. 못 본 걸로 치면 되잖아요. 당신들은 다시 돌아온 적 없는 거예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순간을 셀 수 없이 그려 본 듯 단호한 말투다. 달나가, 가마우리가, 그리고 생사를 알 수 없이 헤매고 있을 바깥의 또 다른 누군가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반복해서 그려봤을 레인저스의 흥망처럼, 저 아이도 노인의 목을 벨 순간만을 오랫동안 되풀이하며 그려왔나 보다.

헤아릴 길 없는 깊은 분노가 흔한 세상이지만 피를 묻혀가며 직접 손을 더럽히는 행위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달나는 믿어왔다. 그렇기에 눈앞에서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적어도 인간이 인간의 삶을 꺾기까지 여정은, 한 발짝뿐이지만 쉬이 넘지 못했던 도시의 경계처럼 존재한다해도 희미하게 닿을 일 없다 여겼다. 칼을 쥐기에는 어린 나이다. 달나 역시 어린 나이에 생사를 넘나들었지만 타인의 불행을 당연히 여길 생각은 없었다. 여전히 틴은 어리고 날붙이를 쥐고 휘두르기에 어리숙하다. 아니나 다를까, 가까이서 보니 운무의 것 인 줄로만 알았던 선혈이 틴의 상처에서도 흐르고 있다. 짧은 시간 사이에 오간 격한 몸싸움에 소년이 흘린 피도 적지 않은 듯 틴의 입술이 파랗게 떨려온다.

달나가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자 틴이 재빨리 몸을 틀어 달나를 노려본다. 이대로라면 대치한 둘 사이의 멀지 않은 거리는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을 터였다.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을 볼 수 없는 세상에는 이토록 무력한 것들만 존재할까. 다정하게만 보이던 달나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틴을 응시하는 동안, 벌벌 떨면서도 주변을 경계하는 틴의 몸부림을 보며 가마우리는 무력한 자신에게, 그리고 답 없는 질문만을 던져주는 세상에게 구역질이 났다. 치명상을 입은 노인과 아군을 공격한 소년, 두고 갈 수도 대치할 수도 없다. 가마우리가 셀 수 없이 상상했던 레인저스의 여정에 이 경우의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생존자를 구할 확률은 점점 떨어진다. 고립된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바깥의 누군가가 생사를 다투고 있다면. 슬러릭스에 갇혀 체스가 으스러진다면. 체스가 죽는다면, 체스의 웃음이 사라진다면, 체스의 기억마저 사라진 세상에 남겨진다면.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가마우리가 한 발짝을 떼자 틴이 자세를 고쳐 취한다. 제대로 훈련받은 정갈한 몸짓과 겁에 질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소년의 얼굴에 가마우리는 오래 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울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하루가 목표이던 과거의 자신, 그리고 여전히 울고 있는 틴. 그 시간을 거친 어린아이들은 전부 이렇게 고장 난 채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을까. 그걸 끊어내지 위한 각오로 이 길에 올랐지만 자신의 무력함을 되새길 뿐이었다. 언젠가 체스의 라이브러리에서 보았던 과거의 수많은 전쟁 기록을 떠올린다. 전쟁의 참혹함은 안타까운 일이라던 체스에게 적어도 인간끼리 치고 박을 여유가 없는 세상에 사는 건 다행이라며 웃어넘겼는데 겪어보니 알 것 같았다. 여전히 체스가 말한 전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늘 이렇게 한 발짝 늦게 무언가를 깨닫는 자신이 이번에는 무엇을 놓친 걸까. 가마우리는 자책한다.


“왜 돌아왔어요. 이미 늦었을지도 몰라요.”

“… 그러게나 말이야. 부탁할게. 여기서 허무하게 끝내고 싶지 않아.”


빈 손을 보이며 공격 의사가 없음을 확인시키며 천천히 움직이는 가마우리의 발끝으로 틴이 시선을 빼앗긴 사이 운무가 뛰어오른다. 짐승 같은 움직임으로 목의 상처를 쥐어짜듯 움켜쥔 채로 날붙이를 휘두르며 달려든 곳은 틴이 아닌 휴의 발치였다. 흉흉하게 악의가 깃든 노인의 눈동자에서 출발 전 자신의 추억을 나누며 친절을 베풀던 인간성 따위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을 공격할 수 없는 어쓰본의 제약에 묶여있기 때문일까. 죽어가는 운무를 확인하고부터는 미련이 없어 보이는 휴는 미동도 없이 멈춰 있었고, 가마우리의 총구 끝에서 활성탄이 발사된다. 순간 번쩍번쩍 빛나던 도시의 지겨운 냉착탄 캠페인이 떠올랐다. '반드시 격리된 공간을 확보하세요. 안전하게 사용하는 냉착탄, 당신을 보호하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발사된 냉착탄이 인간에게 들러붙은 사고가빈번히 일어나다가 현장 사진에 딱 한번 유출된 이후로 확연히 줄어들었다. 같은 메커니즘인 활성탄도 비슷하게 작용한다면... 도저히 그를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운무가 기괴하게 굳어간다. 손아귀로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다른 한쪽 손에는 자루가 분리된 나이프가 손을 파고들어 반쯤 잘려버린 손가락들이 덜렁거린다. 활성탄은 들러붙은 옆구리부터 수축하며 노인을 더 작게 만들었고, 급격히 떨어진 온도는 균열이 되어 날카롭게 뻗어나갔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가마우리의 공포도 뻗어나간다. 자신이 사람에게 총구를 겨눴다. 달나가 뒤돌아서 속을 게워내는 소리가 아득하다. 전시 상황에는 예외가 있다던데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다른 대원들이 안다면 자신을 경멸할까. 그런데 우리는 무엇과 대치하고 있었던 거지. 고개를 돌리자 잔뜩 움크린 달나 너머로 자라나는 석주가 보였다. 허여멀건 농도 짙은 탄산칼슘은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는 듯 땅에 처박혀 자라난다. 계속해서 게워내는 달나의 상처에서 핏방울이 천천히 떨어지고 새하얀 지면에 흔적도 없이 흡수된다. 틴이 주저앉으며 중얼거리는 소리에 텅 빈 공간이 다시 한번 울렸다.


