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이 미야케의 영원한 테마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의 얼굴에서 늘어가는 주름을 발견하고는 감정이 매우 복잡해진다. 내 친구가 벌써 이렇게 나이가 들었나. 아직 우리 마음은 대학생 때 그대로인 것 같은데. 삶이 많이 고단한 걸까. 친구가 속상할 테니까 아는 체는 말아야지.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거울 속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면, 그 주름은 나도 있다. 친구의 상태와 다르지 않다. 거울로 본 내 모습은 매일 변화를 겪었을 터인데 그 미세한 차이를 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친구도 내 모습에서 노화의 증거들을 발견하며 나처럼 안타깝고, 속상하고, 아련하고 그랬을까.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저마다의 주름을 갖는다. 주름에는 존재가 살아낸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내가 짓는 기쁨과 절망의 표정,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하는 모든 습관과 행동, 삶의 방식이 내 고유의 주름을 만든다. 주름은 내가 시간 속에 있음을 증명하고, 살아내었음을 기념하는 나이테와 같다.
사물도 비슷하다. 저마다의 쓰임을 통해 흔적을 쌓아가며 바래고 낡은 모습으로 시간의 주름을 갖는다.
들뢰즈는 세계가 접힘과 펼쳐짐으로 이루어져 대상과 대상이 주름을 통해 연관되어 서로 변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외부의 힘과 내재적 원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밖과 안은 주름으로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주름의 이러한 속성을 뚫어보고 영민하게 활용하는 대표적 패션 디자이너는 이세이 미야케이다.
사실 나는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근대화를 우리보다 먼저 치르고 서구로 진출한 섬나라 사람들에 대한 묘한 감정(차마 질투심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도 있거니와. 그의 디자인은 시어머니 동창 모임 외출복으로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 노년층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좋아하는 디자이너를 꼽는다면 마틴 마르지엘라, 피비 필로, 라프 시몬, 니콜라 게스키에르 정도? 하다못해 일본 디자이너 중에서 택해야 한다면 레이 가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혹은 준 타카하시쯤을 언급해야지.
이세이 미야케를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면 어쩐지 쿨. 하고 힙. 하고 세련. 된 감성과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주름만을 고집하는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은 거기서 거기다. 정체성을 고수하려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정체되어버린 자기 복제의 결과물이라고. 심지어 이런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2016년 도쿄에서 이세이 미야케전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전시는 이세이 미야케의 초기 작품인 그 유명한 'TATTO'부터 'BODY' 시리즈 그리고 이제는 대표작이 되어버린 Pleats 시리즈가 연대순으로 총망라되어 있었다.
1970년 작품부터 2016년 작품까지 한 예술가의 호기심과 취향이 어떻게 변모해 가는지, 그리고 인체를 감싸는 조형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집요한 노력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결실을 맺어가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위 사진은 이세이 미야케 첫 컬렉션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일본 전통 타투 이미지를 활용해서 지미 헨드릭스와 제니스 조플린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당대의 가장 위대한 두 뮤지션이 1970년 27세의 나이로 나란히 세상을 뜨자 가장 일본적인 표현기법으로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이국적 감성을 팔아서 주목을 받는 것은 상대적인 문화 변방의 약자들이 종종 써먹는 얕은수!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세이 미야케와 관련된 전문 서적을 읽을수록 갖게 되는 확신은, 그는 우리 몸의 다양한 표정과 몸짓을 표현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의 초기작 'TATTO'와 'BODY' 시리즈에서는 일본식 타투가 가득한 바디수트와 바디캐스팅의 토루소로 몸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세이 미야케는 몸을 단순히 대상화하거나 에로티시즘의 표현물로 대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몸을 감싸는 제2의 피부로서의 패션이, 우리 몸의 생명력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세이 미야케는 오랜 연구를 거듭하여 마침내 '주름'을 통해 그의 디자인 철학을 펼친다.
주름은 직물에 탄성을 부여하고 몸과 옷 사이의 공간을 만든다. 우리가 몸을 움직이면 주름은 유기적으로 반응하며 옷과 몸 사이의 공간을 움직인다. 주름옷은 우리 몸의 표정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우리는 주름으로 인해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옷의 절반만 만든다.
사람들이 내 옷을 입고 움직였을 때 비로소 내 옷이 완성된다.
- Issey Miyake -
내가 이세이 미야케에 대해 알면 알수록 감탄하게 되는 부분은, 그의 주름 연구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조각의 천이 옷으로 만들어지는 'A-POC(A Piece of Cloth)'라인의 주름 기법 연구도 계속 발전하고 있고, 'Pleats Please' 라인도 최신의 기술력으로 기발한 주름 기법을 개발하고 있다.
다른 라인도 상당히 동양적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평평하게 접힌 한 조각의 천이 우리 몸에 입혀져 3차원의 공간을 만든다는 콘셉트의 '132 5. '라인의 콘셉트는 일본 전통 복식에서 착안했다.
(동양의 전통 복식이 대체로 비슷한데, 상대적으로 경제적 안정을 이룬 일본인이 많은 부분에서 빠르게 활용했다. 일본인에 의해 알려지고 일본이 앞서있는 것들이 많아 개인적으로 매우 아쉽다.)
이세이 미야케는 트렌드를 좇지 않는다. 다만 주름이라는 자신의 디자인 테마를 계속 발전시키며 기술적으로 부단히 연구한다. Baked stretch, Steam stretch 등 놀라울 만큼 최신의 기술력을 활용하는 이세이 미야케의 주름옷은 기능적일 뿐만 아니라 외관도 아름답다. 요란한 장식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답다.
이세이 미야케는 이미 디자인 일선에서 물러나 후배들에게 하우스 운영을 맡기고 있다. 그러나 그의 브랜드는 최신 기술력을 활용할지언정 디자인 정체성에서는 흔들림이 없다. 그것은 '주름'이라는 기법으로 표현해야 할 우리 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디자인 철학이 분명하게 정립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전통을 기반으로 한 끝없는 혁신성의 추구'는 이세이 미야케를 탁월한 디자이너이자 브랜드로 만들었고, 그의 옷이 아름다운 공예품으로써 오래도록 사랑받는 비결이 되었다.
https://player.vimeo.com/video/399773387
우리는 여전히 라이프니츠적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접기, 펼치기, 다시 접기이므로
- Gille Deleuze -
이세이 미야케는 경계에 우뚝 서 있는 사람이다. 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
자기 정체성을 지키면서 끊임없는 시도와 발전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이제야 이세이 미야케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주름이라는 디자인 테마를 앞으로 어떻게 계속 발전시켜나갈지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