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 다름에서 찾는 정체성
평범해 보이는 삶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그리고 보통에 도달하고 중심 잡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치기 어린 한때 오직 남과 다르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사춘기 시절, 나는 유행 가요에 열광하는 또래들과 달라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비틀스(The Beatles)나 아바(ABBA)의 음악처럼 부모님 세대가 즐겨 듣던 올드팝을 듣거나 신인 싱어송라이터의 시티팝을 즐겼다. 한편 대중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의 팬을 자처하며 우상시하는 또래 친구들의 행동을 업수이 여기곤 했다. (지금은 다르다. 나는 수년째 BTS에 울고 웃는 아미로 활동 중이다.)
문화를 향유함에 있어서 나는 늘 마이너 쪽을 택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신인 아티스트나 제3세계 영화인들을 좋아했다. '난 좀 달라'하는 우쭐한 마음 탓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주변 사람들과 소소한 취향에 대해 대화 나눌 수 없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나처럼 비주류 취향을 지닌 몇몇 친구를 연합 동아리나 온라인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간혹 있었다. 우리는 프랑스 대사관이나 영화 동호회에서 국내 미개봉작을 보고, 인디 잡지를 구독하고, 재즈와 시부야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우리들은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 냉소적인 실존주의자였다.
그런 친구들은 나와 생활 반경이 달랐기에 나는 여전히 외로웠다. 하지만 외로움이 항상 슬픔의 감정은 아니다. 나만 알고 있는 무엇의, 그 고독함을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회인이 되고 시간이 한참 지나면서 깨달았다. 그 시절 나와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을. 다만 내가 찾아내지 못했을 뿐이지 조금 덜 알려진 문화를 쫒는 무리는 늘 어디에나 있었다. 나를 외롭게 했던 '남과 다른 취향'은 어쩌면 달라 보이고 싶어 했던 그 시절 사람들의 전형적인 선택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는 독특하고 멋져 보이는 누군가를 따라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나는 오직 주류문화로부터 떨어져 '남과 다른 무엇'에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문화 이탈자였을까?
힙스터, 힙스터리즘
힙스터(hipster)의 어원은 '무엇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이라는 'hip'에서 유래되었다. 힙스터의 사전적 의미는 최신의 유행 경향과 패션, 특히 주류 문화 이외의 것을 따르는 유행에 민감한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을 띤 삶의 방식을 힙스터리즘(hipsterism)이라 한다.
힙스터의 역사는 1940년대 후반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도시의 백인 중산층 출신 청년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비밥 재즈에 매료되어 흑인 재즈 음악가들의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모방했던 이들은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소수 문화에 열광함으로써 '힙스터'라 불리게 되었다. 힙스터들은 대량생산으로 지나치게 획일화된 주류문화를 거부하고, 재즈와 흑인 문화를 통해 차별화된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힙스터리즘은 흑인들의 쿨한 지식과 에너지를 흡수하려는 백인들의 아방가르드 문화였다.
작가 노만 마일러(Norman Mailer)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은 힙스터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형용사로 '쿨(cool)'을 꼽는다. 쿨한 태도란 너무 열심히 하려 애쓰지 않는 자연스러운 상태이며, 규범화된 가치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개인주의적 자세를 말한다.
21세기 힙스터리즘
2000년대 초반 뉴욕을 중심으로 태동한 복합적인 하위문화(sub-culture)와 함께 힙스터라는 용어가 재등장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의해 젊은 예술가나 지식인들이 뉴욕 맨해튼의 높은 임대료를 피해 윌리엄스버그에 모이기 시작했고, 언론은 다시 이들을 힙스터라 불렀다.
이들은 독립적 가치와 생각을 중요시하며 비주류 예술을 지지했다. 그리고 당시 크게 유행하던 스키니 진에서 탈피해 몸에 적당히 맞는 약간 헐렁한 진을 입었다. 데님 팬트, 체크 셔츠, 뿔테 안경, 페도라, 스니커즈, 픽시 자전거 등. 현대의 힙스터는 확연히 눈에 띄는 패션 코드로 분류되기 시작한다.