“죽어도 싼 놈이었어요.. 헴노바 생산라인에 어쓰본을 던져버린 놈이니까. 진작에 죽었어야 했어.”



•••

슬러릭스는 더 이상 그들을 공격하지도 주변을 압박해 오지 않았다. 마침내 안정권에 들어섰는지 앞서 달리는 55의 루머 주변으로 살벌하게 갈려 나가던 파편이 조금씩 잠잠해진다. 자신들을 둘러싼 잿빛의 공기는 더 이상 움직이지도 물체를 파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요하게, 조금의 불균등함도 느낄 수 없이 평온한 기류에 제법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음에도 저항조차 느끼기 힘들었다.

조금 숨을 돌리자 가마우리와 달나 일행을 향한 걱정이 밀려온다. 아마 그들도 똑같은 심정으로 살아남아 버티고 있을 테니 얼른 찾아내자, 우선 찾고 나서 임무의 다음을 생각하기로 그들 또한 버티며 자신들을 찾고 있을 테니 서로를 향한 믿음을 위안으로 삼는다.

가마우리는 자신의 작은 소유주임을 차치하고도 꽤 똑똑한 아이였다. 아이로서의 자질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건 그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자신이 어쓰본의 본질을 잃은 지 오래인 것처럼 이런 세상에서 아이답기를 원하는 것이야 말로 폭력이었다.

애초에 가마우리의 유전자 자체에 동심과 관련된 실마리가 남아있을 지도 의문이다. 최초 소유주를 오랫동안 지켜본 체스이기에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다. 체스의 이전 소유주, 그러니까 가마우리의 엄마는 체스에게 패밀리 코어를 입력 후 한 가지를 부탁했다. 자신보다 더 인간답게 행동해 줄 것. 나중에나 한 사실이지만 조기 발견과 빠른 대처로 더 이상의 진행은 막았지만 그녀는 꽤 높은 지수의 감정 결여 상태였다. 그래도 명령이나 세뇌 코드가 아닌 부탁이라는 방식을 선택했기에 체스는 아이의 인간성에 희망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가마우리는 더뎠다. 어린 나이에 말도 안 되는 협박을 할 만큼 머리는 비상했지만 가끔 그의 뇌는 어딘가 어긋난 듯 조금씩 삐걱거렸다. 자신을 향한 맹목적인 애착을 방관했다. 우선 감정의 둑을 성실하게 쌓아 올린 다음, 언젠가 애정의 대상을 슬쩍 바꿔 친 할 요행을 바라는 체스도 보호자 실격이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오히려 점 점 더 1대 소유주를 닮아가는 체스 스스로를 발견할 때마다 그의 노드의 가마우리 카테고리 아래 체크 리스트가 늘어갔다. 가마우리의 체스를 향한 애정은 결국 체스가 살아남아야 할 세상을 향한 애정으로 확장되었다.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 앞장서던 55의 속도가 천천히 잦아들었다.

“위치 파악할 수 있어?”

주어가 없지만 55와 체스, 둘 다 원하는 걸 알고 있다.

“추적장치는 무용지물이야. 하지만.”

슬러릭 아이스가 남긴 파동을 계산해서 방향 정도는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미세한 흐름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변화를 감지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른다. 그리고 그들에게 신호를 보낸다면, 또 그들이 자신들을 찾고자 한다면 슬러릭 베일에 어딘가로 튕겨져 나간 디스코볼을 찾아내 링크를 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달나 외에 정찰기 링크는 지휘부의 코드를 필요로 한다. 다행히 셋 중 둘을 데리고 탈출했지만 치명상을 입은 그들이 쉽게 깨어날 수 있을까. 체스는 그들이 승인 절차를 위해 따로 물리적으로 구현해 둔 장치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VES/D+17/보더 라인
최초 폭발이 잦아들 때쯤 세상의 슬로건이 뭐였는지 아세요? Revival the life, 삶의 재생이에요. 꽤 많은 사람들이 소행성이 떨어져서 공룡이 멸망한 것처럼 지구가 한 번 리셋될 거라고 했고... 아마 공룡처럼 몸짓이 큰 인간부터 사라질 거랬죠. 몸집이 큰 인간이라... 그러니까 결국 그것도 내 손 더럽히지 누군가를 멸망시키고 싶은 추잡한 욕망의 반영이었을 뿐이라는 거죠.
말이 씨가 된다고... 공룡만 없었지 소행성 충돌과 다를 바 없잖아요. 대기가 뒤덮히고 태양열은 사라졌고. 성분이 변한 공기는 모든 걸 무너뜨렸으니까. 잡아먹힌 거예요. 우리 모두 다.
불공평해요. 갑자기 맞닥뜨리는 죽음과 천천히 남겨지는 죽음은 무게가 달라요. 살아남은 게 지옥 같다고 해도 이렇게 한가운데 떨어져서 죽음을 기다리는 건... 불공평해요.

나는 이걸 보는 당신들에게 희망을 줄 생각이 없어요.
슬러릭스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거예요. 그것이 스스로 사라지기를 선택하지 않는 이상, 인간이 매듭지을 수 있는 재앙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걸 잃은 내 마음을 느껴보길 바라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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