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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Apr 11. 2021

검은색에 관하여 (1)

우아함과 멜랑콜리 사이

나는 검은색을 좋아한다. 언제나 검은색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꽤나 자주 검정을 택한다. 내가 검정을 택하는 이유는 실용적인 까닭이 크다. 검은색은 소재의 흠결이 눈에 덜 띄고 그 자체로 간결하며 너무나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함이다. 사실 나의 외모는 너무 물렁하게 생겨서 좀 흐릿해 보인 다랄까. 그래서 한때는 센 척 위장하느라 검은색 옷을 입곤 했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이미지가 필요했다.   




엄격함과 권위

검은색은 명료하다. 동, 서양의 역사 속에서 다른 색들이 양면적 상징을 지니거나 복잡한 의미를 내포하는 것과 달리, 검은색은 늘 분명했다. 좋거나 나쁘거나.

전통적으로 검은색을 죽음, 상실, 슬픔과 연결 지어 부정적 의미를 두거나 고귀함, 엄격함, 권위를 상징하는 긍정의 의미를 보는 것은 동서양이 모두 같다. 다만 19세기 이전까지 상복의 색상에 있어서는 서양에서는 검은색, 동양에서는 흰색이 쓰였다. 이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서양에서는 죽음을 육체의 소멸로 보고 공포와 두려움의 의미를 담는다. 반면 동양에서는 물질을 초월한 순수함을 뜻하는 흰색을 상복에 사용해 긍정적 의미로 대한다. 뿌리 깊은 윤회 사상을 근간으로 죽음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검은색은 엄숙함을 뜻하기도 한다. 서양의 수도승이나 종교개혁자들은 절제와 겸양의 상징으로 검은색 옷을 착용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검은색은 차분하고 사려 깊으며 고귀한 색으로 여겨져 고려시대에는 귀족의 색으로, 조선시대에는 고위 관료의 복제에 사용되었다. 그런데 순수한 검은색을 만드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밤하늘처럼 짙고 변색되지 않는 순수한 검은색을 얻으려면 여러 번 공들여 염색을 반복해야 했다. 

이러한 까닭에 검정은 권위를 상징하는 색으로 인식되었다. 현재는 스포츠 경기의 심판이나 법관 등 엄격함과 권위의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유니폼에 적용되고 있다. 또한 패션 브랜드의 '블랙 라벨'은 기존 제품보다 상위 레벨로 제작한 고급 컬렉션을 뜻한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검은 옷을 입은 신부> 포스터. 1968. 하얀 웨딩드레스 대신 죽음을 애도하는 상복을 입고 있다. (출처: unifrance.org)




궁극의 우아함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Pierre Beaudelaire)는 댄디즘을 예술가의 모럴로 격상시킨 장본인이다. 댄디즘이란 절제와 세련미를 추구하던 남자들의 스타일인데, 18세기 후반 보 브럼멜(Beau Brummell)로부터 시작되었고 19세기 예술가와 지식인들에게 전파되었다. 보들레르는 댄디즘이 단지 외모를 치장하기 위한 취향이 아니라 정신적 귀족주의, 즉 하나의 철학이라 보았다. 


댄디는 쉬지 않고 우아함을 추구해야 한다.
거울 앞에서 살고 거울 앞에서 잠들어야 한다.
- 샤를 보들레르 -


보들레르는 댄디즘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단순함과 우아함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죽음과 부재, 밤을 상징하는 검은색이 완벽한 우아함을 표현하는 궁극의 색이라고 했다. 절제된 단순함이 우아함과 통한다는 것이다.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씨는 '우아함(elegant)'을 뜻하는 단어가 '심혈을 기울여 선택하다(eliger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에 주목하며, 지적이고 우아한 삶의 핵심은 '아름답고 좋은 것을 선별할 수 있는 감각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우아함은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댄디즘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는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나다르(Félix Nadar)가 촬영한 보들레르의 초상. 댄디들은 카메라 앞에 무심하게 선다.(출처: commons.wikimedia.org)




멜랑콜리

멜랑콜리(melancholy)는 '검은 담즙'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4가지 체액으로 질병의 원인을 설명하려 했는데, 검은 담즙은 우울과 비애를 유발한다고 믿었다. 검은 담즙은 뇌로 전달되어 인식과 사고를 검게 물들이고, 검은색은 인간을 알 수 없는 우울에 빠뜨린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멜랑콜리 정서는 치료되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창작자의 고뇌, 천재들의 광기로 인식되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비범한 예술가들은 고통과 고뇌에 빠져있는 멜랑콜리커였기 때문이다. 에드가 드가, 빈센트 반 고흐, 기형도 등 많은 천재들이 그랬던 것처럼. 

블랙 예찬론자 보들레르 또한 대도시에서 느끼는 소외와 우울을 시로 표현했다. 댄디즘을 좇아 검은색 옷을 고집했던 보들레르의 패션 스타일은 '멜랑콜리'라는 그의 문학적 정서와도 닿아 있다. 


멜랑콜리커는 인간에게 주어진 틀을 파괴하려 하기 때문에, 속세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다. 

오히려 초연하고 단단하다. 검은색은 그렇다.


 뭉크의 멜랑콜리 시리즈 중 'Evening, Melancholy I'. 1896. Edvard Munch (©Munch-museet 출처: moma.org)




만약 당신이 검은색을 좋아한다면 우아함과 멜랑콜리 어느 쪽에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절제되고 조용한 태도를 지닌 것인지. 아니면 자기감정을 마주하느라 세상에 초연한 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두 가지 태도는 서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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