힙스터 스타일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고 이동한다.
한때는 오리건주 포틀랜드 힙스터의 영향으로 생지 데님과 수염이 눈에 띄기도 했고, 홈리스에 가까운 누더기 옷을 입는 힙스터도 있다. 어떤 힙스터 무리는 1960년대 풍의 깔끔한 포마드 헤어스타일을 하기도 한다.
21세기 힙스터리즘은 매우 복잡 미묘한 청년문화 현상인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오늘날의 힙스터는 '독창적 예술의 선택'이라는 문화를 실천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항상 대중적 취향의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선점하려 한다.
힙스터는 언제나 주류 문화와 이데올로기에서 떨어져 나가려 하기 때문에, 독립적인 사고와 저항 문화에 관심을 둔다. 따라서 대개는 대중적인 것보다 독창적인 것, 보수보다는 진보적 정치 성향을 띤다.
또한 현대의 힙스터들은 지나친 상업주의와 획일화를 거부하며 대안적인 소비 생활을 지향한다.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자연친화적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소비 윤리를 실천하고 채식, 동물보호, 환경보호, 착한 소비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힙스터 딜레마
힙스터의 본질은 '다름'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언제나 대중에게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카테고리를 한 발 앞서 소비한다. 이를테면 유행에 앞선 빈티지 패션, 새로운 음식, 인디음악 등을 소비하면서 남과 다른 취향을 과시한다. (소위 말하는 '인디 부심' 또는 '홍대병', '망원동 나르시시스트'는 한국형 힙스터 성향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오늘날 SNS는 힙스터들이 자기 취향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창구이다.
힙스터는 본인들이 선택한 패션과 음악을 주류 소비자에게 도달해 대중화되면, 다시 이탈해 더욱 참신한 취향을 쫓아 이동하기를 반복한다. 따라서 현대의 힙스터는 '저항적 소비자'라기보다 문화적으로 매우 민감한 '최첨단 소비자'에 가깝다.
물론 이로 인한 부작용도 있다.
힙스터가 선택한 것들은 참신하고, 멋지고, 진정성 있어 보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선택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힙스터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종하며 트렌드로써 소비한다. 이를테면 스타벅스에서 제공하는 한정판 에코백을 얻기 위해 불필요한 음료를 대량 구매하고 폐기한다던가, 유명인을 쫓아 유기동물을 입양했다가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는 일도 있다.
또한 기업의 이윤 논리와 맞물려 교묘한 상술로 포장된 것들이 힙스터 문화로 둔갑되어 소개되는 일이 너무 많다. 특히 트렌드에 선동되는 요즘의 한국형 힙스터 문화는 독립적 사고와 가치를 추구하는 청년 하위문화라고 하기 어렵다.
초기의 힙스터는 대중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고유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청년 하위문화였다. 힙스터 문화는 개별성(Individuality), 독특성(Uniqueness), 진정성(Authenticity)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힙스터는 오직 '다름'에 천착한 나머지 최신의 것을 쫒는다. 오늘날 힙스터의 의미는 '유행에 한 발 앞선 사람'으로 전락했다.
과거의 나도 어쩌면 현대적 의미의 힙스터라고 할 수 있겠다. 남과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해 덜 알려진 것들을 찾아내는데 열중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얻는 작은 우월감을 통해 고독함을 이겨냈는지도 모르겠다.
'다름'에서 정체성을 찾고자 애쓰던 그 시절 내 목적은 보통의 인생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너무 어려서 삶의 진실을 잘 알지 못했다. 나이가 훌쩍 들어 깨달은 진실은 남들처럼 사는 '보통의 삶'을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보통의 삶' 조차 결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꾸준히 가꾸고 노력해야 도달할 수 있다. 인생에 공짜가 없더라.
남들처럼 살기 싫어 몸부림 칠게 아니었다. 남들 만큼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건 오히려 축복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